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슈퍼 화요일’ 겨냥한 선거전략, 플로리다만 노리다 후보 사퇴한 줄리아니가 떠오르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텍사스와 오하이오주 예비선거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있을까?’
지난 2월10일 진보적 격월간지 는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물었다. 미국 북동부 포토맥강을 끼고 이웃해 있는 메릴랜드·버지니아주와 수도 워싱턴DC에서 일제히 치러질 경선(포토맥 예비선거)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이 잡지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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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화요일’의 승자는 없었지만, 미 대선 민주당 경선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2월5일을 기점으로 경선 판도가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탓이다. ‘진자의 추’가 움직이는 방향은 단연 버락 오바마 후보 쪽이다. 루이지애나·워싱턴·네브래스카 주에서 오바마 후보가 파죽지세의 연승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클린턴 후보 진영에 아연 비상이 걸린 건 당연했다. 선거운동 책임자까지 전격 교체할 정도로 잇따른 패배는 클린턴 후보 진영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묘수가 필요했고, 전술이 마련됐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 유의미한 방안
버몬트·로드아일랜드·텍사스·오하이오 등 4개 주에서 예비경선이 실시되는 3월4일은 ‘미니 슈퍼 화요일’로 불린다. 그만큼 대의원 수가 많이 걸려 있는 탓이다. 이들 4개 주에 걸린 대의원은 모두 444명. 버몬트주(23명)와 로드아일랜드주(32명)는 관심거리가 못 된다. 문제는 오하이오주(161명)와 텍사스주(228명)다. 클린턴 후보 쪽은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승리를 거두면, ‘2월의 패배’를 손쉽게 만회할 것이란 계산을 했을 법하다.
클린턴 후보 진영은 지난 2월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AP통신〉은 하워드 울프슨 선거캠프 홍보국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오바마 후보가 다가오는 경선에서 강세를 띠고 있음은 분명하다. 3월4일 전까지 몇차례 더 승리를 올릴 수도 있을 게다. 그럼에도 2월 말까지 확보 대의원 수에선 클린턴 후보가 앞설 것이고, 3월4일 예비선거에서 대의원 수가 많이 걸린 주에서 승리하면서 판세를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시 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이 잡지는 ‘대어’에 집중하겠다는 클린턴 후보 진영의 전술에 대해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선 유의미한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는 게 홍보전술로는 나쁠 게 없다는 얘기다. 사실이다. 언론매체는 본디 ‘예상 밖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상대로’ 판세가 이어진다면 큰 이목을 끌지 못한다는 셈법은 여기서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는 남은 2월에 치러질 예비선거에서 오바마 후보의 우세를 점쳤다. 2월9일 치러진 루이지애나 등 3개 주에서도 오바마 후보가 사전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후보를 크게 앞섰다.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실제 미 언론은 오바마 후보가 이들 지역에서 거둔 승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판세는 여전히 ‘백중지세’라고 보도됐다. 이튿날 치러진 메인주 당원대회에서 오바마 후보가 다시 승리를 거뒀지만, 언론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미니 슈퍼 화요일’까지 남은 경선 일정은 포토맥 예비선거와 하와이·위스콘신주 정도다. 이들 지역에서 클린턴 후보는 오바마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모두 패배하더라도 ‘예상’을 뒤엎는 것은 아니니, 입을 상처 또한 크지 않을 듯 보였다. 클린턴 후보 쪽에선 어느 한 곳에서라도 ‘예상 밖’ 승리를 거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란 계산도 했을 법하다.
대의원 수를 뒤집은 ‘이정표’[%%IMAGE5%%]
이윽고 2월12일 ‘포토맥 예비선거’의 날이 밝았다. 이들 지역에 걸린 대의원은 모두 237명.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위해 필요한 대의원단의 약 12%에 이르는 규모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투표 직전까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오바마 후보의 편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워싱턴DC에선 오바마 후보가 75%의 득표율로 클린턴 후보(24%)를 3배 이상으로 앞질렀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에서도 오바마 후보가 각각 60%와 64%의 득표율을 올리며, 각각 37%와 35%를 얻는 데 그친 클린턴 후보를 압도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클린턴 후보 진영이 내다보지 못한 건 그 다음부터다.
이날 3개 지역을 휩쓸면서 낙승을 거둠으로써 오바마 후보는 작은 ‘이정표’ 하나를 세웠다. 민주당 후보 경선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확보한 대의원 수에서 클린턴 후보를 앞지르기 시작한 게다. 〈AP통신〉은 2월13일 “오바마 후보가 이날까지 1275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1220명 확보에 그친 클린턴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경선을 확정짓기 위해선 2025명의 대의원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이정표’에 둔감할 언론은 없었다. 클린턴 후보 진영의 ‘예상’ 하나가 빗나간 게다.
