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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참사’는 현재진행형

재건·복구 위한 국제사회 결의 불구 이스라엘 물품 반입 불허… 전기·물 부족에 쓰레기 대란까지
등록 2009-05-14 16:47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 12월27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는 삽시간에 무간지옥으로 변했다. 그날 하루에만 모두 170여 곳에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퍼부어졌다. 말 그대로 ‘융단폭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은 지상군까지 투입하는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이스라엘군은 무차별 난타 3주 만인 지난 1월18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했다. 사흘 뒤인 1월21일엔 군대를 물렸다. 총성은 멈췄고, 포연은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100여 일이 훌쩍 흘렀다. 가자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당나귀와 말이 모는 수레, 가자의 오늘을 말하다.’ 지난 5월6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UNRWA 사무소 앞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배급받은 밀가루 포대를 수레에 실은 채 아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REUTERS/ IBRAHEEM MUSTAFA

‘당나귀와 말이 모는 수레, 가자의 오늘을 말하다.’ 지난 5월6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UNRWA 사무소 앞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배급받은 밀가루 포대를 수레에 실은 채 아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REUTERS/ IBRAHEEM MUSTAFA

5월5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뉴욕 유엔본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입기자단과 만나는 월례회견 자리였다. 회견을 불과 30여 분 앞두고 공개된 27쪽 분량의 요약 보고서 내용이 이날 회견의 초점이었다. 가자 침공 기간에 이스라엘군이 현지 유엔 관련 시설을 공격한 9가지 사례를 파헤친 진상조사단의 보고서는 모두 184쪽 분량이지만,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채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됐다. 이날 공개된 내용은 핵심 내용만 간추린 정리본이다. 하긴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요약 보고서 내용에 대해 “악의적으로 편향된 것”이라며 “단 한마디의 내용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흥분했다. 보고서를 훑어보자.

무고한 희생 지적 유엔 보고서에 이스라엘 발끈

침공 사흘 만인 지난해 12월29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시티에 있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건물이 파괴됐다. 지난 1월5일엔 가자시티 아스마에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에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이 날아들어 건물에 피신해 있던 가자 주민 3명이 애꿎은 목숨을 잃었다. 이튿날인 1월6일엔 역시 UNRWA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박격포 공격이 퍼부어져 40여 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같은 날 부레이즈에선 유엔이 운영하는 의료시설이 공습을 받아 환자 1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월15일엔 가자시티의 UNRWA 사무소 건물에 박격포탄이 날아들어 여러 명이 다치고, 건물이 일부 파괴됐다. 1월17일엔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아의 유엔학교에 포탄이 날아들어 어린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군 당국은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유엔 건물을 은신처 삼아 도발을 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진상조사위는 보고서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유엔 관련 시설에서 이스라엘군을 겨냥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이스라엘 정부의 협조에 감사드린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상조사위원회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엔이 홈페이지에 올린 회견 내용을 보면, 반 총장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11개 항목의 ‘권고사항’ 가운데 하나로 “이스라엘군의 국제 인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추가적인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반 총장은 “지금으로선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UNRWA 관련 시설에서만 1040만달러가량의 물적 피해를 봤다는 추정치가 나왔음에도, 보상에 대한 언급도 일절 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스라엘군이 유엔 시설을 공격한 뒤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번번이 공격을 재개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반 총장은 재발 방지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말을 아꼈다.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반 총장은 “필요한 부분에 대해 사안별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만 말했다.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너무 미온적인 대응 아니냐’는 ‘질책성 질문’을 쏟아냈다.

눈을 돌려보자. 끝난 줄 알았던 전쟁은 가자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불을 뿜고 있다. 휴전을 선언한 뒤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면서 재건·복구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탓이다. UNRWA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22일 동안 지속된 이스라엘의 공세로 가자지구에서 완파된 주택은 모두 4100채에 이른다. 반파되거나 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주택도 1만5천여 채에 이른다. 그 집에 살던 이들은 고스란히 100여 일째 한뎃잠을 자고 있다.

재발방지·책임추궁에 소극적인 반기문 총장

3주간의 무한 폭력이 휩쓸고 간 가자 땅에 성하게 남아 있는 게 있을 리 없다. 집도, 일터도, 공장과 전력망도, 하수도와 정화시설까지 모조리 파괴된 채다. 침공에 앞서 이스라엘군은 3년여에 걸쳐 가자지구에 보복성 경제제재를 가했다. 가자 주민들의 유일한 죄는 이슬람주의 정당 하마스에 ‘몰표’를 던진 게다. 하마스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이끄는 파타당과의 충돌 끝에 ‘우발적’으로 가자지구를 장악한 뒤엔 이집트까지 ‘폭력’에 가세했다. 18개월여 동안 국경을 닫아걸었다.

그래서다. 이스라엘의 침공 이전에도 가자지구엔 성한 게 별반 없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지난해 12월 초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미 침공 전에도 가자지구 상수도의 80%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음용수 안전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침공으로 상황은 더욱 극단적으로 바뀌었을 게다. 인터넷 대안매체 〈IPS뉴스〉는 5월4일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식량과 필수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어떤 물품도 가자지구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재건·복구에 긴요한 콘크리트와 철근, 각종 파이프와 산업자재도 금수품목에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파괴된 상하수도와 전력망 복구에 필요한 자재도 가자로 통하는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를 비롯한 무장세력이 이들 물품으로 벙커를 짓거나 무기류를 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봉쇄가 만들어낸 가자의 현실은 참담하다. UNRWA가 내놓은 최신 보고서를 보면, 150만 가자 주민의 약 90%가 전력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툭하면 정전과 단전이 몇 시간씩 이어진다. 그나마 나머지 10%는 전력 공급을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3만2천여 주민은 상수도도 없이 살아가고, 10만여 명은 2~3일에 한 차례씩 받는 급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UNRWA는 “물 부족에 위생상태까지 나빠지면서 설사와 바이러스성 간염 등 각종 감염성 질환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처리되지 않은 하수만도 약 7천만ℓ에 이른단다. 휘발유를 구하기 어려우니 쓰레기 수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처에 쓰레기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단다. 지구의 벗 중동지부 바실 야신 연구원은 〈IPS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의 3개 주요 쓰레기 매립장이 이미 처리 용량을 초과한 상태”라고 전했다.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IPS뉴스〉는 유엔개발계획(UNDP) 관계자의 말을 따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더미에서 나온 건축폐기물에는 석면 등 위험물질이 뒤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 땅에 방치된 건물 잔해는 약 60만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단다. 침공과 봉쇄가 가자지구에 거대한 환경 재앙을 부르고 있다.

봉쇄 사슬 놔둔 채 지원 결의가 무슨 소용

지난 3월 국제사회는 이집트의 휴양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가자지구 재건·복구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참가국들은 모두 45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가자로 향하는 길목이 막힌 채로는 재건도, 복구도 있을 수 없다. 가자 주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봉쇄의 쇠사슬을 풀어내려는 노력은 방기한 채, 재건·복구 자금을 대주겠다는 약속은 대체 왜 한 걸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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