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티베트’ 네팔 카트만두 르포… “짱돌 하나 들지 않겠다”는 평화시위와 경찰의 무력탄압
‘두 개의 중국, 두 개의 티베트.’ 네팔에서도 ‘중국’을 만날 수 있다. 카트만두의 거리에서 티베트 난민들이 경찰의 곤봉에 쓰러질 때, 네팔 정치권에선 입을 모아 ‘하나의 중국’을 강조한다.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도 티베트를 만날 수 있다. 급격한 한족화로 인한 차별과 낙후한 경제 상황 속에 놓인 소수민족 위구르인의 도시 카스. 라싸의 분노는 카스의 미래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와 박현숙 전문위원이 각각 네팔과 신장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편집자
▣ 카트만두(네팔)=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네팔 수도 카트만두 남부에 있는 자왈라켈 티베트인 난민캠프는 한때 공동묘지였다. 1960년대부터 고향을 떠나온 갈 곳 없는 난민들이 비렌드라 전 네팔 국왕의 허락을 받아 하나둘 정착하며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었고, 지금은 카트만두 최대의 난민캠프로 성장했다. 지난 3월10일 티베트에서 첫 시위가 벌어진 이래 난민캠프를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부쩍 분주해졌다.
“인도에서도 평화시윈 할 수 있었는데…”
자왈라켈 캠프 난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1959년 3월 독립 항쟁을 기념하는 ‘3월10일 행사’는 티베트 안팎에서 해마다 치러온 연례행사다. 다만 사원 등 중국 공안당국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고 작은 규모로 열리던 티베트 내부 행사가 올해엔 거리에서 공공연히 열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라싸의 시위는 네팔의 티베트인 난민캠프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3월19일 오전 9시께. 중국의 티베트 시위 강경 진압에 항의하는 ‘24시간 단식투쟁’이 끝나가는 자왈라켈 캠프는 아연 생기가 돌고 있었다. 여성들과 청년들이 200명가량의 단식단이 먹을 미음과 차 등을 부지런히 나르는 사이, 단식을 마감해가는 이들의 기도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지난 1999년 ‘환생 승려’로 인정을 받았다는 뉴쿠 리토체(29)는 “눈을 감으면 비명에 간 이들이 보인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리고…. 배고픔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해 생면부지였던 11명이 티베트 소식을 듣고 단식투쟁을 시작하자, 주변에서 다른 이들도 자발적으로 나서 ‘24시간 단식투쟁단’을 만들어냈단다.
비구니인 나왕 텐돈(37)도 그중 한명이다. “뭐든 해야 한다고 느끼던 터에 단식투쟁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티베트인뿐 아니라 중국 땅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나면서부터 난민 신세였고, 19년 전 네팔로 이주해왔다. 그는 “(네팔) 경찰이 시위에 나선 동료 승려들을 마구 때렸다”며 “인도에선 적어도 평화시위는 할 수 있었는데, 여긴 그마저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트만두는 요즘 ‘또 하나의 티베트’ 같은 분위기다. 지난 2주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티베트 난민들의 시위를 네팔 경찰들이 과잉 진압하면서, 연일 부상자와 대량 연행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2년 전 이맘때, 왕정 타도를 외치던 ‘제2민중항쟁’(1990년 다당제 도입을 이끌어낸 민주화 시위를 통상 ‘제1민중항쟁’이라 부른다) 현장에서 목격한 진압 양상은 그 항쟁이 만들어낸 ‘민주과도 정부’ 아래서도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울상으로 두 손 빌며 호소하는 여성도, 허약한 노인도, 비구니 승려도 예외가 없었다. 경찰의 곤봉은 승려의 머리를 타격했고, 경찰차에 실려가는 승려의 얼굴은 군홧발에 짓밟혔다. 여성 시위대를 잡아끄는 데 재미라도 붙인 양 웃음 가득한 얼굴로 연행을 ‘즐기는’ 경찰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럴듯한 펼침막과 ‘티베트 국기’는 물론 가느다란 볼펜으로 ‘프리 티베트’라 적은 종잇장까지도 시위용품으로 빼앗기기 일쑤다. 3월24일 국제앰네스티가 주최한 평화행사조차 경찰의 강제 해산과 무차별 연행으로 무산됐다.
