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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로 가는 길 열렸다

파격적으로 발 빠른 미국의 ‘봉쇄 완화’… 반세기 이어진 ‘적대적 공생’은 끝나는가

제757호
등록 : 2009-04-23 13:29 수정 : 2009-04-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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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발 빠른 행보다. ‘파격’이라 부를 만하다. 4월17일부터 카리브해 연안국가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를 앞두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4월13일 ‘대통령령’으로 쿠바 봉쇄정책을 일부 완화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날 오바마 행정부가 푼 ‘봉쇄’는 크게 두 가지다. 쿠바에 가족을 둔 미국인들이 제한 없이 현지를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쿠바계 미국인들이 고국의 친지들에게 송금을 하는 데 따르는 제약을 모두 없애기로 한 게다. 반세기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져온 두 나라 관계에 마침내 ‘변화’의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반세기 요지부동이던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친형인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쿠바를 이끌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맨 오른쪽)이 지난 4월6일 아바나를 방문한 미 하원 대표단과 만나 두나라 사이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REUTERS/ JUVENAL BADAL

조지 부시 시절엔 ‘본국 송금’조차 금지

1959년 1월 든든한 동맹이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쿠바’를 미국은 처음부터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시작된,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케네디 행정부 때 절정에 이르렀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냉전 시대 ‘어리석은 대치’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미국은 쿠바 출신 망명객을 중심으로 숱하게 무장세력을 규합해 ‘직접 개입’에 나섰다. 하지만 번번이 ‘미수’에 그쳤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61년 4월 벌어진 ‘피그만 침공사건’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을 동원해 쿠바 침공에 나선 미국은 불과 사흘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천여 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카스트로 정부는 이듬해 12월 몸값으로 5300만달러를 받은 뒤에야 당시 사로잡은 1113명을 풀어줬다.

잇따른 미국의 노골적인 겁박에 몰린 ‘신생 혁명국’ 쿠바는 옛 소련에 기대 활로를 찾으려 했다. 옛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전면 침공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때는 1962년 10월, 냉전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다. 대립은 이내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핵전쟁의 공포가 지구촌을 휘감았다. 위기를 피하려는 미-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봉합되긴 했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이어질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방향을 확정짓는 사건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봉쇄의 고삐는 옥죄어졌다. 급기야 지난 1992년엔 ‘쿠바민주화법’ 통과로 봉쇄정책의 입법화가 이뤄졌다. 1996년엔 극우 성향의 제시 헬름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공화당) 주도로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연대법’(헬름스-버튼법)이 통과돼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가 사실상 봉쇄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쿠바 출신 이민·망명자들의 ‘본국 송금’조차 사실상 차단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적대국가와의 직접 대화’를 강조하며 당선된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은 미국의 대쿠바 정책에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전망을 낳았다. 반세기 극한 대결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란 기대는 최근 쿠바 망명객 출신의 극우 인사가 테러 혐의로 붙잡히면서 구체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4월10일치에서 “쿠바 망명객 출신으로 한때 중앙정보국 요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81)가 최근 위증과 공무방해 등의 혐의로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기소됐다”고 전했다. 그는 1997년 쿠바에서 잇따라 벌어진 폭탄테러와 관련해 쿠바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쿠바 일간 <그란마>는 이를 두고 “놀랄 만한 전략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쿠바계 미국인이여, 쿠바를 방문하라”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5월 쿠바 출신 망명자들이 몰려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한 연설에서 “쿠바계 미국인들이 쿠바를 방문하는 게 (권위주의적인) 쿠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세기 ‘반쿠바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말이다. 그러니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번 조처는 긴 여정의 첫걸음일 뿐이다. 기실, 워싱턴의 강경론자와 아바나의 강경론자의 ‘이해관계’는 지난 반세기 크게 엇갈리지 않았다. 그 ‘적대적 공생’은 반세기나 이어져왔다.

“미국은 쿠바를 경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일방적인 봉쇄로 쿠바의 변화를 이끌어낼 순 없다. 미국의 봉쇄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쿠바에 진정한 민주적 변화는 올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4월14일치에서 카를로스 파스쿨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국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어디 쿠바뿐일까. 미국이 ‘악의 축’이나 ‘깡패’로 매도해온 나라가 거의 비슷하리라.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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