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가구당 4100달러 투자했는데… 탈레반은 위용을 되찾고 이라크는 혼란에 휩싸여 있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굳이 말하자면 전쟁을, 일종의 ‘경제활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재화(무기)와 용역(병력)을 투입해 원하는 생산물(유리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으로 전쟁을 이해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전쟁이 불러올 수밖에 없는 참혹한 중간 과정은 이런 셈법에서 종종 생략된다. 21세기판 냉전, 아니 열전인 ‘테러와의 전쟁’도 이런 논리로 분석이 가능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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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어깨에 아랍 전통 칼을 올려놓은 채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왕세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환영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정부에 200억달러 상당의 첨단 무기를 수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REUTERS/ LARRY DOWNING)
전쟁 지지 ‘보상’은 무기 지원
대테러 전쟁의 비용을 추적해온 미국 시민단체 ‘국가우선순위 프로젝트’(www.nationalrpriorities.org)가 지난 2월1일까지 집계한 이라크 전쟁 비용은 4900억달러(약 462조5600억원)를 넘어섰다. 2003년 3월20일 개전 이래 미국인 1가구당 지금까지 4100달러(약 387만원)가량의 전비를 부담한 꼴이다. 그동안 약 4천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고, 6만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미국 입장에서 해보는 계산이니, 70만여 이라크인이 숨지고 400만여 이라크인들이 자기 나라 안팎에서 난민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일단 논외로 해두자.
투입된 ‘재화’와 ‘용역’을 확인했으니, 이제 ‘생산물’을 따져볼 일이다. 테러와의 긴 전쟁이 서막을 울린 아프가니스탄에선 쫓겨났던 탈레반의 ‘되찾은 위용’이 수도 카불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두 번째 전쟁터인 이라크의 유혈과 혼란에 대해선 따로 긴 말이 필요 없을 터다. 5년여 전 바그다드에서 이뤄진 정권교체가 올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에서 ‘워싱턴의 정권교체’로 이어질 분위기란 점을 떠올리는 것으로 족하겠다.
대테러 전쟁의 교두보로 꼽혔던 파키스탄의 정정불안은 2001년 9월11일 동시테러의 참극을 뚫고 잉태된 무모한 전쟁의 현주소를 웅변해준다. 부시 행정부가 테러라는 ‘유령’과의 전쟁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넓혀간 소말리아에선 오늘도 총성과 포격이 수많은 난민 행렬을 만들어내고 있다. 애초 대테러 전쟁의 주요 명분이었던 중동의 민주화도,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서였을까?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미국은 무기 수출을 큰 폭으로 늘렸다. 미 민간연구단체 국방정보센터(CDI)는 지난 1월28일 내놓은 ‘의문의 보상: 무기 수출과 테러와의 전쟁’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의 무기 수출과 이전, 해외 군사원조가 해마다 급격히 늘어났다”며 “특히 인권유린이나 정정불안 등을 이유로 무기 수출을 금했던 나라에 대해서도 대테러 전쟁 동맹국임을 명분 삼아 첨단 무기 판매를 재개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자국의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나라에 ‘보상’ 차원에서 자국산 무기를 판매·지원한 것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냉전시절엔 ‘반공’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고, 냉전이 끝난 뒤엔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웠다. 대테러 전쟁이 시작되면서 ‘의지의 동맹’으로 그 개념이 바뀌었지만, 미국의 정책목표에 부응하는 나라에 미국산 첨단무기를 내주는 것은 일관된 ‘당근’이었다.
국방정보센터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06년 한 해 미국은 169억달러 상당의 무기 판매 계약을 맺었다. 이는 전세계 무기 판매 계약고의 41.9%에 이르는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의 뒤를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한 러시아와 영국이 각각 87억달러와 31억달러 상당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적어도 미국 무기업계 입장에선 ‘테러와의 전쟁’은 수지가 맞는 ‘경제활동’이란 얘기다. 물론 ‘경제활동’의 주체를 미국이란 나라로 바꾸면, 셈속은 상당히 달라진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의 무기 수출 정책은 대테러 전쟁의 지지 여부를 시금석으로 삼게 됐다. 국방정보센터가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새롭게 미국의 동맹국으로 떠오른 전세계 25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나라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라는 ‘전장’에 인접하거나, 자국 내부에서 테러 위협에 직면해 있다.
9·11 이후 5년간 무기 판매 5배 늘어
대테러 전쟁 초기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들 25개국을 대테러 전쟁의 잠재적 동맹국으로 규정하고, 무기 수출 금지와 각종 제재조치를 일괄 해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이를테면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던 인도와 파키스탄 △군사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타이 △10여 년째 국경 충돌을 빚어가며 불안한 휴전상황을 유지해온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정정이 불안한 타지키스탄 △군부의 심각한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온 인도네시아 등이 미국의 새 동맹국으로 떠오르면서 수혜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9·11 이전까지 무기 금수 조처를 받았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인도·파키스탄·타지키스탄·옛 유고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 6개국에 대한 무기 금수 조처가 가장 먼저 해제됐다. 타이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도 철회됐고, 1990년 이후 미국의 군사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던 예멘도 새롭게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됐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도 미국산 첨단무기를 사들일 수 있게 됐다.
9·11 동시테러를 기점으로 전후 5년간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이전 및 군사지원 내역을 비교해보면 변화의 폭을 가늠해볼 수 있다. 국방정책센터는 보고서에서 “2001년을 기점으로 앞선 5년 동안 이들 25개국에 판매한 무기보다, 9·11 동시테러 이후 5년간 판매한 무기가 5배가량 많다”고 지적했다. 9·11 동시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들 국가는 여전히 미국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었을 터다.
“모든 전장에 미군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다가오는 전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6개월 만인 2002년 3월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25개 ‘신동맹국’에 대한 국제군사교육·훈련(IMET) 프로그램 관련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이유다. 9·11 테러 이전 5년 동안 3900만달러에 불과하던 이들 국가에 대한 군사훈련 지원예산은 이후 5년 동안 9300만달러까지 늘어났다. 국방정보센터는 보고서에서 “이들 국가에 대한 예산지원은 미국의 전체 해외 군사훈련 지원예산의 25%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테러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애초 이들 25개국에 대해 미국이 각종 제재를 부과하게 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들 국가 대부분은 정정불안에 휩싸여 있다. 미국이 내준 무기와 훈련시킨 군대가 되레 장기적으로 미국의 안보위협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인 게다. 레이철 스톨 국방정보센터 선임연구원은 군축·평화 전문지 격월간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동맹국으로 남을까
“인권탄압과 테러지원 전력, 비민주적 정권이란 문제점에 대해 대테러 전쟁의 동맹국을 확보하려는 부시 행정부는 철저히 눈을 감았다. 이들 국가의 ‘잘못된 행태’를 바꿔내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외교적 영향력을 미국 스스로 포기해버린 셈이다. 대테러 전쟁의 종식은 이들 국가에 미국의 군사지원 중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국가 입장에선 결코 반길 일이 아닌 게다. 테러전이 길어질수록 이들 국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적인 동맹은 확보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들 국가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대테러 전쟁’은 이래저래 지독히도 수지가 맞지 않는 ‘경제활동’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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