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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돌 기획] “사회적으로 연대해 반격하자”

일본공산당 기관지로 창간 81주년 맞은 종합 일간지 <아카하타> 편집국장
등록 2009-04-02 17:02 수정 2020-05-03 04:25
오쿠하라 도시하루(64) 편집국장

오쿠하라 도시하루(64) 편집국장

“야구 담당 기자도 있어요?”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전 취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어느 한국 기자가 도쿄 돔에서 ‘동업자’를 만났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赤旗)의 스포츠부 소속 기자를 만난 그는 ‘뜻밖’이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다. ‘공산당 기관지’에도 스포츠부가 있다. 기실 는 발행 부수나 취재·보도 영역을 보면 단순 ‘기관지’를 넘어 진보적 독립매체임을 알 수 있다. 은 3월23일 오전 도쿄 시부야구의 사무실에서 오쿠하라 도시하루(64) 편집국장을 만났다.

-한국 독자들에겐 생소하다. 소개를 부탁한다.

=일본공산당의 기관지이자, 종합 일간지다. 1922년 4월15일 공산당이 창당했고, 는 6년여 뒤인 1928년 2월 창간호를 냈다. 창간 당시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가 거대한 힘을 쥐고 저항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도 모진 탄압을 당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배 기자들의 노력으로 창간 81주년을 맞게 됐다. 매일 16면을 발행하는데, 구성은 일반 신문과 비슷하다. 국제뉴스를 중시하고, ‘국민운동’ 면을 별도로 두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일간지와 일요판을 합쳐 기자는 300여 명이고, 미국·영국·중국 등 7개국에 지국을 두고 있다.

-독자는 어느 정도 되나.

=1980년대 한때 일간지와 일요판을 합쳐 350만 부가량을 발행했다. 현재는 일간지 30만 부, 일요판 130만 부로 160만 부를 발행한다. 정기구독 의무가 있는 공산당원 40만 명을 빼고도 다양한 계층의 독자가 를 찾고 있다. 특히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내놓는 일요판은 내용이 재미있어 당원이 아니어도 즐겨 찾는 이들이 많다.

-일본도 경제위기에서 예외가 아닌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2.1%까지 추락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고용 조건’이 파괴됐다. 비정규직, 일하는 빈곤층이 지난 10년간 급증했다. 이런 상태로 내몰린 사람들은 상품을 소비할 힘이 없다. 따라서 내수가 무너졌다. 둘째, 수출 의존형 경제체제의 파국이다. 자동차·전자제품 수출 의존도, 특히 미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컸는데, 경제위기로 외수까지 파괴돼 이중적 위기를 겪게 됐다.

-한국도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일하는 빈곤층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빈부 격차가 극단화하는 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쓴 나라들의 공통점이다. 일본은 연수입 200만엔 이하의 저임금 노동자 1천만 명 시대를 맞았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데다,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뭉쳐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다. 극단적인 사례가 ‘히야도이’(일용직·날품 노동자)다. 이들은 휴대전화로 일자리를 통보받아 전혀 모르는 곳에서 단 하루 일하고, 다음날 또 다른 일터를 전전한다. ‘사회적으로 연대해 반격하자’는 게 의 슬로건이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마르크스가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에서도 공산당원 가입이 늘고 있다던데.

=‘이대로는 자본주의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그렇다면 공산당에 대안을 한번 물어보자’는 분위기다. 다른 측면도 있다. 파견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한 뒤 공산당으로 연락을 해와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은 최근 일본공산당을 ‘현대판 가케고미데라’라고 보도한 바 있다. ‘가케고미데라’는 에도시대에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도망쳐 나온 여성을 보호해 이혼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던 사찰이다. 일종의 ‘피난처’라고 할까?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지켜줄 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일본공산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요판 창간 50주년을 맞은 지난 3월1일 <아카하타>는 각계의 축하 메시지를 1면에 올렸다. 공산당 기관지임에도 <아카하타> 일요판은 풍부한 읽을거리로 일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일요판 창간 50주년을 맞은 지난 3월1일 <아카하타>는 각계의 축하 메시지를 1면에 올렸다. 공산당 기관지임에도 <아카하타> 일요판은 풍부한 읽을거리로 일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기의 시대, 진보매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사회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거대기업의 이익이 최우선시되는 사회, 국민은 어떤 상처를 입어도 신경쓰지 않는 게 오늘의 일본 사회다. 법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거대기업이 맘대로 할 수 없는 사회,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무엇이 문제인가’를 밝히고, ‘이렇게 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내는 것이 진보매체의 역할이라고 본다.

-재정적 어려움이 진보매체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다. 는 어떤가.

=대체로 낙관적이다. 160만 부를 소화해주는 독자가 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달과 구독료 수금, 독자배가운동에 자원해서 나서는 든든한 풀뿌리 지부가 전국적으로 2만2천여 개나 된다. 일본공산당 전체 재정수익의 70%가 와 등 잡지 구독료에서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종이매체’의 종말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는 인터넷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인터넷 보급으로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종이신문이란 매체는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편집의 묘미를 통해 뉴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고, 천천히 읽어나가며 해설을 곁들일 수도 있다. 또 전면을 털어 특집 기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일목요연하게 현안을 정리하는 ‘일람 기능’은 인터넷과 비교할 수 없다. 평소 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를 알게 되고, 독자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한 ‘상승효과’를 발전시켜나갈 계획을 마련 중이다. 한국 독자에게 (일본어로 쓰인) 를 읽어달라고 부탁할 순 없고…. (웃음) 지향점이 일치한다는 시선으로 봐주시길 기대한다. 는 창간 당시부터 일제 군국주의에 반대했고, 중국과 한국의 식민지화에 반대해 싸운 전통을 가진 신문이다. 평화적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 한국에도 지국을 만들어 특파원을 파견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한국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도쿄=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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