과도정부와 주요정당, 시위대 비난
그럼에도 ‘평화’를 외치는 티베트 난민들은 어김없이 다시 모여든다.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따라 “짱돌 하나 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들은 어찌 보면 무력했고, 한편 지독했다. 지난 3월18일 정오 무렵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 자왈라켈 캠프 공터 한편에 모여앉은 열댓 명의 젊은이들은 너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팔 정부의 의지가 아니다. 중국의 압력 때문이다.” 노르부 칼덴(27)은 시위 폭력 진압에 대한 ‘중국 배후론’을 확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네팔 정부와 주요 정당들의 잇따른 ‘친중 성명’에 불안한 현재와 암울한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다. ‘좌파 성향’의 현 과도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 지지를 거듭 강조할 뿐이고, 특히 당 기본 이념을 중국에서 ‘수입’한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CPN-Maoist)는 아예 공식 성명에 “티베트 시위대를 비난한다”는 문구를 박아넣었다. 지난 3월23일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프라찬다 마오이스트 의장은 “티베트 시위대를 비난한 성명이 티베트 내부와 네팔 거주 티베트인들에 대한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는 걸로 봐도 되겠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들은 분리주의자들이다. 중국의 대응은 정당하다.”
“평화 시위를 하란 말이다. 그럼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하니까….” 같은 날 만난 ‘네팔공산당 마르크스레닌파’(CPN-UML) 출신 사하나 프라단 외무장관(79)도 마찬가지로 시위대를 비난했다. “평화적 시위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란 의례적 답변을 내놓은 네팔의회당(현 총리 소속당)을 제외하면 네팔에선 국제사회가 내뱉는 그 흔한 ‘립서비스’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티베트 내부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온갖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난민들은 분노와 함께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티베트에 사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난민 니마 돌카르(33)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3월14일 오후 내 친구가 수많은 주검이 거리에 깔려 있는 걸 봤다고 하더라”며 흥분했다. 3월17일부터 난민캠프에선 부상자인지 사망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폭력 진압 피해자들의 사진도 나돌고 있다. 한 난민은 “(달라이라마의 고향 땅인 티베트 북동부) 암도 지방에서 500여 명이 투옥됐고, 이들 대부분이 곧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티베트 가본 적 없는 ‘난민 2세대’가 주축
이런 상황에서 3월19일을 전후로 네팔 당국이 ‘블랙리스트’를 중국대사관과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거리시위에 나섰다 경찰에 체포된 뒤 풀려난 소와이암부 사원 소속의 한 티베트 승려는 “나를 포함해 10여 명의 ‘명단’을 중국대사관과 네팔 정부, 경찰당국이 공유하고 있다”며 “체포됐을 때 경찰들이 ‘당신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중국으로 추방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오랜 침묵을 깬 3월10일 티베트 시위가 빚어낸 티베트 난민캠프의 들뜬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네팔에서 ‘반중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건 승려들과 젊은이들이다. 의 티베트인 기자 툭판 샤스티리아(38)는 “1949년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되기 전만 해도 티베트 승려들은 신앙생활에만 몰두했고, 정치·사회적으로 의식화된 그룹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원하는 대로 종교의식을 치를 수 없는 현실이 승려들의 망명을 부추겼고, 정치적으로 의식화시켰다”는 게다.
인도나 네팔로 이주한 난민 부모에게서 태어난 젊은 ‘2세대 난민’들은 티베트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난민캠프의 티베트 학교에서 ‘조국’의 문화·종교·언어 교육을 받고 자랐다. 절대다수가 실업자 신세지만, 티베트 내부에선 이미 시들어가는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이어받은 이들이야말로 티베트의 미래다.
