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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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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올리브나무는 누가 다 베어버렸을까



이스라엘의 위협 속에 진행되는 서안지구 올리브 수확 현장…

삶의 터전 지키기 위해 외롭게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등록 2010-11-10 17:51 수정 2020-05-03 04:26
국제평화연대단체인 ‘국제여성평화서비스’(IWPS)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하나로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올리브 수확 지원 활동을 벌인다. 올리브 수확 기간에 벌어지는 유대인 점령민들의 폭력, 이스라엘 군인들의 위협과 수확 방해에 맞서 팔레스타인 농민과 연대하는 방법은 바로 그들이 겪는 현실의 목격자가 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지난 10월 약 20일간 이 활동에 참여한 한국인 활동가 알리아(별명)가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생계를 위협받는 팔레스타인 농민의 처절한 삶을 전해왔다. _편집자
» 팔레스타인 농부 오마르의 아이들이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케두밈 점령촌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점령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국제여성평화서비스 제공

» 팔레스타인 농부 오마르의 아이들이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케두밈 점령촌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점령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국제여성평화서비스 제공

오마르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칼킬랴 지역에 있는 카프르카둠(Kafr Qaddum) 마을에 사는 농민이다. 카프르카둠은 3천 년 역사를 가진 마을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과 3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1967년에 6만 명의 주민이 요르단과 걸프지역으로 떠났지만 지금도 4천여 명이 살고 있다. 오마르의 올리브 농장은 마을을 둘러싼 유대인 점령촌(정착촌) 케두밈(Qedumim)과 500m 남짓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오마르는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만큼 수확 작업을 할 수 없다. 이스라엘군에게 농장 출입에 대한 통제와 위협을 받고, 점령민들의 폭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카프르카둠에는 이스라엘이 1967년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해 요르단 군사기지를 차지한 이후 점령촌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당장, 무조건, 빨리 떠나라”

카프르카둠 주변에는 5개 점령촌이 있는데, 1974년부터 지어졌다. 유대인들은 마을의 토지를 강제 병합하거나 도로와 군사제한지역을 이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았다. 1993년 체결된 오슬로협정에 따라 카프르카둠은 △팔레스타인이 군사와 행정을 관할하는 A지역 △팔레스타인이 행정만 관할하는 B지역 △이스라엘이 군사와 행정을 관할하는 C지역으로 쪼개졌는데, 마을의 3분의 1이 B·C 지역에 있다.

10월15일에는 오마르와 그의 아이 6명, 그리고 나를 포함한 2명의 국제연대 활동가가 함께 올리브 수확에 나섰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수확량이 두 배 가까이 많다. 아침 7시에 시작한 수확 작업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근처에 있었지만 허가된 지역이기 때문인지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고 오마르도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오후 3시30분이 되자 오전에 본 군인들과는 다른 군인들이 다가왔다. 오마르는 오전에 허가받았다며 항의했고, 나는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따졌다. 하지만 “당장 수확 작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체포할 수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군사지역이므로 수확 작업을 할 수 없다’ 등의 이유를 보여주는 문서나 지도는 제시하지 않았다.

마침 이날은 이스라엘 유대인의 휴일인 샤밧(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한 군인은 “샤밧이 시작된다”며 빨리 떠나라고 했다. 급진 시오니스트가 많은 이 지역 유대인 점령민들의 팔레스타인인 공격이 잦아졌고, 샤밧 때는 흥분된 분위기에서 공격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리브를 따야 할 나무가 몇 그루 남지 않았고 수확한 올리브를 가마니에 담아야 했다. 군인들과 실랑이하는 동안 오마르의 아이들은 어떤 상황인지 잘 아는 듯 서둘러 올리브를 가마니에 담았다. 맏형인 13살의 알라와 아세프는 어린 동생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처음 대하는 4살짜리 마흐메드만이 어떻게 할지 몰라 형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잠시 뒤 또 다른 군인 2명이 다가왔다. 얼굴이 벌게져 성난 듯한 군인 1명은 외국인인 나를 보자마자 “여권을 보여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여권 보여줘! 여권 내놔!”만 반복했다. 아이들이 많이 있는 만큼 상황을 모면하는 게 낫겠다 싶어 다른 동료와 마을 자치위원회 부위원장인 사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전화를 하니 그 군인들은 다른 군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오마르는 지난 2월에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올리브나무 36그루가 하룻밤 사이에 뿌리가 드러나도록 뽑힌 것이다. 오마르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뿌리가 뽑혔거나 가지가 심하게 잘리고 쓰러진 나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올해도 점령민들에 의해 올리브나무가 불타거나 잘려나가고, 수확한 올리브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 칼킬랴

