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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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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매향리’의 외로운 투쟁

미군 헬기 훈련장 확대 계획에 3년째 농성 중인 오키나와 다카에 마을 주민들
“이대로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았으면”
등록 2009-08-21 14:22 수정 2020-05-03 04:25

미군의 기지 재편 전략에 맞서 3년 동안 싸우고 있는 산골 마을이 있다. 일본에서도 으뜸가는 시골이자 낙후 지역인 오키나와 북부의 다카에 마을이다. 다카에는 오키나와현 히가시촌에 속한 시골 마을이다. 일본 본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산골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국제적 생태 보고인 얀바루숲 한 자락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왔다. 마을은 얀바루숲 동쪽 끝에 있다. 숲과 함께 살아온 인구 150명 남짓한 이 마을이 최근 3년 동안 조용할 날이 없다. 미 해병대 헬기 훈련장 건설 때문이다. 지금 주민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마을 입구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미 해병대의 헬기 훈련장 건설을 반대하는 다카에 마을 주민들이 현장 진입로에 ‘기지 반대’라고 적힌 팻말을 붙여놓았다. 오른쪽 사진은 진입로에 설치한 주민들의 농성 텐트 내부.

미 해병대의 헬기 훈련장 건설을 반대하는 다카에 마을 주민들이 현장 진입로에 ‘기지 반대’라고 적힌 팻말을 붙여놓았다. 오른쪽 사진은 진입로에 설치한 주민들의 농성 텐트 내부.

지난 2006년 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의 재편을 담은 ‘미-일 특별행동위원회’(SACO) 합의의 일환으로 다카에 마을 주변에 헬기 훈련장 6곳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훈련장은 다카에 마을을 에워싼 형국으로 들어설 계획이었다.

마을 에워싸고 헬기 훈련장 6곳 신축

주민들은 이미 오키나와 북부 훈련장을 오가는 헬기들의 소음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다. 이들에게는 마을 바로 옆에 신규 헬기 훈련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6곳의 헬기장 예정지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은 마을로부터 불과 2km 떨어져 있었다.

다카에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전역의 주민들에게 군용 헬기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사고와 소음·공해 때문이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몰려 있다.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미 해병 헬기가 추락한 사고를 비롯해 헬기가 떨어져 사고가 나는 게 다반사다. 올해 1월에도 나고시의 초등학교 근처에 미군 헬기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집 근처에 헬기 기지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대형 사고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2006년 2월 다카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 주변에 헬기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해 3월 오키나와 방위국에서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미-일 정부 합의’라는 말에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었다.

“신설될 헬기장에 대한 어떤 정보도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정부는 이미 결정됐으니 바꿀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주민단체 ‘헬기장은 필요 없어’의 공동대표 아시미네 겐을 비롯한 다카에 마을 주민들은 현청과 방위국에 달려가 호소해봤지만, 일본 정부와 현청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2007년 7월, 헬기장 건설을 위한 방위국의 공사 차량이 다카에 마을로 들어왔다.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얀바루숲의 전경. ‘이타지’라는 너도밤나뭇과의 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종이 정글을 이루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얀바루숲의 전경. ‘이타지’라는 너도밤나뭇과의 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종이 정글을 이루고 있다.

마을 주민 모두가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공사 예정지 입구는 방위국 직원과 주민들이 얽혀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사 예정지로 통하는 진입로를 막았다. 그곳에 천막을 치고 난생처음으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주민인 이사 이쿠코는 “우린 그저 평범한 시골 사람들이라, 사실 겁도 많이 났고 당황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한판 세게 붙으면’ 싸움이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다카에 마을 앞에 설치된 헬기장 반대 연좌농성 텐트 위로는 지금도 수시로 시끄러운 굉음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오키나와 북부 헬기 훈련장을 오가는 군용헬기의 소음과 진동이다. 농성장 텐트가 들썩거릴 정도다. 저공으로 날아갈 경우에는 텐트 위 20m 상공까지 낮게 날기도 한다.

수직 이착륙기 ‘MV-22 오스프레이’의 공포

“지금도 밤마다 아이가 울어요. 밤에도 계속되는 헬기 훈련 때문이지요. 현재 상태로도 헬기 소음은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집 근처에 헬기장이 또 생긴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카에 마을 주민 모리오카 나오코의 말이다. 게다가 그의 걱정은 더 늘었다. ‘MV-22 오스프레이(Osprey)’기 때문이다. 다카에 마을 주민들이 미 해병대 헬기장을 반대하는 이유에는 헬기장 신설과 동시에 들어와 본격적인 훈련을 전개할 항공기 ‘MV-22 오스프레이’에 대한 우려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군이 한때 도입을 고려하다 검토 단계에서 백지화한 이 기종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쌍발 군용기로, 미 해병대의 최신 강습용 수직 이착륙기(틸트 로터·Tilt Rotor)다. 신속한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지만 사고가 빈번해 안전성 논란이 크다. 미국에서는 잦은 추락으로 ‘미망인’이란 별명이 붙여져 있다.

주민들의 저항에는 자연과 공존해온 역사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백 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다카에 마을 주민들에게 숲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오키나와 북부 전체의 80%가 산악 지형이다. 오키나와 북부의 숲 지역을 보통 ‘얀바루’(山原)라고 부른다. 다카에도 그런 얀바루숲에 자리한 산골 마을이다.