두 번째 ‘예상 못한 상황’은 여론조사 결과가 불러왔다. ‘포토맥 예비선거’에서 오바마 후보와 마찬가지로 3개 지역을 석권하며 후보 지명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의 ‘본선 경쟁력’에서도 클린턴 후보에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바마 후보는 클린턴 후보와의 승부에서만 앞서기 시작한 게 아닌 것으로 나타난 탓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그비인터내셔널’이 2월13일 내놓은 설문 결과를 보면, 매케인 후보와 본선에서 맞붙을 경우 클린턴 후보는 5%포인트 차이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오바마 후보는 7%포인트 차이로 승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매케인 후보에게 한참 뒤져 있는 마이크 허커비 후보가 본선에 나서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가 3%포인트 차이로 신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바마 후보는 15%포인트 차이로 압승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온 버지니아주 예비선거에서 오바마 후보는 매케인과 허커비 두 공화당 후보가 얻은 표를 합산한 것보다 14만2천여 표를 더 얻었다. 클린턴 후보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오바마 대세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포토맥 예비선거’ 결과가 속속 전해지던 2월12일 밤 클린턴 후보는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텍사스주의 일원이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3주 동안 텍사스 구석구석을 돌며 정책을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저녁 유세에서도, 그 다음날 아침 유세에서도 전례를 깨고 오바마 후보가 거둔 승리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치전문 인터넷매체 는 “이튿날인 2월13일 오전 유세를 마친 뒤 연 기자회견장에서야 클린턴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다”며 “하지만 그마저도 ‘모든 게 우리 계획대로 잘돼가고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고 전했다. 야유는 이어졌다.
3월4일에는 큰 폭으로 ‘압승’해야 하는데…
“당원대회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 클린턴 후보 진영은 ‘당원대회 방식은 비민주적이며, 당 활동가들의 의견만 반영된다’고 비판했다. 루이지애나 등 남부 일대에서 졌을 땐 ‘이 지역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거인단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며 오바마 후보의 우위를 기정사실화해버렸다.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패할 경우엔 ‘이 지역 주민들은 어차피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했다.” 〈AP통신〉은 2월13일 “이제 클린턴 후보 진영은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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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클린턴 후보에게 3월4일은 중요해진다. 생산직 노동자층이 많은 오하이오주, 히스패닉 인구가 밀집한 텍사스주는 클린턴 후보의 ‘표밭’으로 여겨져왔다. 오바마 후보가 다음 경선 장소인 위스콘신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클린턴 후보가 텍사스주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도 클린턴 후보는 단순히 승리만 해선 곤란하다. 그의 처지에선 ‘미니 슈퍼 화요일’의 승부가 가능한 한 큰 폭의 차이를 보이는 압승이어야 한다. 는 2월14일치 기사에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클린턴 캠프는 어려운 ‘수학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테면 오하이오주에서 52% 대 48%로 승리할 경우, 클린턴 후보는 오마바 후보에 비해 단 4명의 대의원을 더 확보하는 데 그치게 된다. 판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얘기다. 지지율 60% 대 40%로 승리할 경우, 30명의 대의원을 더 확보할 수 있다. 텍사스주에서 55% 대 45%로 승리한다면, 오바마 후보보다 19명의 대의원을 더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두 사람이 확보한 대의원 차이는 55명이다.
클린턴 후보의 전술은 여전히 유효할까? 는 일찌감치 고개를 가로저었다. 클린턴 후보 진영의 전술이 경선 초반부터 대의원 수가 많이 걸린 플로리다주에만 집중하다 결국 고배를 든 공화당 후보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행보를 연상시킨다는 게다.
지난 1월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줄리아니 전 시장은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렸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일찌감치 아이오와·뉴햄프셔 등의 초기 경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1월 말로 예정됐던 플로리다 경선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잇따른 경선 패배는 그에게 ‘내상’을 입혔다. 결국 플로리다주 예비선거에서마저 3위에 그치면서, 그는 ‘슈퍼 화요일’ 결전을 치러보지도 못한 채 경선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예상 밖으로 일찌감치 정해질 수도
이 때문에 일부 미 언론에선 “5회에 KO승을 거두겠다며 4회까지 뭇매를 얻어맞는 권투선수나 마찬가지”라거나 “줄리아니 후보의 경험은 지지율 1위 후보가 선거전략을 잘못 세우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정치학 교과서에서 다뤄질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는 클린턴 후보가 자칫 “제2의 줄리아니”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분수령은 3월4일이다. 클린턴 후보의 사활이 ‘미니 슈퍼 화요일’에 걸렸다. 오바마 후보 처지에선 ‘비기기만 해도 이기는 게임’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어쩌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예상 밖’으로 일찌감치 정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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