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8월 시작된 제2차 콩고 내전은 아프리카 근대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불린다.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국가만도 8개국, 가담한 무장단체만도 25개에 이른다. 2003년 7월 콩고민주공화국(DRC·이하 콩고)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종전’이 선언됐지만, 누구도 콩고 내전이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 지난 2008년 말까지 공식 통계로만 모두 540만여 명이 이 핏빛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질병과 굶주림 속에 쓰러져갔다.
콩고 내전의 뿌리는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르완다 후투족 무장세력은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석 달여 만에 투치족과 투치족을 도운 후투족 80만여 명을 무참히 살육했다. 손도끼와 칼이 곧 ‘대량살상무기’였다. 투치족이 주도한 르완다애국전선(RPF)이 치열한 전투 끝에 수도 키갈리를 장악한 8월께부터 학살에 가담했던 후투족 무장세력들이 국경을 넘어 콩고(옛 자이르) 땅 동부 지역으로 흘러들었다. 콩고에서 두 차례 내전의 불길이 타오른 이유다. 올 초에도 콩고 정부군과 르완다군이 이 일대에서 후투 반군 소탕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줄잡아 25만 명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최근 콩고 동부 지역에서 다시금 성폭행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몸을 움츠리고 있던 후투 반군이 귀환한 게다. 는 지난 6월7일치에서 “동남부 키부 지역을 중심으로 후투 반군이 야밤에 민간인 거주지를 급습해, 무차별 폭력과 함께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현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관계자의 말을 따 “지난 석 달 동안에만 이 일대에서 463건의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전쟁과 폭력에도 돈이 든다. 후투 반군이 10여 년째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콩고 동부에서 버티고 있는 것도 이 일대에 풍부하게 매장된 광물자원 때문이다. 시에라리온 내전을 부추긴 것이 ‘핏빛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면 콩고의 내전을 온전시키는 것은 바로 이들 ‘핏빛 광물’(blood mineral)이다. 두 나라의 내전은 곧 ‘자원이 부른 저주’인 게다. 미국진보센터(CAP)에 딸린 ‘이너프프로젝트’가 최근 펴낸 ‘이제 콩고에 귀기울일 수 있나요?’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핏빛 광물이 어떻게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
콩고 동부 일대에서 출몰하고 있는 3대 반군세력은 콩고인민방위군(CNDP), 르완다민주해방군(FDLR), 콩고반군(FARCD) 등이다. 반군들은 주로 광산 지역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대표적 핏빛 광물로 꼽히는 것은 흔히 ‘3T’로 불리는 주석(tin)·탈탄(tantalum)·텅스텐(tungsten)과 금이다. 보고서의 설명을 들어보자.
“주석은 주로 회로기판 땜질용으로 사용된다. 후투 반군은 주석을 팔아 한 해 약 85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탈탄은 각종 전자제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축전장치의 원료가 된다. 탈탄을 활용한 축전장치를 달면 제품을 소형화하고, 고온에도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주로 MP3플레이어·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 등에 사용하는데, 탈탄 수출로 반군이 벌어들이는 돈은 한 해 약 800만달러에 이른다. …텅스텐은 충격에 강하기 때문에 휴대전화 소재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반군은 텅스텐을 팔아 한 해 200만달러를 손에 넣는다. … 그리고 보석 가공용과 부품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황금이 있다. 한 해 4400만달러에서 8800만달러의 금 판매 대금이 반군 진영으로 흘러들고 있다.”
‘킴벌리 프로세스 인증제도’가 실마리 될까돈줄을 막아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핏빛 다이아몬드’를 막기 위해 국제시장에 출시되는 다이아몬드의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도입된 ‘킴벌리 프로세스 인증제도’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겠다. 미 상원이 지난 5월 발의한 ‘2009 콩고 핏빛 광물 법안’은 그런 노력의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를테면 법안은 미 증시에 상장된 모든 회사가 수입한 광물의 원산지는 물론 채굴된 광산까지 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 우리 손에 들린 휴대전화·MP3플레이어·비디오게임기와 노트북컴퓨터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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