» 칼킬랴

공허한 협정, 지켜지지 않는 보호 의무

방금 전 웃으며 올리브를 따던 아이들과 여유 있던 오마르는 어느새 긴장한 얼굴로 다급하게 올리브를 가마니에 담았다. 아마도 20분 정도면 올리브 수확이 모두 끝났을 것이다. 그 20분조차 허용되지 않는 게 점령촌이 건설된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마을들의 현실이다. 우리는 간신히 올리브를 담은 가마니 세 개를 당나귀에 싣고 서둘러 농장을 나섰다. 유대인에게 점령된 지역을 빙 둘러 먼 길로 돌아가야 했다. 이스라엘 점령촌과 군사기지가 마을과 농장을 잇는 길을 봉쇄한 탓에, 당나귀나 트랙터로만 다닐 수 있는 흙먼지 길로 10년째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10월21일, 아침 7시에 아케프의 올리브 농장 수확 작업이 시작됐다. 아케프의 농장은 케두밈 점령촌 한 곳에서 1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이날은 그의 아내와 형, 조카 1명, 그리고 내가 함께 수확 작업에 나섰다. 이스라엘협력사무소(DCO) 소속 군인들이 갖고 다니는 지도에 따르면, 아케프의 농장은 ‘군사보안지역·군사제한지역’으로 불리는 붉은 선이 아니라 노란선 안에 있어서 별도의 허가 없이도 농장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여러 차례에 걸쳐 ‘허가’나 ‘공식적인 협력 기간’과 무관하게 수확 작업이 가능하다고 확인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사흘 동안 아케프는 수확 작업 중에 군인들에게 쫓겨나야 했다. 18일에 쫓겨났고, 19일에는 같은 언론사가 와서 취재했지만 오후에 쫓겨나야 했다. 20일에는 올리브 수확을 도우러 온 이스라엘인 덕택에 군인들과 협상해 오후까지 일할 수 있었다. 21일에도 오전 11시30분께 잠깐의 휴식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작업을 다시 시작하자마자 군인 3명이 내려왔다. 무조건 나가라는 것이다. 자신의 땅에서 자신의 올리브나무를 돌보고 수확하는 농민이 낯선 군인들한테서 나가라는 명령을 듣는 기분은 어떨까?

히브리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케프는 군인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군인들은 올리브를 모아놓은 자루들을 툭툭 치며 “어서 치우고 나가라!”고 했다. 내가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고, 이 지역은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군용수신기를 들고 있던 군인 1명이 나머지 2명에게 내 질문에 대답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자 3명 모두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올리브 수확 때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직해 작업을 돕는 ‘인권을 위한 랍비들’(Rabbis for Human Rights)의 에릭에게 전화를 했다. 에릭이 히브리어로 말할 수 있다며 전화기를 건네주자 군인 3명은 통화를 거부하며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실랑이를 하며 10여 분이 지나자 DCO의 차량이 보였고, 2명의 DCO 군인이 다른 3명의 군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가 잘 해결되나 싶었는데, DCO 역시 아케프 가족에게 ‘오늘은 작업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아케프와 그의 형이 아랍어로 “이 지역은 허가가 필요하지도 않고, 공식적인 협력 기간이 아니더라도 수확이 가능하다”고 설명하자, DOC 군인은 “그럼 오늘부터 그 허가가 필요한 지역으로 만들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설명이나 설득, 논리도 통용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군 점령 아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현실이니까.

»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쫓겨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수확한 올리브를 서둘러 트랙터에 싣고 농장을 떠나고 있다.국제여성평화서비스 제공

»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쫓겨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수확한 올리브를 서둘러 트랙터에 싣고 농장을 떠나고 있다.국제여성평화서비스 제공

4배나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점령촌

DCO는 팔레스타인 지역연락사무소(DCL)와의 협력기관으로 불린다. 제네바협정에 따라, 군인이나 점령민들과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팔레스타인 주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점령민들의 폭력과 방화나 군인들의 일방적 위협, 수확 방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DCO에 연락한다. 하지만 DCO는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의지조차 없다. 이스라엘 법원의 판결은 ‘모든 팔레스타인 농민은 자신의 땅에 자유롭게 들어갈 권리가 있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농민이 마지막 남은 하나의 올리브를 수확할 때까지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DCO가 온다 해도 이스라엘 군인들의 요구대로 농민들 대부분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다. DCO는 점령군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을 지킬 수 없는 팔레스타인 농민들로서는 점령민들의 폭력 앞에서 DCO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서안지구의 점령촌 건설은 다양한 고립장벽과 군사기지·우회도로 건설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토지, 곧 생존 터전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점령민들은 무기를 소유하고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 사설 보안업체의 보호를 받는다. 이들 모두 팔레스타인을 여전히 점령해야 할 ‘자신들의 땅’으로 인식하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들의 인식은 점령촌 인근 마을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문제를 잘 알면서도 불법 점령촌 건설을 묵인하고 있다. 점령촌과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이스라엘 단체 ‘피스나우’는 올 9월부터 지금까지 600여 채의 점령촌 가옥이 지어진 것을 지적하며, 지난 2년 동안의 평균보다 네 배 이상 빠른 속도라고 우려했다. 카프르카둠 마을을 둘러싼 점령촌 안에서도 새 가옥이 지어지는 것을 올리브 수확 과정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점령촌 확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상실되고 삶의 수단이 위협받는 것을 뜻하며, 그 이상의 공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떠나지 않고 그 땅을 지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라고 말한다. 그 저항이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고립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이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는 작은 바람이 아닐까.

칼킬랴(팔레스타인)=알리아 ellieyoung72@gmail.com

*팔레스타인 마을의 올리브 수확을 돕는 캠페인은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는 운동의 하나다. ‘국제여성평화서비스’(IWPS·iwps.info)는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지지·연대하며, 매년 올리브 수확팀을 조직해 수확기인 9월 말에서 11월 말 사이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수확 작업을 함께한다. 또 다른 국제연대단체인 국제연대운동(ISM·palsolidarity.org)도 같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문의 ellieyoung7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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