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권.’(Right to Food)
굶주리지 않을 자유, 배고프지 않을 권리, 하늘이 내린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다. 지구촌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1966년)에서 일찌감치 ‘식량권’(제11조 2항)을 인권의 하나로 규정한 것은 지당하다.
협약에 따르자면, 가입국 정부는 자국민이 스스로 충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침해해선 안 된다. 기업 등 민간 부문이 국민의 식량권을 침해하도록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또 각 개인과 집단이 스스로 충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협약상 그러하다. 하지만 협약 가입만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이른바 ‘국제사회의 약속’이란 게 늘 이런 식이다.
사들인 땅 20%는 식량 대신 연료용 곡물 재배돈 많은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농토를 입도선매하고 있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 은 7월3일치에서 “땅 뺏기”또는 “신식민주의”라고 표현했다. 은 유엔 등의 자료를 따 “(지난해부터만 따져도) 신흥개발국과 중동의 걸프 연안국가 등이 해외에서 임차·매입한 (또는 이를 위해 협상 중인) 농지가 무려 3천만ha에 이른다”며 “지난 6개월 새에만 유럽 경작 가능 농지의 절반에 가까운 2천만ha의 저개발국가 땅에서 주인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들 토지 가운데 약 20%는 식량이 아니라 ‘친환경’ 바이오 연료 생산용 곡물 재배에 활용된단다.
미 싱크탱크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의 자료를 보면, 부국이 빈국의 토지 개발·이용에 들이는 돈만 한 해 평균 200억~300억달러에 이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2002년 펴낸 에서 “아시아 대륙의 경작 가능한 농지의 95%가 이미 경작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중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땅으로 외국 자본이 몰리고 있다. 2007~2008년 식량위기는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비옥한 농지가 많고, 날씨가 곡물 재배에 적합한데다, 값싼 노동력까지 몰린 아프리카가 표적이 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정책을 연구하는 영국 ‘국제환경개발연구소’(IIED)가 지난 6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에티오피아·가나·마다가스카르·말리·수단 등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5개국에서만 2004년 이후 외국 자본에 임차 또는 매도한 토지가 약 250만ha에 이른다. 한국의 대우로지스틱스도 마다가스카르에서 무려 130만ha의 땅을 임차하려다, 현지 정정 불안과 경영 악화가 겹쳐 무위에 그친 바 있다.
기왕에 그 땅에 기대 살아가던 이들에겐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 대부분 국유지인 탓이다. 일단 외국 자본에 경작권이나 소유권이 넘어가면, 그 땅에서 대대로 물 긷고 땔감 줍고 소떼를 키워온 이들의 삶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접근’조차 차단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농지 매매 땐 주민 의사 수렴을”다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인권의 한 축을 이루는 ‘노동권’이다. 유엔 식량권특별보고관실은 지난 6월11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식량권 부문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역설적이게도 약 5억 명으로 추산되는 농업 노동자”라며 “특히 전세계 어린이 노동의 약 70%, 줄잡아 5~14살 어린이 1억3400만 명이 농업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것도 설 자리를 잃는 게 ‘인권’이다. 은 올리비에 드쉬테르 식량권특별보고관의 말을 따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대규모 농지의 소유·이용권 변화는 반드시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숙지한 현지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말은 쉽다. 행동은 어렵다. 인권이 그렇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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