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09년, 코페르니쿠스가 다시 올까

오바마 취임, 중화인민공화국 60주년, 세계 천문의 해… 새해 12달간 지구촌에 일어날 일들
등록 2009-01-09 17:36 수정 2020-05-03 04:25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육안으로만 천체의 움직임을 살펴, 란 책을 써냈다. 오랜 관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천동설로는 별무리의 움직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가정 아래 밤하늘을 바라보았고, 천동설의 모순은 이내 사라졌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고대로부터의 믿음은 이로써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패러다임’이 바뀐 게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서문에서 이를 두고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표현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6분39초 개기일식, 어찌 놓치리

1609년 이탈리아 사람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지동설의 증거를 제시했다. 같은 해 독일인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이란 책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400년 전의 일이다. 유엔은 이를 기념해 2009년을 ‘세계 천문의 해’로 선포했다. 오는 7월22일엔 아시아·태평양 일대에서 무려 6분39초 동안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단다. 이 정도로 긴 개기일식을 다시 보려면 2132년 6월13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놓쳐선 아니될 세기적 볼거리다.

역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진보한다. 익숙한 세계가 무너져내린 자리에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문은 열린다. 아니, 새로운 역사가 막을 올리려는 그 찰나의 순간 옛 시대의 종말이 시작되고는 했다. 유일하게 변치 않는 우주의 법칙이다. 2009년, 인류가 다시 ‘전환기’에 섰다.

“냉전의 종식은 인류 모두의 승리다.”

1991년 1월29일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신 세계질서’를 말했다. 그는 “지구촌은 이제 오랫동안 기다려온 새로운 국제질서를 완수할 기회를 맞았다”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만 이를 완수할 수 있는 도덕적 우위와 물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1989년 11월9일 세계인은 반세기 갈라져 살아온 독일인들이 흥에 겨워 베를린 장벽을 해머로 내려치는 장면을 목도했다. 철의 장막은 무너졌고, 냉전도 막을 내렸다.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한 ‘양극 체제’가 무너진 자리를 메운 것은 협력의 ‘다극 체제’가 아니었다. 유일 초강국으로 살아남은 미국의 일방적 독주가 시작됐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표준으로 한 ‘세계화’는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투기적인 금융자본은 그 첨병이었다. 2008년 하반기 지구촌을 강타한 금융위기는 지난 20년 세월에 대한 초라한 성적표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끝자락 잡고 계속되는 전쟁

2009년, 지구촌의 관심은 온통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모아져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는 최근 펴낸 ‘2009년 지구촌 전망 보고서’에서 조심스런 낙관론과 암울한 비관론이 교차하는 올 한 해 세계 경제 전망을 ‘알파벳’에 빗대어 분석했다. 먼저 ‘U자형 경제’다. 2009년 상반기 동안 곤두박질을 이어가다, 4분기쯤부터 천천히 경기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다. ‘V자형’은 조금 더 낙관적이다. 경기 하강은 막을 수 없지만, 일단 바닥을 치면 곧바로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비관론이 빠질 수 없다. ‘W자형’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가, 다시 추락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최악의 비관론은 ‘L자형 경제’다. 급락한 세계 경제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바닥세를 이어갈 것이란 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국으로 인한 지구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가 이런 축이다. 그는 최근 에 보낸 기고문에서 지난해보다 올해 상황이 더욱 가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금융위기가 이미 시작된 지구촌 ‘힘의 균형추’ 이동에 더욱 속도를 붙일 것이란 점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경제대국이 집요하게 미국의 ‘유일 패권’을 흔들어댈 터다.

묵은 해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가자 전쟁’은 해를 넘겨 계속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무고한 피가 뿌려질 게다. 무모한 침공 6주년, 이제라도 미군이 이라크를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금융위기에 앞서 미국의 ‘패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게 ‘이라크의 수렁’이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버락 오바마 차기 미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이란 허상 쫓기의 무대를 아프간으로 옮겨갈 모양새인 탓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란 대통령 선거, 미국과의 대립은?

