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가 도대체 어디지?”
중국 칭하이성 위수티베트자치주 위수현에서 리히터 규모 7.1의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 4월14일 아침, 광활한 중국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세계,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을 취재하라는 명령을 받고,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났다.
사망자 2200여 명, 부상자 1만2천 명2시간30분 동안 1400km를 날아 도착한 칭하이성 중심 도시 시닝의 작은 공항은 인파로 가득했다. 인민해방군, 주황색 옷을 입고 구조견을 이끌고 온 구조대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기자들…. 위수까지 갈 차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이 도시에서 빌릴 수 있는 차는 이미 다 지진 현장으로 떠났는지, 전화를 거는 곳마다 “이미 차를 다 빌려갔다”는 대답뿐이다. 한밤중, 중국 기자 2명과 함께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어렵게 구한 작은 차에 짐과 함께 구겨타고 해발 4천m가 넘는 칭장고원 위 820km 길을 횡단하는 여정에 나섰다.
한반도의 7배가 넘는 거대한 칭하이성에 인구는 약 530만 명뿐. 지진이 난 위수티베트자치주만 해도 한반도와 같은 크기에 겨우 30만 명이 산다. 가도 가도 사람은 보기 힘들고, 끝없는 초원 위에 유목민이 풀어놓은 마오뉴(티베트 소)와 양떼 녀석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도대체 지진이 나긴 난 건지 헛갈리게 한다. 산등성이나 유목민 몇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 어귀마다 어김없이 불경이 적힌 색색의 깃발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눈부시게 휘날리며 푸드덕거린다. 티베트인들이 불경을 적어놓은 룽다와 타르초란 이름의 기도 깃발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티베트인의 세계로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상징이다.
몇km를 늘어선 구호물자 트럭의 행렬 앞으로 마오뉴의 뿔 모양으로 지어진 문이 나타났다. 16시간 넘게 달린 끝에 드디어 나타난 위수현의 중심 도시 제구진의 입구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감격에 이어 곧바로 ‘폭격을 맞아도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이제 막 세워지기 시작한 이재민촌의 파란 천막들 뒤로 무너진 하얀 불탑이 보였다. 불경을 적거나 새긴 돌인 마니도 지진에 무너져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폐허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걷기도, 숨쉬기도 어렵다.
이 도시에 성한 건물이 한 곳이라도 있을까? 인구가 10만 명도 안 되는 위수현에서 2200여 명이 숨지고 1만2천 명 이상이 다칠 정도로 이번 지진은 큰 재앙이었다. 그나마 도시 앞쪽의 시멘트로 지은 건물은 심하게 금이 간 채 버티고 서 있었지만, 도시 안쪽으로 가면 그야말로 거대한 흙더미 위에 부서진 가재도구가 얹혀 있을 뿐이다. 흙과 나무기둥으로 지은 이 낡은 건물의 폐허는 이곳보다 더 가난한 티베트인 지역인 쓰촨의 간쯔나 시짱(티베트)자치구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민이 많이 살던 곳이다.
살아남은 이에게도 이번 지진은 한없이 가혹하다.
무거운 상자를 앞에 두고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한 어머니가 지치고 막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다리다 구호물자를 막 받은 참이다. 품에서 가는 끈 하나를 꺼내 무거운 상자를 등에 둘러업고 아이 손을 잡더니 발걸음을 옮긴다.
얼른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꺼내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무너진 집 사이를 지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티베트 불탑 아래 천막촌 옆에 있는 이불 하나 없는 빈자리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그는 손짓으로 자신들은 천막이 없다고 한다. 이름을 물어봐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옆에 앉아 있던 이웃이 이들은 몇 해 전 초원에서 온 유목민으로, 남편이 죽은 뒤 구걸로 생활해왔다고 설명해준다.
중국 정부의 집산화 정책으로 초원에서 생활하던 유목민이 도시로 와 정주하고 있지만, 이들이 도시 생활에 적응해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식당이나 가게, 공사장의 임시직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가 많다.
집이 무너진 고원의 밤 추위는, 추위라기보다는 칼날처럼 살을 파고드는 고통이다. 차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면 창문은 꽁꽁 얼어 있었다. 아침에 이재민촌을 찾아가면 천막 없이 이불 몇 개로 이 고통을 견뎌낸 이도 많았다. 이들은 곧 마니를 돌리며 조용히 기도를 시작한다.
주민의 97%가 티베트인인 제구진 곳곳에 자리한 티베트 사원과 붉은 옷을 입은 티베트 불교 승려는 주민들의 버팀목이었다. 승려들의 바쁜 활동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삽을 들고 구조작업을 벌이고, 구호물자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나눠주고, 사원에서 주검을 수습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독경을 하며, 식사 시간이면 주민에게 따뜻한 죽과 전통 빵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쓰촨의 간쯔, 시짱자치구 등 외지에서도 수천 명의 승려가 달려와 구호작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라싸 인근 출신이라는 한 젊은 승려는 “쓰촨 간쯔에서 수련을 하다가 지진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수천 명의 승려와 함께 동포를 도우러 왔다”며 “구조활동도 하고 주민에게 음식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 처지에서 보면, 승려들은 ‘불편한 라이벌’이다. 중국 정부는 가장 민감한 소수민족 지역에서 일어난 이번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1만2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막대한 구호물자를 지원하면서, 한족과 티베트인은 ‘한 가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주민에게는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이며 가장 먼저 달려와 음식을 주고 중국 구조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난한 지역의 폐허를 헤치며 생존자를 찾아준 승려들이 더욱 가까운 존재다.
중국 정부는 4월20일께부터 다른 지역에서 온 티베트 승려들에게 위수를 떠나도록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차원의 애도일인 4월21일, (CCTV)이 하루 종일 지진 희생자 추모 방송을 하는 동안 위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승려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단 한 장면도 비춰지지 않았다. 중국 인민해방군과 구조대원, 의료진들의 영웅담만 가득했다.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4월19일 “일부 ‘해외 적대 세력’이 지진 구호 작업을 방해하려 한다”고 말했다.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영향력, 특히 이들이 상징하는 달라이라마의 영향력에 대한 불안이 엿보인다. 이번 지진이 일어난 칭하이성이 고향인 달라이라마는 지진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위수를 방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달라이라마 요청 무시하는 중국 정부
칭하이성은 과거 칭장고원을 호령하며 당나라와 세력을 겨루는 강대국을 세웠던 티베트인의 땅이다. 18세기 청나라에 복속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정부를 구성했으나 1949년 다시 중국 인민해방군에 점령됐다. 지난 60년 동안 위수 등 칭하이성의 티베트인 지역과 중국 정부 사이에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취재를 마무리할 무렵 마을 어귀에서 가족과 함께 여진을 피해 며칠째 노숙을 해온 바상사전(6)·체르노보전(5) 형제를 만났다. “지진이 났을 때는 많이 무서웠다”면서도 아이들은 이제 웃음을 되찾고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있다. 이 아이들이 좀더 자랐을 때 위수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까? 중국과 이곳 티베트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을까?
위수·베이징(중국)=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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