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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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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의 중도 코드 맞추기

등록 2008-06-20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내 정책 분야에서는 비슷비슷, 조세와 대북정책에선 각 세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본격 점화된 미 대선]

피 말리는 경선을 뚫고 마침내 본선 진출자가 가려졌다. 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여. 언제나 그렇듯 길목마다 변수가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때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릴 것이다. 44번째 백악관 주인 자리를 놓고 정면 대결에 나선 두 후보,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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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와 힙합, 군중 연설과 친밀한 대화

1936년 8월생인 존 매케인 후보가 베트남에서 전선을 누비고 있을 무렵, 1961년 4월생인 오바마 후보는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게다. 오바마 후보가 갓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새 인생을 설계하고 있을 무렵, 매케인 후보는 5년여의 전쟁포로 생활을 거쳐 새내기 하원 의원으로 워싱턴 정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미 정치전문 사이트 는 지난 6월9일치에서 25살이나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스타일’을 이렇게 비교했다.

“71살의 고령인 매케인 후보는 스웨덴 팝그룹 ‘아바’를 좋아한다. 반면 46살의 오바마 후보는 힙합을 들으며 농구를 즐긴다. 군인 집안 출신인 매케인 후보는 규율을 중시하며 욱하는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오바마 후보는 웬만해선 냉정을 잃지 않는다. 유세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다. 오바마 후보가 대규모 군중 앞에서 빛을 발한다면, 매케인 후보는 소규모 대중이 모인 친밀한 대화에 강점이 있다.”

그럼 정책 면에선 어떨까? 뜻밖에도 두 후보는 상당히 폭넒은 영역에서 정책적 견해를 같이한다. 는 지난 2월20일 인터넷판에서 일찌감치 이런 정책적 유사성을 지적한 바 있다. “두 후보 모두 부시 행정부의 대표상품인 ‘일방주의’적 외교정책 대신 ‘다자주의’를 선호한다. 전쟁포로 출신으로 온갖 고문을 경험한 매케인 후보나 인권 변호사이자 헌법학 교수 출신인 오바마 후보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폐쇄에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는 지난 6월8일치에서 국내 정책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먼저 안보정책 분야를 보면, 두 사람 모두 미군 병력증강에 찬성한다. 이에 발맞춰 군비도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것도 물론이다. 미국 사회의 쟁점 중 하나인 이민정책에서도 두 사람 모두 불법 이민자들도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이민법 개정안에 찬성한다. 환경정책에서도 두 후보 공히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에너지 효율성 강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 확대를 강조한다. 사회정책 분야에서도 두 후보는 동성결혼 금지를 위한 개헌에 반대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 예산지원 금지조처의 철폐를 주장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낙태 문제다. 매케인 후보는 미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판례인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을 만한 인사를 대법관에 임명할 것임을 공언한 반면, 오바마 후보는 전형적인 낙태 허용론자다.

오바마, 북한은 만나고 파키스탄엔 무력개입

두 후보의 정책이 엇비슷한 이유는 뭘까? 은 6월9일 클라이드 윌콕스 조지타운대 교수(행정학)의 말을 따 “두 후보가 정책적으로 닮은꼴이 많은 건 대다수 미국인들이 ‘중도’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앞선 선거에서도 각 당 후보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누그러뜨려 중도 노선 쪽으로 이동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두 후보 간 정책 차이가 없다는 얘긴 아니다. 윌콕스 교수 말처럼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휘발유 가격이 1갤런에 4달러 선을 넘어섰다. 달러화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에도 원자재값 상승과 맞물려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여기에 비우량주택담도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까지 겹쳤다. 고용시장 불안도 위기감을 더했다. 지난 4월 5%였던 실업률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달 새 0.5%포인트 급상승해 5.5%를 기록했다. 지난 2006년 중간선거 최대 이슈가 이라크 문제였다면, 올 대선 최대 쟁점은 단연 경제일 터다. 두 후보가 본선 첫 대결로 경제정책 공방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부유층만을 위한 경제정책으로 빈부격차를 극대화한 부시 행정부를 4년 더 연장하느냐,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변화’로 나아가느냐에 대한 선택이다.” 먼저 공세에 나선 건 오바마 후보다. 그는 지난 6월10일 〈CNBC방송〉에 출연해 “한해 25만달러 이상 고액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및 자산소득세를 인상하는 한편, 소액투자자에 대한 조세 감면 혜택을 늘릴 것”이라며 “나를 포함한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늘려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는 건 분명 건전한 조세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후보는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세금 인상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매케인 후보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은 6월10일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확대,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보험 체계와 보호무역주의 등 과거의 노선에 기반한 정책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매케인 후보의 말을 전했다. 통신은 매케인 후보가 △부시 행정부의 조세 감면 조처 제도화 △법인세율 인하 △부양가족에 대한 세금 감면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고 덧붙였다.

외교정책은 어떨까? 흔히 매케인 후보는 냉전형 강경파, 오바마 후보는 탈냉전형 온건파로 평가된다. 전형적인 사례가 두 후보의 대북정책이다. 매케인 후보는 지난 5월26일 에 보낸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제재조처 강화를 통해 북한을 더욱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는 5월27일치 인터넷판에서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정책 노선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반면 오바마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북한을 포함한 ‘깡패국가’ 지도자와 집권 첫해에 조건 없이 만날 뜻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오바마 후보가 모든 면에서 ‘비둘기파’인 건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출마 당시부터 파키스탄에 대한 무력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정권이 갑작스레 붕괴할 경우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게다. 지난 경선 기간에도 오바마 후보는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는 테러조직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만 있다면, 파키스탄 정부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적대적 vs 중국에 강경

매케인 후보가 러시아를 적대시한다면, 오바마 후보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매케인 후보가 ‘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G8) 체제에서 러시아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면, 오바마 후보는 중국이 계속해서 인위적으로 위안화 환율을 낮게 유지한다면 전례 없이 강력한 무역 보복에 나설 것이란 경고를 지속해왔다. 실제로 지난 5월 오바마 후보는 정부 차원의 인위적인 환율 인하를 수출 보조금과 동일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무역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의 길을 열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에 휘말린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삐걱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바마 후보가 공약대로 ‘진정한 변화’를 추진하는 순간 새로운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 〈AFP통신〉은 지난 6월8일 로버트 해스웨이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앞서 독일 시사주간지 도 지난 5월26일 인터넷판에서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세계인이 마냥 반길 수만은 없을 것”이라며 “어차피 미국의 대통령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국익에 기초해 정책 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정권교체’는 세계인에게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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