돌이켜보자. 1989년 2월15일, 10년 전쟁 끝에 소련은 아프간에서 철군을 마쳤다. 아프간 침공으로 국력을 낭비한 소비에트는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아프간 철군은 소비에트 몰락의 서막이었다. 꼭 20년 만에, 미국이 비슷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전, 그 끝이 어디로 향할 수 있을지 숨 고르고 살펴야 한다.

2008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는 314명으로, 2007년 904명 전사한 것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아프간에선 2007년(111명)에 비해 35%가량 늘어난 151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소항쟁 시기 미국의 지원을 받아 조직 꼴을 갖춘 무자헤딘의 후예,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지금 그 땅에서 미국에 맞서고 있다. 역사는 때로 우연을 가장해 스스로를 되풀이한다. 아프간은 대대로 ‘제국의 무덤’이었다.

물론 1월20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터다. 2009년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태어난 지 80년, 노예해방의 상징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다. 마침 흑인 민권운동의 보루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도 2월12일 창립 100주년을 맞게 되니, 이래저래 2009년은 미 소수인종 인권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임이 틀림없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은 쇠락해가는 ‘오만한 제국’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각각 ‘혁명의 해’를 맞는 쿠바와 이란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1959년 1월,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바나로 입성했다. 혁명 50주년을 1년여 앞둔 지난해 2월, 카스트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동생 라울에게 넘기고 2선으로 물러섰다. 카스트로의 퇴장과 오바마의 등장, 반세기 쿠바를 옥죄온 미국의 경제제재를 걷어내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이란은 어떤가? 1979년 1월 친미파 무하마드 리자 팔레비 국왕이 망명길에 오른 데 이어, 같은 해 2월1일 오랜 망명생활을 접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테헤란에 도착했다. 열흘 만에 이란 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면서 팔레비 왕조는 공식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그해 4월1일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으로 거듭났다. 같은 해 11월4일 테헤란의 미 대사관을 점거한 열혈 청년들이 52명의 미국인을 억류하면서 시작된 ‘이란 인질 위기’는 444일이 지난 1981년 1월20일에야 풀렸다. 미국과 이란, 30년 대립은 그렇게 시작됐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올 겨울엔 ‘기후변화’ 파국 막을까

오는 6월12일 이란에선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개혁파의 수장 격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이 보수·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맞설 공산이 커 보인다. 1997년 8월 집권한 하타미 전 대통령은 2005년 8월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온건한 개혁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신망을 쌓아갔다. 하지만 빌 클린턴 행정부는 이란과 손을 마주 잡지 않았고, 부시 행정부는 적대정책을 되레 강화했다. 그새 갈등은 위기로 치달았다. 숙원을 풀기 위해선 담대한 ‘희망’과 ‘변화’가 절실하다.

시간에 나이테를 새겨 굳이 기억하는 건, 과거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10월1일 건국 60주년을 맞는 ‘새로운 슈퍼파워’ 중국은 올 한 해 되짚어볼 일이 여럿이다. 반세기 전인 1959년 4월29일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가 세워졌다. 지난해 올림픽을 앞두고 라싸의 거리를 피로 물들인 인민해방군은 올해도 쉽게 무장을 늦추지 못할 사세다. 다른 한편, 개혁·개방이 불러온 경제적 풍요에 가려왔던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오는 6월4일 2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5월12일 쓰촨성을 송두리째 뒤흔든 대지진은 초고속 성장의 천박함을 여지없이 발가벗겼다. 탐욕에 눈먼 날림 공사로 한 세대의 아이들이 스러지기도 했다. 경기 침체 속에 맞은 인민공화국 60돌, 개혁·개방의 뒤안길을 둘러볼 일이다.

“인류는 기후변화와 세계경제 위기라는 2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12월1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코페르니쿠스의 모국 폴란드 땅 포즈난에서 열린 제1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고위급회의 개막연설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생각과 행동의 혁명을 통해 재앙에서 우리를 구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회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올해 말(12월7~18일) 지구촌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시 모여, ‘임박한 파국’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생각과 행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없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어디 ‘기후변화’뿐이랴. 옛것은 이미 무너졌다. ‘우리가 알던 자본주의’는 파산했다. 하지만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유령처럼, 무너진 옛것이 주변을 떠돌고 있는 이유다. 2009년은, 그래서 혼돈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