4천km의 일본열도 가운데서도 최고의 생물다양성을 간직한 곳이 바로 얀바루숲이다. 국제적인 보호종이 즐비하다. ‘이보이모리’는 양서류이면서도 파충류의 특징을 가진 도롱뇽의 일종이다. 날지 못하는 새인 ‘얀바루쿠이나’와 딱다구리의 일종인 ‘노구치게라’ 등도 전세계에서 오직 여기에만 살고 있다. 얀바루숲이 없어지면 이곳에서 활보하는 보호종들도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얀바루숲의 파괴는 곧 전세계적인 손실이다. 국제사회도 미군 당국과 일본 정부에 기지 건설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기금(WWF)에서도 성명을 내고 헬기 훈련장 건설 중지를 요구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얀바루 고유종 서식처에 대한 보전과 적합한 환경영향평가를 권고했다.

그러나 당국의 태도는 달랐다. “2할의 다카에를 희생시키고, 다른 8할의 히가시촌을 살리는 편이 낫다.” 지난해 10월23일 주민 간담회에서 다카에 마을이 속한 기초자치단체인 히가시촌 촌장이 한 말이다. 미군 헬기장 건설을 위해 히가시촌의 가장 작은 마을인 다카에가 양보하라는 압력이었다.

국제 환경단체들 거들고 본토서도 지지 행렬
사진 위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오직 오키나와 얀바루에만 살고 있다는 ‘얀바루쿠이나’, 아래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알려진 ‘이보이모리’.

사진 위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오직 오키나와 얀바루에만 살고 있다는 ‘얀바루쿠이나’, 아래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알려진 ‘이보이모리’.

당시 주민 대표로 자리에 있었던 아시미네 겐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전체 주일 미군기지의 75%를 오키나와에 떠넘기는 것과 똑같은 논리였습니다.” 히가시촌 의회에 다카에 마을 대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워낙 인구가 적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대변할 사람조차 없는 상황에서 희망은 연좌농성뿐이었다.

하지만 다카에 주민들의 싸움은 외롭지 않았다. 다카에 마을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 현내에서는 물론 일본 본토 각지에서 찾아오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연좌농성장을 찾는다. 외부 단체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연좌농성이 시작된 뒤 일본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브로콜리 숲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다. 얀바루숲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브로콜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다카에 마을 상황을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 본토 전역에 알리는 일을 한다. 현청과 방위성 등 당국을 상대로 하는 싸움도 중요하지만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본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모임 회원들을 실은 차량이 다카에와 중남부의 도시를 왕복한다.

주민들의 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다카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얀바루숲의 거대한 자연과 일상화된 헬기 훈련이다. “주민의 집에서 묵다 새벽에 깬 적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헬기 소리 때문이지요.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무서웠습니다.” 오키나와 국제대학 학생 에노모토 마유미의 이야기다. 본토 일본인이 겪는 충격은 더 크다. 교토에서 온 가토 다카시는 “일본 본토 면적의 0.5%에 불과한 이 섬이 처한 상황을 정작 본토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디스어그리 프로젝트’(Disagree Project)의 활약도 크다. 이 단체는 2005년 오키나와 류큐대학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오키나와에 강요되는 불합리한 정부 정책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평화운동에 참여한다. 시민수업, 레이블 파티, 영화 상영 등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젊은이들은 다카에 마을에 몇 개월씩 머물면서 얀바루의 유기농법과 전통공예를 배우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다카에 마을의 문제를 체험하는 것이다. 오키나와가 처한 역사적·시대적 현실에 점차 무관심해지는 젊은 세대들로서는 새로운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음악회와 축제 통해 우의 다지며 힘 북돋아

다카에 마을 주민회관인 ‘브로콜리의 집’에서는 매일 밤마다 ‘얀바루 음악회’가 열린다. 연좌농성장에서 보였던 낮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다. 멜로디언, 기타, 만돌린 등 모두가 하나씩 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외지인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그렇게 밤이 간다. 일본 본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다. 이런 마을의 호흡이 투쟁을 유지해주는 힘이다.

오키나와 통치권이 미 군정에서 일본 정부로 전환된 1972년 이후, 오키나와 북부의 자연은 급속도로 파괴됐다. ‘본토와 같은 수준’이라는 슬로건 아래 오키나와 진흥 개발 특별조치법이 통과되고 임도와 댐 건설 등 각종 공공사업이 섬 곳곳에서 진행됐다. 현재까지 수십조엔의 돈이 중앙정부로부터 투입됐다. 이런 공공사업 자금과 미군기지 유치 및 보상 지원금, 관광 수입 등이 오키나와현의 가장 큰 수입이다. 모두 외부에서 받는 돈들이다. 자연스럽게 ’의존경제‘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얀바루 마을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웅변한다. “큰 리조트도 호텔도 지역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농업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지요. 지금 오키나와 지역은 10%라는 일본 최저의 식량 자급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린 투어리즘’ 등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벌인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봐요.” 15년째 얀바루숲 근처 오오기미촌에서 유기농 농업을 해오고 있는 기보 노보루의 말이다.

다카에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기지도 개발도 아닙니다. 풍부한 얀바루의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고 싶어요.” 다카에 마을 주민 이사 이쿠코가 꿈꾸는 얀바루의 미래다.

오키나와(일본)=글·사진 임미려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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