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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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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의정서’ 낼 수 있을까

최대 규모로 열릴 ‘기후변화협약 당사자국 회의’…
미국 감축안은 4%에 그치고 개발도상국은 별도 회의로 먹구름
등록 2009-12-09 17:13 수정 2020-05-03 04:25
석탄을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는 독일 동부 콧버스 외곽의 야엔슈발데 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12월2일 거대한 연기가 치솟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REUTERS/ PAWEL KOPCZYNSKI

석탄을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는 독일 동부 콧버스 외곽의 야엔슈발데 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12월2일 거대한 연기가 치솟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REUTERS/ PAWEL KOPCZYNSKI

세계 재보험 업계의 큰손인 ‘뮤니크 리’(뮌헨재보험)가 12월1일 눈길을 끄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최근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하는 가뭄·태풍·홍수 등 자연재해가 지난 1980년대에 비해 무려 3배나 늘어났다는 게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업체는 “1980년 이후 해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약 11%씩 커지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최소한 한 해 몇십억달러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이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더 이상 미래 세대를 담보로 늑장을 부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2년 유효기간 다하는 교토의정서

같은 날 영국 은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가 펴낸 최신 보고서 내용을 따 “남극 빙하가 갈수록 빨리 녹아내리면서 지구촌 해수면이 다음 세기까지 평균 1.4m 상승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세계 8개국 100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작성한 ‘남극의 기후변화와 환경’이란 보고서에서 SCAR는 “대기 온도가 높아지면서 해수 온도도 높아졌고, 높아진 수온 탓에 남극 서부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며 “빙하 녹은 물이 바다로 유입되면서 해수면 역시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은 남극협약(ATS)이 5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기후변화’란 말이 우리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다. 매일이다시피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의 조짐을 알리는 경고가 줄을 잇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그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지구정상회의)에서 싹을 틔웠다.

당시 회의에서 인류는 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공감했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가기로 합의했다. 그 결심을 담아 만들어진 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협약은 1994년 3월 비준국이 50개 나라를 넘어서면서 발효됐고, 이듬해 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연례 당사국회의(COP1)를 열었다. 그리고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회의에서 회원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뼈대로 한 ‘교토의정서’에 합의했다. 38개 선진개발국이 2008~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줄이도록 의무화한 게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선진개발국과 개발도상국으로 갈린 인류는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은 자국 경제엔 악영향을 끼치면서도 중국·인도 등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정서 비준조차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의정서가 발효된 것은 합의한 지 7년여 만인 2005년 2월의 일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지구촌 차원의 첫 행동강령인 교토의정서는 2012년으로 효력 기간이 만료된다. 이에 따라 2007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당사국회의에서 회원국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지를 담아 ‘발리행동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 14차 당사국회의는 논란 속에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12월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15)에 지구촌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다.

기금 마련은 어렵지 않아

코펜하겐 회의는 지금까지 열린 당사국 회의 중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개막을 일주일 앞둔 12월1일 현재까지 192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98개국에서 국가수반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이날까지 회의 조직위에 등록한 세계 각국의 취재진만도 5천 명을 넘어섰단다. 주최국인 덴마크 외교부는 “각국 대표단과 정부 간 단체, 비정부 단체의 참가 신청이 몰리면서 1만5천 명 규모의 회의장 수용 인원을 이미 초과했다”고 밝혔다. 성과도 ‘최대 규모’로 낼 수 있을까?

‘포스트 교토’ 체제를 준비해온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는 선진개발국에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25~40%까지 줄이고, 2050년까지는 80~95%까지 줄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내놓은 감축안은 단 4%에 그친다. 간극이 너무 크다. 개발도상국 쪽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중국·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수단 등은 지난 11월 말 베이징에서 별도의 회의를 열어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선진개발국이 기술과 자본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구촌을 뒤흔든 경제위기도 코펜하겐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는데다 기업 활동은 크게 위축되면서, 이른바 ‘재생 가능 에너지’ 사업에 대한 각국 기업의 투자가 눈에 띄게 하강 곡선을 그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래저래 ‘코펜하겐 의정서’를 도출해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법적 효력을 갖춘 의정서 채택은 내년으로 미루고, 올해는 우선 각국 정상들이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담은 정치적 합의라도 이뤄내자”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코펜하겐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최소한’은 무엇일까? UNFCCC 쪽에선 크게 네 가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선진개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느 정도까지 줄일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개발도상국가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것인지에도 합의해야 한다. 셋째,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넷째, 그 자금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기금 마련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UNFCCC 쪽은 “선진개발국이 오는 2012년까지 적어도 한 해 100억달러씩은 종잣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도 이에 협조적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지난 11월28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향후 3년 동안 13억달러를 출연할 것”이라며 “다른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도 같은 조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련된 자금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가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가 핵심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문제가 핵심이다. 뉴스 신디케이트 는 12월2일 이보 드 보어 UNFCCC 사무총장의 말을 따 “(회의 개막에 앞서) 선진개발국이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처라고 제안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의 주최국인 덴마크 정부가 내놓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절반까지 줄이자’는 제안(이른바 ‘50/50’)에 개발도상국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앨프 윌스 남아프리카공화국 협상 대표는 12월2일 과 한 인터뷰에서 “선진개발국과 개발도상국에 절반씩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기후는 더디게 바뀐다. 가시적인 변화를 감지했을 즈음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다. 그래서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후변화가 몰고 올 파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공동의 위협에 직면한 인류는 코펜하겐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잠시라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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