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1ℓ에는 줄잡아 10억~100억 개의 ‘원핵생물’로 불리는 단세포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들보다 ‘고등’한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동물성 플랑크톤도 100억~1천억 마리가 바닷물 1ℓ에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 말하자면,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는 건 해양생물의 무더기를 헤쳐나가는 작업인 게다.
그 많은 생명체가 인류를 살리고 있다. 먹을거리만 말하는 게 아니다. 해양생태학자들은 흔히 “열대우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바다를 뒤덮은 플랑크톤이 흡수하는 양이 엇비슷하다”고 말한다. 기후변화의 시대, 바다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평균기온 상승-가뭄·홍수-해수면 상승-사막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의 해악으로 익히 알려진 현상들이다. 온실가스로 둘러싸인 지구가 덥혀지면서 만들어낸 몸부림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측면의 해악도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9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연합 주최로 열린 해양생태 관련 회의에서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북극해가 이를 웅변해준다. 이 10월4일 보도한 회의 내용을 더듬어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팀은 오랜 기간 북극해에 자리한 스발바르 열도 일대의 바닷물 분석작업을 벌여왔단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이 회의에서 내놓은 결론은 이렇다. “지구촌 차원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늘면서 북극해가 전례 없이 산성화하고 있다. 특히 북극점 일대 바닷물은 산성화가 심해지면서 향후 10년 안에 부식성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바닷물이 산성화해 부식성을 띠게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은 연구팀 장 피에르 가투소 교수의 말을 따 “북극해가 부식성을 띠게 되면 홍합을 비롯한 어패류의 조가비가 물에 씻겨 용해될 수 있다”며 “이는 연체동물인 어패류의 생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어패류의 생태가 위험해지면, 이들을 먹이로 삼아 살아가는 다른 생물에게도 위기가 번질 수밖에 없다. 바닷물의 산성화가 지속되는 건, 곧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위태로워진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콩알만 한 크기의 해저 달팽이 ‘리마기나 헬리기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바닷물이 부식성을 띨 정도로 산성화하면 이 희귀한 달팽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리마기나 헬리기나는 수염고래를 비롯해 북극해 인근에서 많이 나는 연어와 청어 등의 어류, 각종 해양 조류들이 즐기는 먹잇감이다. 조그만 연체동물의 비극이 작은 어류에서 거대한 해양 포유동물까지 뭇 생명에 두루 퍼지게 된다는 얘기다.
따져보자. 화석연료를 때는 지구촌 전역의 공장과 발전소의 굴뚝에서, 세계 각국의 도로를 누비는 자동차 배기장치에서 대기로 뿜어져나오는 이산화탄소 총량의 4분의 1가량을 5대양이 흡수하고 있다. 이를 하루 단위로 쪼개 계산하면, 평균 600만t 이상의 온실가스가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바닷물과 만나 용해된 이산화탄소는 산화탄소로 바뀐다. 바닷물의 산성도가 높아지는 이유다. 은 가투소 교수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위도가 높아질수록 바닷물의 산성도가 심해졌다. 적도 인근 바닷물의 산성도가 가장 낮은 반면, 남북 극점 부근 바닷물의 산성도가 가장 높았다. 이산화탄소는 바닷물 온도가 낮을수록 잘 용해되기 때문이다. …연구·분석 결과 지금까지 예측해온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2018년께면 북극해의 10%가량이 산성도가 심해 부식성을 띠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고 가정해보자. 2050년이면 북극해의 절반이, 22세기가 시작되는 2100년이면 북극해 전역이 부식성을 띨 정도로 산성화가 진척될 것이란다. 어쩔 것인가? 가투소 교수는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다.
교토의정서 대체할 규제 조처는 지지부진“온갖 생태공학적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소용없을 거다. 지금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면 파국을 막을 방법이 없다. 바닷물 산성화를 포함해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는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 그 한 가지뿐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지구촌의 자발적 노력은 교토의정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토의정서는 2012년으로 효력을 잃게 된다. 유엔은 12월7~18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기후변화회의를 열어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조처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열린 여러 차례 회의에선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오늘’이라도 깨닫을 수 있을까? ‘내일’이면 늦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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