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랑을 좇아 개종하는 사람들

등록 2001-05-02 00:00 수정 2020-05-02 04:21

‘어떤 종교’냐가 더 큰 문제… ‘자유시민 결혼’ 합법화는 젊은이들의 숙원

푸른 눈, 금발의 한 젊은이가 초조한 모습으로 레바논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그 여성의 부모는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이건 2년 전, 지금 내 남편인 영국인 니콜라스와 내가 결혼 승낙을 받던 자리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들로부터 국제결혼의 허락을 받기 위해 고초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혼을 위해 터키로, 덴마크로

종교적 파벌이 심한 레바논의 경우, 국제결혼의 가장 큰 장애는 종교문제다. 국적보다는 종교가 우선하는 사회다보니 그렇다. 기독교 신자인 내 경우는 니콜라스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나 가족들로부터 아무런 박해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었다. “레바논 남자들로는 성이 차지 않더냐?” 따위의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날아드는 이런 집적거림 정도는 이미 각오한 뒤였으니 별 문제될 게 없었다.

나는 성장하면서, 만약 내가 결혼한다면 국적 같은 건 따질 것도 없고 기독교인 가운데 누군가와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게 레바논 사회의 현실이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회교 그리고 드루즈교(회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종교로 주로 레바논 산악에 분포)로 나눠진 레바논 사회는 늘 종교적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고, 종교적 구분이 가능한 상대방의 이름 끝자를 눈여겨보는 사회적 버릇까지 생겨났다.

이래서 서로 다른 종교끼리 일과 사업을 함께하다가도 결혼문제에 부딪치면 대개 종교적으로 확실한 선을 긋고 만다. 게다가 종교의식에 따르지 않는 결혼을 금지한 정부의 법이 결국 회교도는 회교도끼리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끼리 혼인하도록 직접적인 강요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종교법 자체도 결혼과 이혼 또는 상속 문제 같은 것을 일일이 규정하고 있어 시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크게 억압해왔다. 예를 들어, 이혼이라도 하려면 회교도의 경우 교주에게, 또 기독교도의 경우엔 목사에게 모든 판단을 맡겨야 할 정도다.

사회적 분위기도 국제결혼에 대해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지만, 그래도 레바논 남성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일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종교를 따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종교를 따를 수 없는 게 레바논의 법이다. 레바논 회교 남성 아리와 우크라이나 기독교 여성 줄리아의 결혼이 종교문제 때문에 1년을 끌었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걸로 괴롭히는 게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는 게 문제라는데, 신앙의 자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줄리아는 결국 2세가 아버지를 따라 회교도가 된다는 서약을 미리 하고난 뒤에야 아리의 가족들로부터 받아들여졌다.

캐나다 출신의 마르코 시로이스는 회교도 레바논 여성과 결혼을 앞두고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개종을 요구받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건 전혀 문제삼지 않았지만 비회교도라는 점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시로이스는 사랑을 좇아 회교로 개종했고, 그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 회교도가 되어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경우다.

그래서 지금 레바논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교도간 결혼을 위해 종교의식이 필요없는 이웃 사이프러스나 터키로 달려가고 있다. 말하자면 이건 거꾸로 가는 결혼 방식이다. 합법적인 결혼식부터 올리고난 뒤에야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가족들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는 식이다.

기독교도 모나 로우웨이합(27)은 요르단의 회교 남성과 결혼을 결심한 뒤, 가족들로부터 큰 압박을 받고 있는 경우다.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가 레바논 사람이고 어머니가 덴마크 출신이라서 국제결혼이 대물림되는 자연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결국은 종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스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인데도 마치 어린이 취급을 받는 기분이다.” 로우웨이합은 자유로운 결혼을 위해 약혼자 이제와 오는 6월 덴마크로 가서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종교·국적을 뛰어넘어 사랑하고 싶다

지난 1998년 에리아스 대통령이 자유로운 시민결혼을 규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했을 때, 종교지도자들이 나서 극렬한 반대를 해 레바논은 난리가 났다. 정치권 내에서도 찬성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이 충돌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도가 대통령직을 맡고 회교도 시아파가 국회의장직을, 그리고 회교도 수니파가 총리를 맡는 식으로 굴러온 정치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법안이 레바논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인 종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정치·종교적 반대자들의 압박으로 이 법안은 아직까지 깊은 수면상태에 빠져 있다. 매달 젊은이들이 몇 차례씩 이 잠자는 법안을 다시 깨워 국회를 통과시키고자 시위를 벌이고 있으나, 정치판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레바논의 젊은이들은 시민결혼이 합법화될 때, 결국 국적과 종교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온다는 단순한 믿음을 지닌 채, 지금도 거리로 나서고 있다.

림 핫다드(Reem Haddad)/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