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남부) 아스완에서 16시간을 운전하고 왔다. 그분을 만나 우리가 얼마나 변화를 열망하고 있는지 전하고 싶었다.”
하니 리즈크는 지난 2월19일 카이로 국제공항 제3청사 앞에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이집트 권위지 은 최신호에서 이날 카이로 공항 주변으로 몰려든 수백 명의 ‘리즈크’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의 자유를 되찾아줄 것이다.” “되돌아갈 곳은 없다. 우린 더 나은 삶을 원한다.”
‘외침’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울림’만큼은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이집트가 어딘가? 공식적으로만 따져, 1981년 10월14일 이후 30년 세월 대통령이 바뀌지 않은 나라다. 1975년부터 부통령으로 군림하며 권좌를 휘두른 그이,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임기 제한 없이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 군림한 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태세다. 막을 수 있을까?
‘리즈크’가 기다린 이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67)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다. 기실 지난해 11월 IAEA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이집트 정치권에서 ‘태풍의 눈’으로 여겨져왔다. 내년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또는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둘째아들 가말)과 맞설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탓이다.
엘바라데이 전 총장은 1942년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무스타파 엘바라데이는 이집트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명망가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통했던 그의 부친은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정권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명문 카이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엘바라데이 전 총장은 1964년 외교관으로 발탁돼 스위스와 미국 등지에서 일했다. 미국 근무 시절엔 뉴욕대에서 국제법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단다.
유엔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은 1980년의 일이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쟁이 터진 뒤에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를 위해 이라크로 파견되기도 했다. 1997년 IAEA 사무총장에 오른 그는 강대국의 이중 잣대를 질타하는 등 줄곧 ‘곧은 자세’를 유지해 제3세계 각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부작용’이 왜 없었을까?
를 포함한 일부 서방 언론이 “스위스 비엔나의 IAEA 사무총장실 전화를 미 중앙정보국(CIA)이 도청하고 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은 것은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부터다. 지난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앞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던 조지 부시 행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내놓은 ‘증거’란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는 곧장 중동권에서 그의 지명도와 인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가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치러진다면 출마를 할 수도 있다. 출마를 한다면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것이다.”
그가 ‘여론의 향배’를 모를 리 없다. 엘바라데이 전 총장은 귀국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숨가쁜 여론전의 중심에 서 있다. 연일 각종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직간접적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겉으로만 따져, 2011년 대선에 대한 그의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넓다.
따져보자. 현행 이집트 선거법만으로 따져, 그의 발언은 ‘불출마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려면, 상하 양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일정한 지지 서명을 받아야 한다. 현실을 보자. 이집트 상하 양원과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건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민주당(NDP)이다. 그의 대선 출마는 가당한 얘기가 아니다.
‘사법부 독립의 기수’부터 사이버 활동가까지그럼에도 귀국 이후 엘바라데이 전 총장이 보이고 있는 행보는 눈길을 끌 만하다. 그는 지난 2월21일 현지 독립 일간지 와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소유한 언론은 정권의 홍보지일 뿐 진정한 언론이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IAEA 사무총장 재직 시절엔 (유엔에 딸린 기관의 수장으로서) 이집트 정치 상황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었다”며 “이제 평범한 이집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할 권리가 있다”는 발언도 내놨다.
잇따라 만나고 있는 야권 인사의 면면도 심상찮다. 카이로대 정치학과 교수이자 ‘부자세습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하산 나파. 케파야(변화를 위한 대중운동)란 단체를 이끌고 있는 조지 이샤크. ‘사법부 독립의 기수’로 추앙받는 퇴직판사 마무드 엘코데이리. 최대 이슬람주의 정치단체 무슬림형제단 대변인인 사아드 엘카타트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맞서 대권에 도전했다가 투옥되면서 양심수로 분류됐던 야당 가드당 당수 아이만 누르. 이 밖에도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대선 출마 지지운동을 벌이는 젊은 ‘사이버 활동가’까지 두루 만나고 있다.
‘느낌’이 있는 걸까? 이집트 관영매체들은 엘바라데이 전 총장의 귀국을 전후로 일제히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원색적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집권당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국민민주당 쪽에선 “국외에서 명망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내 연고는 전무한 인물이 아니냐”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속한 유일한 정당은 이집트 국민뿐이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엘바라데이 전 총장의 발언 수위는 높아만진다. 그는 “이집트의 문맹률이 30~35%에 이르고,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전체의 42%에 육박하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거나, “이런 비참한 현실을 만들어낸 체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독립방송 와 한 최근 인터뷰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지난 1977년 그를 수행해 방문했을 때, 중국은 온통 초가집 일색이었다”며 “불과 30여 년 만에 중국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됐는데, 같은 기간에 이집트는 어떻게 됐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정당 창당은, 이집트에서 허가제로 운영된다. 가부 권한을 쥔 것은 정당위원회(PPC)다. 그 사무총장은 국민민주당 인사가 맡는다. 엘바라데이 전 총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당에 반대하는 정당을 창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여당에 요청해야 하는 꼴”이다. 그는 와 한 인터뷰에서 2011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답변은 선거 두어 달 전에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이든 그의 아들인 가말 무바라크가 대선에 나서든 크게 괘념치 않는다.”
창당 허가권을 쥔 곳이 여당현실은, 이 정도의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이 이집트에 없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도를 했던 무슬림형제단은 ‘과격파’로 몰렸고, 아이만 누르는 ‘파렴치범’으로 투옥됐다. 그래서다. 아주 오랜만에, 이집트에서 진정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느낌이다. 은 3월3일치에서 이렇게 전했다.
“이른바 ‘엘바라데이 현상’을 감지한 중동 각국에서, 어떻게 한 개인이 갑자기 한 국가의 정치 지형 자체를 바꿔낼 수 있는지 묻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 등으로 이집트의 위상을 한껏 높였던 그가 (잠재적) 대선 후보로 국내 정치에 뛰어든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인사들에게 자극이 될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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