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이민자’의 나라다. 1948년 나라가 만들어진 뒤, 2천 년여 전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들이 모여들었다. 살아온 환경과 생각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니, 이들 각각을 대변하는 정당도 부지기수일 터다.
극우 성향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당 약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4년 임기의 의회(크네세트) 의원 120명 전원을 선출하는 이스라엘에선 2% 이상 득표하는 정당에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지난 2006년 17대 총선에서 의회 진출에 성공한 정당은 모두 13개에 이른다. 2월10일 치러진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말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정당은 모두 43개, 2006년 총선에 비해 12개나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후보자를 낸 정당만도 34개다. 이쯤되면 한 정당이 절반 이상을 확보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선거 뒤의 합종연횡, 연립정부 구성 협상은 이스라엘 정치의 ‘꽃’으로 부를 만하다.
‘가자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총선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앞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비웃었다. 첫째,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과 달리 투표율이 65%를 웃돌며 예년 수준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둘째, 베냐민 네타야후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이 넉넉하게 제1당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빗나갔다. 치피 리브니 외교장관이 이끄는 집권 카디마당이 박빙의 승부 끝에 1석 차로 제1당 지위를 유지한 게다. 카디마당은 기존 의석보다 1석이 줄어든 28석을, 리쿠드당은 무려 15석을 보탠 27석을 얻었다.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보였던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우리 집 이스라엘)당은 투표 결과에서도 눈에 띄는 약진을 보였다. 4석을 추가해 모두 15석을 얻으며 일약 원내 제3당으로 등극한 게다. 인종주의적 발언으로 악명 높은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당수는 ‘킹메이커’로 떠올랐다. 반면 원내 제2당으로 카디마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주도해온 노동당은 6석 줄어든 13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제4당으로 전락했다. 선거에 앞서 가자 침공을 진두지휘하면서 지지율 반등을 노렸던 노동당 당수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으로선 면목이 없게 됐다. 가자 침공 사흘 만에 즉각적인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던 좌파 메레츠당도 2석을 잃으면서, 단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우파의 약진, 가자전쟁이 만들어낸 애국주의 열풍 속에 이스라엘 사회는 ‘오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모양새다.
이스라엘 선거법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최종 투표 결과를 확정 발표한 이후, 대통령이 총리 후보자를 지명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원내 제1당의 당수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는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우선 선거 결과가 박빙이다. 카디마당과 리쿠드당 모두 개표 직후 ‘승리’를 선언했다. 여기에 크네세트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림’이 사뭇 달라진다. 극우·보수 진영이 65석을 얻은 반면, 중도·좌파 진영은 55석을 얻는 데 그친 게다. ‘보수 본산’이라 할 리쿠드당이 선거란 ‘전투’에선 카디마당에 석패했지만, 연립정부 구성이란 ‘전쟁’에선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 정가 안팎에서 네타냐후 전 총리가 차기 정부를 이끌 것이란 점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근거는 여러 가지다. 리브니 장관은 지난해 8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부패 혐의로 기소 위기에 몰려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카디마당 당수에 올랐다. 하지만 중도·좌파 진영이 크네세트에서 70여 석을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당시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2006년 선거 이후 2년여 만에 조기 총선을 실시한 이유다. 이번엔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 제3당인 이스라엘 베이테이누 쪽은 이미 리쿠드당 주도의 ‘우파 연립정부’를 선호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선거에서 참패한 노동당 쪽은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아, 혼란에 빠진 당을 추스를 계획임을 내비쳤다. ‘적’은 기세를 올리고 있고, ‘우군’은 퇴각을 서두르고 있다. 진퇴양난에 몰린 셈이다.
리쿠드당이 주도할 차기 이스라엘 정부의 성격은 어떨까? 선거 직후만 해도 ‘범우파 연립정부’설이 대세였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발표 직후부터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를 비롯한 극우 진영이 연정 참여의 전제조건을 쏟아내며 ‘몸값 올리기’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사뭇 바뀌고 있다. 리쿠드당과 카디마당이 같은 비율로 내각에 참여하는 ‘거국내각’ 구상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는 2월12일 “이럴 경우 총리와 재무장관은 리쿠드당이, 외교와 국방장관은 카디마당이 맡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당이 확보한 의석만 합해도 과반에 육박하는 55석이다. 6석만 추가하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리쿠드당으로선 극우 진영을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정치적 양보’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카디마당 역시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권력의 핵심부에 남을 수 있다. 멀지 않은 전례도 있다. 지난 2001년 집권한 리쿠드당의 아리엘 샤론 총리는 제2당인 노동당에 외교·국방장관직을 내주며 거국정부를 구성한 바 있다. 일간 는 2월12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미 리브니 장관을 유임시키고, 사울 모페즈 전 국방장관을 입각시키는 방안을 카디마당 쪽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변수는 이스라엘 베이테이누당의 연정 참여 여부다. 리쿠드당은 이미 리에베르만 당수에게 재무장관직을 약속하며 연정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카디마당은 이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메이르 시트리트 내무장관은 2월12일 이스라엘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정부가 극우 강경파 일색으로 채워지면 카디마당은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둘 중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네타야후 전 총리의 선택이 어느 쪽일지는 자명해 보인다.
미국 쪽 분위기도 ‘우파 연립정부’보다 ‘카디마-리쿠드 거국내각’ 출범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한다. 는 2월11일치에서 평화협상 대표로 활동했던 에런 데이비드 밀러의 말을 따 “이번 선거 결과로 향후 1~2년 동안 평화협상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취임 직후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을 중동 평화협상 특사로 임명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여온 오바마 행정부엔 이번 선거 결과가 “타격을 줄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신문은 “네타냐후 전 총리는 미국을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지원을 중단할 정도로 위험스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카디마당 선호오바마 행정부가 협상 파트너로 카디마당을 선호한다는 점은 이스라엘 쪽에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집권 당시 강경론을 고집한 네타냐후 전 총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외교·안보 라인 인물 상당수가 오바마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는 2월11일 미 의회 관계자들의 말을 따 “네타냐후 전 총리가 우파만으로 연립정부를 출범시키는 대신 카디마당과 연계한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면, 오마바 행정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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