켈산 초우돈(24·여)은 “우리나라를 되돌려받기 원한다”고 했다. 카펫 장사를 한다는 로브슈 텐타르(30)는 “티베트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유엔과 국제사회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립을 원하는 상당수 젊은이들은 ‘진정한 자치’를 말하는 달라이라마의 ‘온건 노선’을 에둘러 비판했다. 반면 소남티쉬(31)나 초클리라마(26) 등은 “독립을 원하지만 달라이라마가 중국과 협상을 잘해서 자치를 받아들인다면, 우린 그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제는 있다. “현재 중국이 부여한 ‘그런 자치’ 말고,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진정한 자치”가 이들이 ‘양보’할 수 있는 협상의 마지노선이었다.
왜 우리 땅에서 난민처럼 살아야 하나
“왜 우리가 우리 땅에서 ‘2등 국민’으로, 난민처럼 살아야 하는가.” 캠프 공터에 둘러앉은 침울한 표정의 젊은 티베트 난민들이 던진 마지막 물음이다. 폭력이라곤 몰랐던 라싸의 젊은이들이 지난 3월14일 ‘폭도’로 돌변하기 전 수도 없이 되풀이했을 물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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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부 첸중(37)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장 큰 티베트 난민캠프인 자왈라켈 캠프의 ‘의장’이다. 주로 난민들의 ‘복지’를 돌보는 게 그의 일이지만, 요즘은 시위 상황을 챙기느라 더욱 분주하다. 그는 “내일 누군가 폭탄을 들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로, 절망과 박탈감이 가득한 티베트의 불확실한 미래를 표현했다.
티베트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지난 3월10일 오전 시위가 벌어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적잖이 놀랐다. (거리시위는) 20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59년 동안 중국은 “자치구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고,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선전해왔다. 이번 사태로 그게 거짓임이 입증됐다. 티베트에서 ‘자유 티베트’를 외치는 이들 대부분은 젊은이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본 적도 없고, 1959년 항쟁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나섰다. 그들이 쉽게 항복할 거라 보지 않는다.
올해 사태가 커진 이유는 뭔가?
=티베트 내부 시위가 올림픽 불참운동을 노렸다고 보지 않는다. 달라이라마도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국 중 하나이고, 올림픽을 개최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중국이 진심으로 낙후한 티베트를 개발하고 인권을 보장하면서 올림픽을 치른다면 우리도 행복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 반대다. 티베트뿐 아니라 중국 내 다른 지역에도 기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많다. 올림픽 준비를 이유로 수많은 빈곤층과 농민들이 강제 이주를 당했다. 중국의 ‘진짜 얼굴’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티베트 내부에서 올해를 ‘좋은 기회’라 여긴 것 같다.
지난 3월14일 중국인과 무슬림이 운영하는 상점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벌어졌는데.
=좌절감과 경제적 박탈감이 극에 달한 거다. 목숨을 내놓은 것 같다.
공산당 등 네팔 정치권에서 ‘반중 시위’를 비난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우린 지금 티베트가 중국에서 당장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인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독립’을 말하지만 ‘진정한 자치라면 중국의 지배 아래서도 살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티베트는 수천 년간 독립을 유지해온 국가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당장 ‘분리독립’을 주장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 수준의 ‘자치’에 만족할 순 없다. 티베트 자치주 주지사는 티베트인들이 선출한 게 아니라 베이징에서 임명한다. 성스러워야 할 사원은 당국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모임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종교다. 그런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기본권이 보장되고 미래가 있다면,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나 역시 자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국경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제3의 국가나 국제기구의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그동안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결과가 나빴을 뿐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중국을 겨냥해 나쁜 언어를 사용한 적도 없고, 중국 국기를 태운 적도 없다. 협상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왔다. 근거 없이 달라이라마와 망명정부에 대한 비방을 퍼부어왔다. 3월14일 전례 없는 폭동 이후에도 달라이라마를 다시 비방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일 누군가 폭탄을 들고 나타날지 모른다. 자살 공격을 벌일지도 모른다. 티베트인들이 폭력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자치가 아닌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이 향후 어떤 노선을 걸을지 누가 알겠나. 달라이라마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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