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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중동정책 변화 기대 마?

이스라엘과 정상회담서 부시 시절과 별다르지 않은 발언… 동석한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 발언 쏟아내
등록 2009-05-29 20:01 수정 2020-05-03 04:25

지난 5월18일 오후 1시20분께 미 워싱턴 백악관의 브리핑룸. 지난 1월과 3월 말 각각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취재진 앞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이란 핵 문제와 중동 평화협상 재개가 핵심 의제였던 이날 회담은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첫 시험무대로 불렸다. 5월26일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28일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이 잇따라 워싱턴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6월4일 이집트를 방문해 이슬람권을 향한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행정부 중동정책의 얼개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조짐은 보였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월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한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전제로 한 ‘2국가 해법’을 새삼 강조했다. 사흘 뒤인 5월21일 네타냐후 총리는 “예루살렘은 분리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영원한 수도”라고 강조하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사진 REUTERS/ LARRY DOWNING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월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한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전제로 한 ‘2국가 해법’을 새삼 강조했다. 사흘 뒤인 5월21일 네타냐후 총리는 “예루살렘은 분리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영원한 수도”라고 강조하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사진 REUTERS/ LARRY DOWNING

이집트 방문 때 내놓을 중동정책에 주목

백악관 쪽이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를 ‘특별한 사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불굴의 동맹국’이자, 두 나라 사이엔 ‘역사적·감정적 교분’이 있다고도 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인에게 “존경과 영감의 원천”이라고도 말했다. 일부에선 요르단강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과 가자지구 인도적 상황 개선을 촉구한 점에 주목하지만, 기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네타냐후 총리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직접) 통치할 뜻이 전혀 없으며, 그저 평화롭게 나란히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전제로 이른바 ‘중동평화 로드맵’이 제시한 ‘2국가 해법’이란 표현을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단 얘기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자체 불인정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2국가 해법’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그는 지난 2002년 5월 열린 리쿠드당 중앙위원 회의에서 “요르단강 서쪽에는 팔레스타인의 나라가 들어설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요르단강 동쪽은 요르단 땅이다. 강 서쪽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들어선 서안지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결국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 게다.

최근 들어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쪽에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나라’라는 점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는 이런 주장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따져보자. 미 중앙정보국이 펴낸 2008년판을 보면, 723만여 이스라엘 인구 가운데 유대인은 76.4%다. 아랍계를 중심으로 한 ‘비유대인’도 23.6%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다민족 국가’인 게다. 그럼에도 ‘유대인의 나라’라는 점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의원이자 2005년 대선 후보였던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5월20일 인터넷 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이스라엘의 전방위적 인종차별 정책을 받아들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예상대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과의 적대적 대결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약속하는 걸 교묘히 피해갔다.” 아랍 언론인 알리 아부니마는 5월21일 인터넷 매체 에 올린 기고문에서 “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고 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권과 미국의 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열쇠’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6월4일 아랍권을 겨냥한 연설에 앞서 이스라엘-이집트-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세 차례 정상회담을 5월에 집중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그비 인터내셔널’ 등과 공동으로 실시해 최근 공개한 ‘연례 아랍권 여론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금으로선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이집트·요르단·레바논 등 6개국 4천여 명을 상대로 지난 4월 초부터 한 달여간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5%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답했다. ‘비호감’이란 반응은 24%에 그쳤다. 또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51%가 ‘긍정적’이라고 답한 반면, ‘부정적’이란 응답은 14%에 그쳤다.

문제는 ‘관성’이다. 워싱턴에서도, 텔아비브에서도, 지난 60년여의 ‘관성’이 요지부동이다. ‘현상’을 타파하지 않고선 평화협상이 재개되더라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2명의 전직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필두로 한 민주·공화 양당 출신의 외교안보 진영 원로인사들이 지난해 12월 당선자 신분이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중동정책 보고서를 보면, 이런 흐름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2국가 해법의 마지막 기회’란 제목의 17쪽 분량 보고서에서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취임 뒤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밖에 없다”며 “이 시기를 놓치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통해 평화로 가는 기회는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그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이들은 독립 팔레스타인을 군대를 보유하지 않은 ‘비무장 국가’로 상정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을 상정한 게다.

국경선은 1967년 6월 이른바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기준으로 한다. 이스라엘 쪽이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유대 정착촌을 흡수·통합하는 반면, 유엔도 인정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독립국가 수립 이후 팔레스타인이 자체 치안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최소 5년에서 최장 15년 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평화유지군 형태로 주둔하도록 권했다. 주둔군에는 미국·요르단·이집트군과 함께 이스라엘군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도 밝혀뒀다. 아부니마는 기고문에서 “이들의 주장이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접근법을 두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고 평가하는 목소리가 대세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쪽 치우친 방안이 워싱턴의 대세

“예루살렘은 다시는 분리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영원한 수도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월21일 ‘예루살렘의 날’을 맞아 시오니즘 이념의 상징으로 불리는 ‘메르카즈 하라브 유대 종교대학’(예시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2국가 해법’의 핵심 조항 가운데 하나인 ‘예루살렘 분할’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거부한 게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의회 의장도 같은 행사에 참석해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은 협상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예루살렘의 날’은 1967년 ‘6일 전쟁’ 중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던 동예루살렘 지역을 ‘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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