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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르 혁명의 나라를 가다

남미 탐방기 ①

볼리바르 국제공항 나와 볼리바르 광장 옆에 볼리바르 박물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등록 2010-10-13 17:47 수정 2020-05-03 04:26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들의 독립 200주년을 맞아, 김순배 기자가 지난 8월13~26일 베네수엘라와 칠레를 현지 취재했다. 좌파 지도자들이 이끄는 남미의 변화와
도전에 관한 기사를 9월20일·9월24일·10월4일치에 실었다. 에는 두 나라의 또 다른 면을 소개하는 생생한 탐방기를 연재한다. _편집자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에 대한 사랑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라카스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시민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한겨레 김순배 기자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에 대한 사랑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라카스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시민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한겨레 김순배 기자

“애들은 시몬시토스(Simoncitos)에 보내면 돌봐주니까….”

시몬시토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던 라파엘 삼브라노(32)가 말한, 취학 전 어린이를 돌보고 가르쳐주는 곳이다. 참 열렬히도 존경하는구나 싶었다. 육아시설 명칭까지 남미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이름에서 따왔다. 시몬시토스는 시몬에 어미를 덧붙여 사랑스럽게 부르는 이름으로, 한국말로 ‘귀염둥이 시몬’ ‘우리 꼬맹이 시몬’쯤 된다.

온통 볼리바르였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애틀랜타를 거쳐 비행기만 17시간50분을 탄 뒤 도착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공항은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시내에 택시를 타고 다니다 보면, 도심 도로의 벽 등 곳곳에 군복을 입은 볼리바르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앞발을 치켜든 말의 고삐를 당기는 용맹스러운 볼리바르의 모습도 눈에 띈다. 카라카스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구시가지 중심은 ‘볼리바르 광장’이다. 주변에 시청사와 국회의사당 등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시민들이 나들이를 즐겼다.

이곳에서는 광장 중심의 볼리바르 동상보다 잊지 못할 ‘추억’이 새겨졌다.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한 시민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갑자기 뭔가 주르륵 흘렀다. 어깨와 카메라에까지…. 순간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끈적끈적했다. 닦아낼 휴지도 없어 짜증이 확 나는데, 광장 관리인이 낄낄대며 “이구아나가 오줌을 쌌구먼. 행운이 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고, 내가 보기에는 이구아나가 한꺼번에 ‘둘 다’ 싼 듯했다. 분명 ‘오줌+똥’이다. 위를 쳐다보니 울창한 나뭇가지만 보일 뿐, 망할 놈의 이구아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냄새가 독하지 않아 다행이지 어찌나 찝찝한지…. 씻을 데도 마땅찮아 결국 생수를 사서 씻어냈다.

베네수엘라를 넘어선 ‘남미의 아버지’

이구아나의 오줌+똥 벼락을 맞은 뒤 코를 킁킁거리며 광장을 빠져나오니, 바로 옆에 박물관이 있는데 또 ‘볼리바르 박물관’이다. 베네수엘라 독립 20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회가 열린 듯했고, 시민들이 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볼리바르의 군복과 칼을 비롯한 유품과 초상화 등이 전시됐다. 이곳에서 만난 제니퍼 곤살레스(28)는 “볼리바르는 우리에게 자유를 안긴 영웅이다. 하나로 뭉쳐 강한 남미를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친차베스 일간지 를 방문했을 때는 한쪽 벽에 4명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우고 차베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체 게바라, 그리고 볼리바르. 그 가운데에는 ‘해방자들의 행동 계승을 돕기 위해 여기에 우리가 있다’고 쓰여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건물을 개조해 쓰고 있는 대학교의 이름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아나대학교’(UBV)다. 명문 국립 ‘시몬 볼리바르대’(USB)가 있지만, 서민을 위해 새로 세운 무상교육 기관이다. 2008년 바뀐 화폐의 이름도 ‘볼리바르 푸에르테’(BF)다.

차베스의 끔찍한 볼리바르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차베스는 1999년 취임 뒤 국호에 볼리바르의 이름을 넣었다. 베네수엘라의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다. 차베스는 지난 7월16일에는 볼리바르의 무덤을 파헤쳤다. 볼리바르가 결핵으로 죽은 게 아니라, 콜롬비아 귀족들에게 독살당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앞서 7월5일에는 볼리바르의 혁명동지 겸 연인인 마누엘라 사엔스를 1830년 그가 죽은 지 180년 만에 볼리바르의 묘 옆으로 이장해 재회시켰다. 불평등·부패 등 사회적 모순에 맞서 차베스가 1982년 결성한 군부 지하 정치조직의 이름이 ‘혁명적 볼리바르 운동’(MBR200)이었던 것만 봐도, 차베스의 정신적 스승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 진행되고 있는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개혁’도 ‘볼리바르 혁명’으로 불린다.

볼리바르의 동상 등 볼리바르에 대한 존경은 차베스가 ‘제2의 볼리바르’를 꿈꾸는 베네수엘라만큼은 아니어도 남미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볼리바르가 ‘남미 해방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14년에 걸쳐 독립전쟁을 지휘한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를 차례로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독립시켰다. 볼리바르의 업적을 기려, 북부 페루는 지명을 볼리비아, 즉 ‘볼리바르의 나라’로 바꾸었다. 볼리바르가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은 이유는 또 있다. 그는 링컨보다 46년이나 앞선 1816년에 노예제를 폐지해 만민평등을 실천했다.

특히 볼리바르는 멕시코·중앙아메리카·콜롬비아·페루·볼리비아·칠레를 포함하는 원대한 남미 통합의 이상을 꿈꿨다.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를 해방시킨 그는 각 지역 대표로 이뤄진 의회를 만들어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대 콜롬비아)를 창설했다. 하나의 연방을 이뤄 대국으로 성장하는 미국을 보면서, 미국에 맞서 남미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미 기수’로 불리는 차베스도 볼리바르의 남미 통합의 꿈을 잇고 있다. 차베스가 주도하는 ‘미주 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은 쿠바·볼리비아·니카라과·에콰도르 등 5개 좌파정부 국가와 카리브해 3개 작은 섬나라가 지역 통합을 지향하는 기구다. 남미 12개 나라가 회원국인 남미국가연합(UNASUR)도 9월30일 에콰도르에서 폭동을 일으킨 경찰에 의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감금되자, 아르헨티나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코레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등 지역 국제기구의 위상을 정립하고 있다.

46살에 요절한 볼리바르는 여러 말을 남겼다. “나의 죽음이 동맹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평온한 마음으로 무덤에 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1830년 볼리바르가 숨진 지 2년 만에 ‘그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의 세 나라로 갈라섰다. 볼리바르가 숨지기 전부터 우려한 것처럼 혁명과 권력, 남미 통합은 무상했다. “이 세상에는 가장 멍청한 바보가 3명 있다. 첫 번째는 예수, 두 번째는 돈키호테,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나다.”

예수, 돈키호테, 볼리바르

볼리바르는 죽기 한 달 전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카는 통치할 수 없네. 마치 혁명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바다에서 쟁기질을 하는 것처럼….” 베네수엘라 외교부에서 만난 아메노테프 삼브라노 국장은 “라틴아메리카가 단결해 미국의 주권 침해와 착취를 막고 다극화 사회를 건설하는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볼리바르가 그려진 한 벽화 옆에는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가난과 빈곤, 불평등에서의 ‘독립’과 ‘해방’, 특히 차베스의 남미 통합의 원대한 꿈은 이뤄질까? 그의 갈 길은 멀어 보였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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