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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 다운

10여년 전 지수인 6천 선으로 후퇴… 비이성적 과열의 종말
등록 2009-03-12 18:03 수정 2020-05-03 04:25

“장기적으로 물가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투자위험도 낮아지면서 주가를 포함해 기타 투자자산의 가치가 치솟고 있습니다. 물가상승률과 주가수익률이 반비례한다는 점은 과거에도 익히 목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비이성적 과열’로 인해 자산가치가 과도하게 치솟아오른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 10년 세월 일본이 경험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거품이 붕괴되면서 장기적인 침체기로 접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비이성적 과열은 비이성적 냉각으로 이어지는가?’ 지난 3월2일 뉴욕증시가 1990년대 중반 수준까지 폭락하자, 증권사 관계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객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AP PHOTO/ RICHARD DREW

‘비이성적 과열은 비이성적 냉각으로 이어지는가?’ 지난 3월2일 뉴욕증시가 1990년대 중반 수준까지 폭락하자, 증권사 관계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객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AP PHOTO/ RICHARD DREW

1996년 그린스펀의 경고음

지난 1996년 12월5일,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 기업연구소(AEI) 주최 강연회에 나섰다. ‘민주사회에서 중앙은행의 도전’이란 제목으로 한 이날 강연에서 그는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로 미 증시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게 아니냐는 ‘경고음’을 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도 덧붙였다. 이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6437.10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1996년 초에 비해 25%가량 상승한 시세다. 우량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744.38로 마감했다. 그해 미 증시에는 무려 2216억달러의 눈먼 돈이 퍼부어졌다.

미 증시의 ‘비이성적 과열’은 이후에도 10년 넘게 이어졌다. 1990년대를 휩쓴 정보기술(IT) 거품이 빠진 빈자리는, 2000년대 들어 초저금리와 ‘묻지마 대출’이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으로 든든히 메워갔다. ‘과열’된 증시에 모두가 취했고, 축제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란 ‘비이성적’ 믿음에 온 사회가 달아올랐다. 지난 2007년 10월 다우지수는 드디어 꿈의 ‘1만4천 포인트’대를 돌파했다. 같은 시기 S&P 500 지수도 ‘1500포인트’대를 넘어섰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경고음을 낸 지 10년10개월여 만에 주가가 꼭 2배로 뛰어오른 게다. 곳곳에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다우지수 2만 시대’가 눈앞이라고들 흥분했다. ‘비이성적 과열’의 절정이었다.

저축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신나게 써댔다. FRB가 지난 2월 초 내놓은 ‘소비자재무조사보고서’(SCF)를 보면, 1980년대 9% 정도였던 개인 저축률은 1990년대 5%대로 떨어지더니, ‘거품’의 막바지였던 2005~2007년엔 단 0.6%에 그쳤다. 그사이 소득 증가 속도는 부채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지만, 이를 문제 삼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치가 날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현실’이 닥쳐왔다. 자산가치 상승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이, 늘어난 빚더미의 현실감에 한층 무게감을 더했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깨달음’의 시간이 시작됐다.

심리적 마지노선 끝내 붕괴

2009년 3월 첫 거래일인 지난 2일, 미 뉴욕증시는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 최대 보험업체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이 지난해 4분기에만 617억달러란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는 발표가 결정타였다. 이날 다우지수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려온 7천 포인트 선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전날 대비 300포인트(4.25%) 추락한 6762포인트로 장을 마감한 게다. S&P 지수는 전날보다 34.28포인트(4.66%) 떨어진 700.81을 기록했다. ‘과열’의 절정에서 불과 1년5개월여 만에 주가는 반토막이 나면서, 1996년 12월의 주가 수준을 밑돌기 시작한 게다. 무모한 낙관론이 지배했던 ‘비이성적 과열’의 시대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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