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대한민국 검찰의 논리가 온두라스에서 통하고 있다. ‘과정은 불법이지만, 결과는 유효하다. …국회에서 재논의하라.’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미국이 가져다 썼다. 중남미에서 20년 만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가 그렇게 합법으로 굳어지고 있다.
강력히 비난하던 미국의 태도 돌변해
2006년 1월27일 취임한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은 지난 6월28일 그 직을 잃었다. 그날 새벽 수도 테구시갈파 중심가 대통령궁을 장악한 군부는 국민이 뽑은 국가원수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파자마 바람으로 국외로 추방됐던 셀라야 대통령은 9월21일 국경을 넘어왔지만, 그새 정부를 꾸린 쿠데타 세력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준비했다. 그는 브라질 대사관에서 지금껏 버티고 있다.
6월의 쿠데타 이후 온두라스가 2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국 은 12월1일치에서 “셀라야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줄잡아 4천 명이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반역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납치·성폭행·고문 같은 흉흉한 단어가 배회하더니 급기야 ‘실종’과 ‘암살’이란 단어마저 떠돌기 시작했다. 쿠데타에 반대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는 폐쇄됐다. 방송장비는 압수되거나 파괴됐다. 최루탄과 통금은 일상이 됐다.
쿠데타 직후 이를 강력히 비난했던 미국의 태도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제재를 거론하더니, 지난 10월 말 국무부 대표단이 온두라스를 방문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다. “온두라스 국민은 스스로 대표자를 뽑을 권리가 있다. 셀라야 대통령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겠다.” 미 국무부는 그렇게 발표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여부는 의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고도 했다. 강도에게 피해자를 내맡겼으니, 쿠데타 세력에겐 축복이었다.
그리고 11월29일 마침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후보는 단 2명이었다. 쿠데타를 열렬히 지지한 야당 국민당의 포르피리오 로보 후보와 역시 쿠데타를 열렬히 지지한 여당 자유당의 엘빈 산토스 후보다. 온두라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발표를 보면, 약 61%의 투표율을 보인 이날 선거에서 로보 후보는 56%를 득표해 38%를 얻는 데 그친 산토스 후보를 물리치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에 따르면 이날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는, 이를 증명만 하면 각종 ‘현금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단다. 쿠데타를 앞장서 지지했던 온두라스 거대기업들이 하나같이 지갑을 연 덕이다. 로베르토 미첼레티 과도정부 대통령은 “투표율이 높은 것은 선거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민주주의재단(NDI)의 지원을 받은 현지 선거감시 단체 ‘아가모스 데코크라시아’ 쪽에선 과 한 인터뷰에서 “1천 곳의 투표소를 표본조사한 결과, 투표율은 48% 선에 그쳤다”고 전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을 위시해 코스타리카·페루·파나마·콜롬비아 등은 “온두라스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 ‘좌파 정권’에선 “쿠데타가 만들어낸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중남미 일대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온두라스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쿠데타에 정당성 제공핵심은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였다. 그의 임기는 내년 1월27일까지다. 어쩔 것인가? 대선 사흘 만인 12월2일 온두라스 의회는 셀라야 대통령 축출의 합법성을 따져물었다. 쿠데타의 명분을 제공한 온두라스 대법원은 이날 셀라야 대통령 축출의 정당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놨다. 10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청문회는 늦은 밤 진행된 표결의 결과가 말해준다. 찬성 111표 대 반대 14표, 성공한 쿠데타는 이로써 합법이 됐다.
“셀라야를 권좌에 복귀시키는 것은 우리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는 처사다. 우린 불법을 저지른 게 없다.” 카를로스 카탄 온두라스 의회 의원은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빅토르 바르니카 의원은 과 한 인터뷰에서 “셀라야 대통령을 권좌에 복귀시키는 것은 온두라스의 국익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위기가 계속되면서, 민주주의가 또다시 중대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억지가 낯익다. “불행한 과거를 덮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자.”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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