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일대에 폭설이 쏟아진 2월10일 한 남성이 의사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경제위기의 한파를 뚫고 미 로비 업계는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REUTERS/ JASON REED
지난해 미국의 경제위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임금도 일자리도 줄어만 갔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들도 줄줄이 도산했다. 그 위기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버텨낸 업계가 있다. 아니,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경제위기 무풍지대, 바로 로비 업계다.
‘변화’를 막기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미 시민단체 ‘책임정치센터’(CRP)가 2월12일 펴낸 자료집을 보면, 2009년 한 해 미 로비 업계가 벌어들인 돈은 34억7천만달러(약 4조1930억원)에 이른다.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2008년보다 5% 이상 ‘성장’을 이뤄낸 게다. 특히 2009년 4분기의 ‘성적’은 눈이 부실 정도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로비자금이 16%나 뛰어오르면서, 사상 처음으로 분기별 로비자금 규모가 9억달러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CRP는 자료에서 “지난해 10~12월 석 달 동안 미 워싱턴 정가에 뿌려진 로비자금은 9억5510만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큰손’은 역시 제약·의료 업계였다. 2009년 한 해 미 제약·의료 업계가 뿌린 로비자금은 모두 2억6680만달러에 이른다. 2008년보다 11% 늘어난 규모다. 한 해 단일 업계가 쓴 로비자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정유 업계(1억6840만달러)나 보험 업계(1억6420만달러)보다 1억달러 이상 많은 로비자금을 쏟아부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의료보험 개혁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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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각 분야에 걸쳐 ‘변화’를 강조하다 보니, 업계로선 이를 막아내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로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터넷 매체 는 2월13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 공화당계 로비스트는 이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워싱턴 로비 업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워싱턴 정가 안팎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로비 업계 경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우린 그저 민주당이 하는 일에 공화당이 반대하도록 만들면 된다. 사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그리 되는 일이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공화당계는 물론 일부 민주당계 로비스트들도 은행으로 ‘입금’을 확인하러 가면서 오바마 대통령을 비웃고 있다.”
로비 활동의 방식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은 로비스트가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이 지난 2월11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상황은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지난해 12월4일 오바마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서 지역 주민들과 잇따라 만나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몇 시간 뒤 톰 리지 전 펜실베이니아주 주지사가 〈MSNBC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리지 전 주지사는 방송에서 “세금 감면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 지원 등도 효과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스스로 강조한 것처럼 녹색성장에 적극 투자하는 것”이라며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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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리지 전 주지사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는 점이다. 은 “리지 전 주지사는 지난 2005년부터 미 최대 원자력발전 업체인 엑셀론의 이사로 재직해왔다”며 “그동안 엑셀론에서 받은 급여만도 53만여달러에 이르며, 2009년 3월 현재 24만여달러 상당의 이 업체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 이를 ‘군산복합체’에 빗대 ‘로비-미디어 복합체’라고 꼬집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 2월16일 오바마 대통령은 80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대출보증을 뼈대로 하는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 지원 대책을 내놨다.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지원, 우연일까?‘의료보험 개혁 법안, 금융 개혁 법안, 기후변화 관련 법안….’ 2010년에도 미 의회는 각종 개혁 입법 과제를 산처럼 쌓아두고 있다. 게다가 11월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래저래 미 로비 업계는 또 한 번 ‘기록적인 해’를 보낼 공산이 커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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