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제발 그만 괴롭혀!”
필리핀 여성 쉴라(28)는 거짓말을 했다.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캄캄한 밤, 홍콩의 거리를 홀로 걷는 그에게 한 남성이 필리핀 여자라고 욕하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모국을 부정해야만 했던 기억을 들려주는 그녀 곁에는 수많은 필리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빗방울이 차갑던 지난 9월12일 일요일, 비를 피해 홍콩섬 중심부인 센트럴지구의 한 대형 건물 입구에 모인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었다.
“밖으로 나오는 게 무섭다”
홍콩의 필리핀 가정부들이 떨고 있다. 발단은 8월23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벌어진 홍콩인 관광버스 피랍사건. 부패 혐의로 파면된 전직 경찰관 롤란도 멘도사가 복직을 요구하며 버스에 탄 홍콩 관광객 21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고, 진압 과정에서 홍콩인 8명이 숨졌다. 필리핀 경찰의 미숙한 대처로 홍콩에 ‘반필리핀’ 분위기가 확산됐다. 불똥은 홍콩에서 일하는 약 13만 명의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에게 튀었다.
필리핀에 대한 반감은 홍콩 곳곳에서 확인됐다. 9월9일 저녁 9시30분,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입국심사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NAIA)에서 온 필리핀 여성 데이지(37)는 5분 넘게 심사대에 붙들려 있었다. 심사관은 성난 얼굴로 “어디서 묵느냐. 얼마나 있느냐”고 다그쳤다. “관련 서류도 다 냈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데이지는 말했다.
반감은 젊음의 거리에도 흘렀다. 9월10일 밤, 홍콩섬 번화가 소호거리. 야근을 마친 제스 리(28)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회사 연수차 미국 뉴욕에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야후 뉴스와 유튜브로 관련 기사와 영상을 봤다고 말했다. “당시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모든 친구들이 인질극 얘기를 했다”는 그는 “친구들에게서 ‘필리핀 가정부를 우리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다음날 오후, 홍콩의 주택가인 주룽반도 콰이힝 지구. 새밀(44)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정부의 반응을 기억했다. “인질극이 벌어진 다음날 가정부에게 사건을 얘기했더니, 하루 종일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녔다.” 새밀은 며칠 뒤 자신의 두 아이를 불러 “가정부에게 나쁜 말을 하지 마라”고 주의시켰다. 필리핀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에 다녀온 가정부가 ‘길에서 폭행당하는 동료들이 생기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뒤였다.
일요일인 9월12일, 홍콩 중심부인 센트럴지구는 필리핀 가정부들로 가득 찼다. 그늘이라면 어디라도 자리를 깔고 길바닥에 나앉는 그들의 모습은 일요일마다 반복되는 홍콩의 풍경이다. 일하는 집의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요일에는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마땅히 갈 데도 없다. 물가가 높고 집값이 비싼 홍콩에서 필리핀 가정부들은 센트럴지구에 모여 쉬는 것이다.
센트럴역의 지하 보도에서 필리핀 가정부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메이(48)는 “예전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일요일이 좋았지만 지금은 밖으로 나오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아날린(42)은 “사건 직후 한 희생자 가족이 필리핀 가정부를 해고했다는 뉴스를 봤다”며 “우리도 해고당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두려움은 현실이었다. 황후상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던 주니타(39)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인질극 이틀 뒤인 8월25일 고용인에게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가정부를 쓰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오늘 같은 휴일에도 직업소개소를 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쇼핑몰 차터하우스 앞에서 만난 에드나(48)는 “최근 서른 명이 넘는 친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갔다”며 “사건 이후 우리를 차별하는 고용인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홍콩으로 건너오는 이들도 있다. 차터공원에서 만난 제리(40)는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마닐라에 있었고 홍콩에 온 지는 일주일째”라며 “차별이 두렵지만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필리핀 가정부는 외화벌이의 영웅?홍콩은 1970년대 중반부터 비약적 경제발전으로 대부분 가정이 맞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는 1974년부터 ‘노동자 해외송출제도’를 시행하며 외화벌이를 독려했고, 이렇게 홍콩에 필리핀 가정부가 늘어났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필리핀 일간지 은 9월8일 자국민의 70%가 하루 42페소(약 1천원)로 살아간다고 보도했다. 2009년 필리핀의 구매력지수(PPP) 기준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300달러로, 홍콩(4만2800달러)의 13분의 1 수준이다.
그래서 필리핀 여대생은 홍콩에서 가정부가 된다. 필리핀 팔라완 출신 제니(27)의 말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지역 라디오에서 DJ로 일했다. 한 달에 1천페소(약 2만6천원)를 벌었다. 수도 마닐라로 가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한 달에 1500 페소(약 3만9천원)를 벌었다. 여기서 가정부로 일하면 한 달에 평균 3580홍콩달러(약 53만원)를 번다.” 청소, 빨래, 요리, 쇼핑, 아이 돌보기 등 고용인 집의 모든 허드렛일이 그의 몫이다. 가정부들은 고용인 집에 살지만 집값 비싼 홍콩에서 그들을 위한 방은 극히 좁다. 방이 따로 없어 종일 일을 하고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자는 가정부도 많다. 인권침해에도 노출돼 있다. 2007년 홍콩의 영화배우 장쉐유(장학우)는 3년간 21명의 필리핀 가정부를 혹사시키며 해고를 일삼아 홍콩의 필리핀인 사회에서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실질적 지원과 대책 외면하는 양국 정부필리핀은 자국의 해외 이주노동자를 ‘국민적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약 818만 명의 해외 거주 필리핀인이 한 해 모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173억달러로, GDP 대비 약 11%에 이른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그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과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홍콩 정부는 한술 더 떠, 2003년 가정부들의 최저임금을 줄이려 시도했다. 종종 일요일의 센트럴지구에는 필리핀 정부에서 주최한 ‘위문공연’이 열린다. 홍콩 정부는 일요일에 한해 센트럴지구의 차량을 부분통제한다. 생색내는 필리핀과 홍콩 정부 사이에서 가정부들은 문득 이재민처럼 보인다.
버스 인질극이 터진 뒤 등을 돌린 필리핀과 홍콩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9월20일 필리핀 정부는 진상보고서를 발표했지만 홍콩 정부는 내용이 미흡하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10월11일 필리핀 정부는 관련 책임자들에게 직무태만 혐의로 행정처벌을 내리기로 결정했지만, 조사위원회에서도 가벼운 징계라는 논란이 벌어졌다. 10월13일 홍콩 정부는 “필리핀 정부에 실망했다”며 반발했고, 홍콩 경찰은 자체적으로 조사한 1차 보고서를 자국 검시재판소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홍콩과 필리핀의 벌어진 틈 사이로 부는 바람이 차갑다. 필리핀 가정부들은 그 바람을 맞으며 일요일마다 센트럴지구로 향한다.
홍콩=글·사진 양창모 통신원 p.o.c.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