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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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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죽어가는 소말리아

내전 격화에 극심한 가뭄 겹쳐 120만여 명 난민 생활…주변국 탈출길도 장사진
등록 2009-09-24 11:18 수정 2020-05-03 04:25

이슬람력 9월, 라마단은 ‘신성한 달’이다. ‘파즈르’(해 뜰 무렵)부터 ‘마그립’(해 질 녘)까지, 그 한 달 신실한 무슬림은 ‘사움’(단식)의 의무를 지켜가며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신의 뜻에 다가서야 한다. 라마단의 단식이 이슬람을 떠받치는 ‘다섯 기둥’으로 꼽히는 이유다. 위도와 경도에 따라 나라별로 하루쯤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올 라마단 기간은 대체로 8월22일~9월20일이다.

지난 9월4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외곽 아프고예 부근 난민캠프에서 피난민들이 물통을 길게 늘어놓은 채 급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REUTERS/ FEISEL OMAR

지난 9월4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외곽 아프고예 부근 난민캠프에서 피난민들이 물통을 길게 늘어놓은 채 급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REUTERS/ FEISEL OMAR

‘아프리카의 뿔’에 자리한 소말리아는 ‘100%’ 이슬람 국가다. 900만 인구(2008년 유엔 추정치)가 예외 없이 수니파 무슬림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이 전복된 이후 버젓한 정부 없이 햇수로 20년을 살아왔다 해도, 라마단의 신성함이 한 치도 덜할 리 없다. 그런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9월4일부터 11일까지 소말리아의 상황을 종합해 내놓은 최신 내용을 훑어보자.

살인적인 생활물가… 가뭄에 목축 큰 타격

“지난 2008년 3월 시점과 비교해 쌀과 당밀 등 식료품 가격이 44%가량 떨어졌다. 지난해에 비해 생필품 가격이 떨어진 것은 동아프리카 국가 중 소말리아가 유일하다. 하지만 생활물가 수준은 여전히 살인적이다. 가뭄이 극심한 지역을 중심으로 오는 12월까지 도시 빈민층의 식량 사정이 극히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가뭄으로 유일한 생계 수단인 목축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극한 유혈사태도 여전하다. 이웃나라 브룬디와 우간다에서 파병한 4천여 아프리카연맹(AU) 평화유지군이 수도 모가디슈에 주둔하고 있지만, 알샤바브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전투는 라마단 기간 내내 치열하게 전개됐다. 라마단을 피로 물들였다. OCHA는 보고서에서 “지난 일주일 새 수도 모가디슈의 과도정부 청사 주변으로 공세가 집중되면서, 50명 이상이 숨지고 적어도 80명이 다쳤다”며 “정부군도, 이슬람 반군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전투를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앞서 은 9월10일 “최근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투는 지난 20년 세월 라마단 기간에 벌어진 유혈사태 중 최악”이라고 전했다. 다잡아 성스러워야 할 나날에 이 무슨 ‘불경’인가.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미 지난 5월 소말리아인 약 120만 명이 국내난민(IDPs)으로 떠돌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유혈사태가 더욱 격해지면서, 20만 명이 추가로 난민살이로 내몰렸다. 특히 수도 모가디슈 중심가에서 유혈충돌이 쉼없이 이어지면서, 절대다수 주민이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단다. 이들 대부분은 모가디슈 외곽으로 약 15km 떨어진 아프고예로 향하는 길목에 몰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난민기구는 지난 7월 내놓은 현장보고서에서 “4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아프고예 일대가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으로 변해버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새로 피난길에 오른 이들은 멀리 가뭄이 극심한 중남부 일대까지 내밀리고 있다. 더러는 목숨을 걸고 아덴만 너머 예멘 땅을 향하기도 한단다. 중동의 부유한 ‘이슬람 형제국’이나 서유럽으로 향하는 발판으로 삼을 요량인 게다. 더러는 땅길로 국경을 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팸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남쪽으로 향한 소말리아 난민들은 케냐 북부 다다브 난민캠프로 몰려들고 있다. 이미 애초 수용 계획 인원의 3배가 넘는 약 28만 명의 난민이 이곳에 몰려 있단다. 그럼에도 달달이 8천여 명의 난민이 추가로 유입되고 있다. 옥스팸은 보고서에서 “인구 밀집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간이 화장실 1곳을 20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형편”이라며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적었다.

케냐 국경 난민촌 매달 8천 명씩 늘어나

서쪽으로 향한 이들은 에티오피아 국경을 넘고 있다. 규모가 조금 작은 그곳 보콜마요 난민캠프도 다다브 캠프와 다를 바 없다. 이미 수용 한도를 훌쩍 넘어선 1만여 명이 다닥다닥 붙어 살고 있는 보콜마요 캠프엔 요즘도 한 달에 1천 명 이상씩 신규 난민이 유입되고 있단다. 아프고예·다다브·보콜마요에선 라마단이 따로 없다. ‘비자발적 사움’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어디 떠난 자뿐일까. OCHA는 이미 지난 7월 소말리아 인구 3분의 1이 넘는 약 35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받아야 버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말리아의 ‘라마단’이 너무 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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