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3일 미 의회에서 공화당 일리아나 로스 레흐티넌 의원(플로리다주·하원 외교관계위 부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결의안 제867호를 두고 표결이 이뤄졌다. 하원 결의안은 재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표를 던져야 통과된다. 특정 사안에 대한 하원의원 전체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정치적 무게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중단은 중단인데, 멈춤 없는 중단?’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땅에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10개월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이튿날인 11월26일,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이 바라다보이는 ‘동예루살렘’의 길로에서 유대 정착민을 위한 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REUTETS/ RONEN ZVULUN
이날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전체의 약 80%에 이르는 344명, 통과에 필요한 268표를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인 결과였다. 반대표는 36표(8%)에 그쳤고, 기권표는 22표(5%)였다.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 미 의회도서관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결의안의 제목에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다자간 외교무대에서 ‘가자지구 분쟁에 대한 유엔 실태조사단 보고서’를 지지하거나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할 것을 촉구함”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의 유엔 보고서는 흔히 ‘골드스톤 보고서’로 불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관 출신인 리처드 골드스톤 조사단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벌어진 인권유린의 진상을 밝히는 데 앞장섰던 골드스톤 단장은 유대인이기도 하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지난 5월 초 공식 활동을 시작한 조사단은 석 달여 방대한 조사 과정을 거쳐 9월15일 모두 575쪽에 이르는 최종 보고서를 펴냈다.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를 조목조목 거론했지만, 하마스 쪽의 인권유린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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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 하원은 결의안에서 보고서가 “편향돼 있고, 아무런 정당성도 갖추지 못했다”고 규정했다. ‘편향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밝히지 않은 채였다. 하원은 이어 유엔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보고서 내용에 찬동하는 결의안이 나오면, 반대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대통령과 국무장관에게 주문했다. 또 조사단이 마련한 책임규명 및 재발방지 노력을 이행하는 조치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 결의안의 마지막 문장이 어떨지는 쉽게 예견된다. “폭력 무장집단과 그 지원세력에게서 국민을 보호하려는 이스라엘의 권리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한다.”
포성이 멈춘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가자지구는 여전히 폐허인 채다. 건축자재 반입조차 가로막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봉쇄 때문이다. ‘폭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22일 이른 새벽 이스라엘 군당국은 전투기를 동원해 이집트와 맞닿은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철공소 1곳과 지하터널 2곳에 맹폭을 퍼부었다고 은 전했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철공소는 무기공장, 지하터널은 무기밀래 통로’라고 주장했다. 이날 폭격으로 애꿎은 가자 주민 10여 명이 다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이슬람권 국가를 상대로 한 연설에서 “이스라엘은 정착촌 건설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오랜 지연 끝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월25일 “앞으로 10개월 동안 정착촌에서 신규 주택 건설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외교장관은 이튿날 에 출연해 “이스라엘로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며 “이제 공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넘어갔으며, 우리가 그랬듯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도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조지 미첼 미 중동특사는 “정착촌 건설 중단 선언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이스라엘 정부의 결정보다 의미가 크다”고 치켜세웠다. 그런가?
는 11월27일 인터넷판에서 “착공하지 않은 공사는 개시할 수 없지만, 진행 중인 공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공사 중’인 정착촌은 모두 3천여 곳에 이른다. 이스라엘 정부는 특히 “신축 유예 결정과 관계없이 교육시설 등 공공건물 공사는 차질 없이 착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계획된 것만 모두 28개동이란다. 도로 등 인프라 공사도 예외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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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서안지역에서 떼내 예루살렘으로 강제 병합한 동예루살렘 지역은 정착촌 확대 건설 유예 대상에서 빠져 있다.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으로 편입된 동예루살렘 지역엔 50만 유대인이 270만 팔레스타인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이 정착촌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은 거대한 분리장벽을 세웠다. 장벽에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도시는 섬으로 고립됐다. 누가 ‘편향’을 말하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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