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3월18일 밤, 괌에 있는 미국 공군 앤더슨 기지에서 B52 전략폭격기 60대가 인도차이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폭격기들은 이번에는 베트남 상공에서 멈추지 않았다. 국경 너머 캄보디아 마을과 숲은 핵무기 다음으로 가공할 존재라는 B52의 융단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작전명 아침 식사’의 시작이었다. 캄보디아 영토 안에 있는 북베트남군 및 남베트남해방민족전선(베트콩) 사령부들과 병참 통로(호찌민 루트) 파괴가 작전 목표였다. ‘점심’ ‘간식’ ‘저녁 식사’ ‘디저트’로 이어져 통칭 ‘작전명 메뉴’로 불리는 캄보디아 공습은 이듬해 5월까지 20만여 회의 출격으로 캄보디아인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취임한 지 두 달 된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베트남전에서 성과를 내고 파리 평화회담에서 북베트남을 압박하려는 의도에서 전선을 확대한 것이다.
<font color="#00847C">미군 크루즈미사일의 오폭</font>공습 규모만큼 놀라운 것은 엄청난 규모의 공격이 비밀에 부쳐졌고, 비밀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중립국 캄보디아를 공격한 사실이 공개되면 국내외적 파장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폭격기 운항일지가 조작되고, 진실이 담긴 기록은 매일 소각로에 던져졌다. 조종사와 항법사는 지휘관에게 비밀 엄수를 맹세했다. 나머지 승무원들은 평소처럼 베트남 영토에 폭탄을 떨구는 줄로만 알았다. 당시 캄보디아 통치자 노로돔 시아누크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침묵했다. 그러나 두 달여 뒤 가 캄보디아 공격에 대해 얼추 비슷한 내용을 보도한다. 닉슨은 보도 내용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발설자로 의심되는 행정부 고위 인사들에 대한 도청을 연방수사국(FBI)에 지시한다. 후일 워터게이트로 몰락하는 그의 도청 버릇이 싹을 보인 셈이다.
미국의 캄보디아 비밀 전쟁으로부터 40년이 흐른 2009년 12월17일, 아라비아반도 남단의 예멘 정부는 알카에다 은거지를 공격해 34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작지 않은 전과였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동부와 중동을 잇는 예멘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점점 기승을 부려,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상태였다. 지난해 6월에는 한국인 엄영선(당시 34살)씨가 피랍돼 살해당하기도 했다.
올 1월 알카에다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예멘 정부는 그 뒤로도 이따금 소탕전 성과를 발표한다. 당시 일부 예멘 언론은 미군이나 미 중앙정보국(CIA)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세계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예멘 정부가 미국의 대리전을 수행한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하지만 소문의 꼬리는 이번에도 밟히고 말았다. 는 예멘 정부가 밝힌 소탕전 전과 중 적어도 네 건이 미군의 직접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최근 폭로했다. 미군의 첫 직접 개입으로 지목된 지난해 12월17일의 공격은 예멘 전투기의 ‘작품’이 아니라 미 해군 함상에서 발사된 크루즈미사일의 소행이었다. 일주일 뒤인 12월24일과 올해 3월14일, 5월25일의 알카에다에 대한 공격도 미군 전투기와 크루즈미사일이 주인공으로 밝혀졌다.
캄보디아 비밀 전쟁 때 기만술이 동원됐듯 이번에도 ‘페인트모션’이 사용됐다. 지난 5월25일 알카에다 조직원의 집을 노린 미사일이 엉뚱하게도 투항을 권유하러 온 마리브주 부지사 일행의 차량을 덮쳐 부지사 등이 희생됐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했다. 사고는 다른 쪽이 쳤는데 예멘 정부가 모른 체하고 책임을 덮어쓴 것이다.
<font color="#C21A8D">오바마 정부의 ‘메스 전술’</font>그런데 세계 최강 미군은 무엇이 두려워 당당히 공격에 나서지 못했을까? 캄보디아 비밀 전쟁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테러와의 전쟁’의 공식 무대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서부 이외의 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을 미국 내 여론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권 민심이 또 하나의 이슬람 국가가 미국의 전장이 되는 것을 곱게 생각할 리도 없다. 미국은 안팎의 눈치를 살피자니 부담스럽고, 불구대천의 상대 알카에다를 방치하자니 찜찜해 결국 비밀 전쟁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예멘 정부로서도 미국의 ‘공범’으로 인식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예멘 정권이 자발적으로 미군을 끌어들였는지,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의 주장처럼 미국한테서 “(대테러 전쟁에 협조하지 않으려면)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는 식의 협박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는 예멘 말고도 미국이 알카에다 소탕전의 비공식 전선으로 여기는 나라는 10여 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동아프리카의 수단·소말리아·케냐,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모로코,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이 그런 나라들이다. 미 국방부는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의 네트워크를 분쇄하기 위해 각국 주재 대사관에 정보 인력을 늘리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해 9월 미군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관련 인물을 사살했다.
이런 식의 작전은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는 ‘메스 전술’의 적용으로 볼 수 있다. 대군을 동원한 전면전이 아니라 은밀히 소규모 목표물을 치고 빠지는 것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은 지난 5월 이라크·아프간전 같은 본격 침공을 “해머”로 부르며, 알카에다와 같은 비정규군 세력을 토벌하려면 “메스”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과수술처럼 제거가 필요한 부분만 정교하게 도려내는 방식을 말한다. 미 국방부는 숙련된 비밀 작전 인력이 필요해지자 1980년대에 초법적 행위로 지탄받은 이란-콘트라 사건 핵심 인물 등 냉전시대 인물들을 기용하고 있다.
<font color="#008ABD">비밀의 장막, 민간인 사망 이어져</font>하지만 낯선 지역에서 신뢰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원들에게 의존하는 비밀 작전은 불의의 사고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지난해 12월17일 공격에 대한 예멘 의회의 조사 결과, 알카에다와 관련 없는 이들이 41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흘 뒤 불발탄이 터져 3명이 더 숨졌다. 더구나 국제앰네스티는 미군이 집속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큰 폭탄에서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이 퍼져나오면서 터져 축구장 2~3개 넓이를 초토화하는 집속탄은 파괴력과 불발탄에 의한 민간 피해 때문에 국제적 비난 대상이다. 102개국이 서명한 집속탄 금지 협약이 지난 8월1일 발효되기도 했다.
닉슨이 캄보디아 비밀 전쟁을 결심할 때 미군 수뇌부는 공습 대상 지역의 인구가 희박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미군 공습에 의한 피해와 1975년 권력을 잡은 크메르루주의 집단 학살이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역사적 평가로 이어졌다. 그 자체로 부도덕한 전쟁은 비밀의 장막 뒤에서 더 부도덕할 수 있다는 교훈도 함께 남겼다.
이본영 기자 한겨레 국제부문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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