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차 중국 공산당대회, 경제정책은 ‘좋으면서도 빠른 발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 ‘파워 엘리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0월15~2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2237명의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7차 당대회)가 열렸다. 5년마다 한 번 개최되는 당대회는 향후 5년간 중국 공산당의 국정목표를 밝히고,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한 정치 권력의 핵심 인물들을 뽑는 자리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17차 당대회의 핫 이슈는 집권 2기를 맞는 후진타오 체제의 새로운 국정목표는 무엇이며, 과연 누가 권력의 최전선에 배치될 것인가였다. 중국 언론이 주로 전자에 관심을 쏟은 반면, 외신들의 모든 관심은 후자, 즉 권력 핵심부의 인사 이동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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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평화로운 권력 황금분할
지난 10월21일 중국 정치권력의 최핵심인 새로운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비밀 커튼’ 속에서 걸어나왔다. 마오쩌둥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적인 경쟁선거를 거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큰손’들의 밀실 경쟁을 통해 배출된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중국 정치권력의 흐름을 보여주는 풍향계다. 비공식적인 파벌정치가 이뤄지는 중국에서 정치국 상무위원들에 대한 인선은 흔히들 가장 민감한 내부 권력투쟁의 산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이번 17차 당대회에서는 과연 누가 2012년 퇴임할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일부 한국 언론과 외신들은 이번 인선을 후진타오의 ‘공청단파’와 장쩌민이 이끄는 ‘범상하이파’ 간의 대리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번 정치국 상무위원 인선을 이렇게 단순히 각 파벌 간 권력투쟁 과정으로 본다면 그 결과는 세력 균형과 평화 공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장쩌민의 상하이파와 후진타오의 공청단파, 그리고 쩡칭훙 전 부주석이 이끄는 태자당 계열, 이 세 계파 간의 ‘평화로운’ 권력 분할로 결론지어졌다. 새로 인선된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들 중 16대 이후 유임된 우방궈, 자칭린, 리창춘 등이 장쩌민의 ‘로열 패밀리’ 그룹인 반면 새롭게 등용된 시진핑과 허궈창, 저우융캉 등은 쩡칭훙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리커창과 원자바오는 후진타오 계열로 분류된다. 중국 내 정치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3+3+3’이라는 황금 권력 분할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들 중에서도 후진타오가 내외신 기자들을 향해 “우리의 새로운 젊은 동료”라고 소개한 상하이시 서기 시진핑과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은 향후 5년 동안 포스트 후진타오 시대를 놓고 경쟁할 차기 ‘대권주자’들이다. 범상하이파 혹은 쩡칭훙 계열로 분류되는 시진핑이 권력 서열 6위로 등극하고, 후진타오의 오른팔로 불리는 리커창이 7위에 머문 것을 두고 많은 외신들은 장쩌민의 승리, 후진타오의 패배인 양 써댔다. 그러나 중국 내 분석가들은 이를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비록 이 둘의 정치적 배경이 서로 다른 파벌을 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의 정책이나 사상이 ‘파벌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둘 사이에는 계파 간 대리전을 치를 만한 정책적·사상적 견해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 서열만으로는 후진타오의 집권 기반이 약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기치
장쩌민에게는 이번 당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정치적 영향력 행사 무대인 반면, 후진타오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막후 정치 실세로 활동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17차 당대회는 결과적으로 후진타오가 5년 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을 전방위적으로 ‘깔았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17차 당대회 권력 분할 구조에서도 나타났듯, 중국 정치권력 내에 더 이상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절대권력자’가 나오거나, 그들의 ‘절대의지’가 반영되기는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집단지도 체제가 안정화됨으로써 당내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10월15일 개막일에 발표된 후진타오의 당대회 보고 내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향후 5년간 전반적인 국정목표가 반영된 그의 보고 내용의 핵심은 흔히들 ‘과학적 발전관’으로 압축한다. 이번 보고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유하오유콰이’(又好又快·좋으면서도 빠른 발전)라고 명시된 후진타오의 경제정책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됐다는 점이다. 아울러 중화민족의 부흥과 민족문화 건설을 강조함으로써 질적·양적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국민 통합 이데올로기로서 ‘중화 민족주의’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중국에서 불고 있는 공자 붐과 전통문화 살리기 붐, 와 같은 TV 다큐멘터리 제작 등 민관 합동으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건 민족주의 사상 고취운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당대회 보고를 통해서 중국 지도부는 향후 중화 민족주의 사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취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린 셈이다.
애초 많은 중국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대’한 보고 내용은 당내 민주화와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후진타오의 ‘화답’이었다. 이번 17차 당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중국에서는 지식인들과 원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당내 민주화와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과 요구가 분분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마오쩌둥의 비서였던 리루이는 개혁 성향의 잡지인 10월호를 통해 “중국의 미래가 실패냐, 아니면 성공으로 가느냐는 정치개혁 여부에 달려 있다. 반드시 헌정을 실시해야 하고 공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은 언론, 신문출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을 포함한다”며 “민주화 개혁을 늦추면 중국 정국은 다시 과거의 혼란 속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그는 2월호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고 사회주의라 불리는 것은 모두 가짜”라고 통박해 중국 정가와 지식인들 사이에 논쟁의 불씨를 지핀 바 있다.
지난 1997년 9월 제15차 당대회에서 “법에 의거한 통치로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하자”라는 정치체제 개혁 목표를 천명한 이래 중국 지도부는 정치개혁을 언급하긴 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번 당대회 역시 이렇다 할 만한 정치체제 개혁의 신호는 읽혀지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점이라면 여전히 ‘당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다만 후진타오는 이번 당대회 보고를 통해 그동안 개혁개방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논쟁에 대해 “개혁개방은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혁명”이라며 개혁개방의 부정적 측면을 공격한 좌파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앞으로도 개혁개방 정책은 지속적으로 확대하되, 당내 민주화 등 정치체제 전반에 대한 개혁은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위협은 파벌로부터 오지 않는다
중국 내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개혁파 인사들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개혁은 ‘유하오유콰이’ 전략을 추구하면서 왜 정치체제 개혁은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한다. 후진타오가 이번 당대회 보고를 통해 우려를 표명한 사회적 빈부 격차와 지역 격차, 관료들의 부패 등은 본질적으로 정치체제 개혁과 당내 민주화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오는 부메랑이라고들 말한다. 일본의 은 10월24일치 중국 당대회 관련 기사 마지막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후진타오를 진정으로 위협하고 있는 요인은 장쩌민 파벌로부터의 위협이 아니라 사회적·지역적 격차로 좌절하고 있는 중국 인민들과 정치적 부패 같은 것들이다.” 집권 2기를 맞는 후진타오 주석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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