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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돌 기획]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사회 만들기

일본판 ‘한겨레’ <주간 금요일> 편집장 “광고 없는 독립언론으로 생존할 것”
등록 2009-04-02 17:20 수정 2020-05-03 04:25
기타무라 하지메(57) <주간 금요일> 편집장

기타무라 하지메(57) <주간 금요일> 편집장

은 ‘일본 시민사회의 동반자’로 불릴 만하다. 광고를 싣지 않는 대신 기업의 과대광고를 분석·비판하는 연재물 를 해마다 단행본으로 펴내 그 인세를 재정적 기반으로 삼는다. 은 3월25일 기타무라 하지메(57) 편집장을 만나 진보적 독립언론이 살아가는 법에 대해 물었다. 1974년 에 입사하면서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기타무라 편집장은 신문노련 위원장과 편집장을 거친 일본의 대표적 중견 언론인이다.

-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난해 12월로 창간 15주년을 맞이한 종합 시사주간지다. 일간 전국지가 압도적 부수로 미디어의 중심이 되어 있으면서도 좀처럼 사실과 진실을 전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계기가 됐다. 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혼다 가스이치가 중심이 돼 일본판 를 만들고자 했지만, 상당한 자금이 필요해 무리였다. 주간지라면 가능하리라 보고 전국 각지를 돌며 3만5천 명의 정기독자를 모아냈다. 지금은 정기독자 1만7천 명, 서점 판매가 1만 부 정도다. 편집위원 제도를 통해 각계 전문가와 전·현직 언론인, 시민운동가가 모여 지면을 꾸린다.

-정기구독이 처음보다 반으로 줄었다. 유지가 가능한가.

=‘망하지 않고 용케 잘도 버틴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웃음) 부채 없이, 광고를 받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키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라는 단행본의 역할이 크다. 1999년부터 출간해 200만 부 이상 팔렸다. 광고에 의존하지 않기에 기업 비판이 가능했다.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구체적인 상품을 보여주고 ‘이 상품은 안 된다’고 캠페인을 연재하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 10억엔 정도의 수익을 냈다. 이게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돼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의 주요 취재·보도 영역은?

=우리는 남들처럼 그 주에 일어난 사건을 쓰는 게 아니라, 그 배경을 취재해 싣는다. 다른 잡지보다 한 주 늦게 보도하는 대신, 그 배경을 꼼꼼하게 챙겨 쓴다. 신문과 TV는 뭔가 사건이 벌어지면 깊이 없이 일단 쓰고 보는데 우리는 그런 건 그만두자고 했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것도 문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닌데.

=모두들 100년에 한 번 올 위기라고 하는데, 난 1천 년에 한 번 올 만한 위기라고 본다. 금융위기가 눈에 가장 잘 보이고 알아차리기도 쉽지만, 지금의 위기는 인간·환경·문화 등 모든 분야에 노정된 위기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문제지만, 지금은 어디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형국이다. 금융에만 특화된 위기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분석하고 찾아내야 한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들이 이를 심각하게 생각해나가지 않으면 인류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영원히 집권할 것 같던 자민당 독주체제가 종착역에 다다른 모습인데.

=개인적으로 자민당과 민주당은 정책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지금으로선 집권당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100%다. 하지만 압승은 어려워 보인다.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다 해도 어느 정도로 이길 것이냐가 핵심이다. 일본의 정치 지형이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민·민주 두 당이 정책적으로 명확한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얼마나 큰 변화가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위기가 깊어지면서 최근 ‘경제대국’인 일본에서도 ‘반빈곤 운동’이 한창인 것으로 안다.

=전후 60년 가까이 일본 사회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 모두들 먹고살 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모두가 먹고살 만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됐다. 사회적으로 공평 분배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얘기다. 야당 그룹을 형성한 좌파나 혁신세력이 여당(자민당)과 밀고 당기기를 이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됐든 그동안은 다 먹고살 만하니까 형식적으로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쓸모없는 싸움을 지켜봐온 젊은 세대들이 지금 반빈곤 운동의 중심이 돼 있다. 이들은 야당인 공산당과 사민당은 물론 집권 자민당 안에서도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과는 함께할 수 있다는 유연성까지 보이고 있다. 이들이 어쩌면 일본을 바꿀수 있을지 모른다.

-매체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특히 진보적 독립매체로서 생존전략이 있다면.

=광고에 의존하는 매체는 광고수익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광고를 싣지 않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정기독자를 포함해 5만 부 정도 발행하는 게 목표다. 희망은 있다. 다른 매체가 쓰지 못하는 것이 포인트다. 거대 미디어가 부패할수록 우리 같은 매체에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믿는다. 단,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만 읽는 ‘동인지’가 돼선 곤란하다. 아울러 알기 쉬운 잡지가 돼야 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표현, 이게 ‘진보적 지식인’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다. 입법·사법·행정부, 그리고 기업까지 4대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적 매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사회가 구성원을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 한 사람도 죽어선 안 된다. 전쟁으로, 돈이 없어서 죽어서는 안 된다. 어떤 나라, 어떤 사회에서도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이 진보 매체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권력은 사람 몇 명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그런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생존 확률’을 높이는 정보를 발산해야 한다. 아울러 그저 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운동 차원으로 이끌어내는 미디어여야 한다.

도쿄=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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