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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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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자들의 분노를 두려워하라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주요 쌀 수출국이던 버마는 식량 원조국으로… 천연자원 풍부한 나라 국민들의 절대 빈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시위가 이어질 때는 세계가 버마(현 미얀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군인들은 밤에만 출몰한다. 시위 당시 찍은 비디오에서 시위대에 박수를 쳤거나, 물을 건네줬거나, 승려들의 행렬이 지나갈 때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던 사람들을 골라내 붙잡아가고 있다.”

시위가 잦아든 지금이 더 무섭다

셰다곤 탑을 뒤흔들던 성난 함성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군홧발에 짓밟힌 랑군(현 양곤)의 거리는 열대의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얼어붙은 모습이다. 영국 일간 는 10월11일치에서 “랑군 시민들은 시위 진압에 나선 군인들이 총질을 해대던 때보다 시위가 잦아든 지금 더욱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그 뒤안길에서 굶주림이 소리 없이 가난한 이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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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시작된 초기부터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 구호단체들은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군부가 이동제한 조처를 내리면서, 식량 배급 차량마저 발이 묶인 탓이다. 조셋 시런 WFP 사무총장이 시위 초기인 지난 9월 말 일찌감치 “50만 명에 이르는 극빈층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이동제한을 풀어달라”고 군부 쪽에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버마는 애당초 식량원조가 필요 없는 나라였다.” 토니 밴버리 세계식량기구 아시아 담당 국장은 지난 10월3일 〈AF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한때 버마는 동남아의 주요 쌀 수출국 중 하나였으며, 앞으로 다시 타이·베트남과 함께 쌀 수출국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현재로선 군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버마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식량기구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5살 이하 버마 어린이 3명 중 1명가량이 영양실조 상태다.

빛나는 티크 목재와 전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루비,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대국 버마의 국민은 극도로 가난하다. 유엔 등 국제기구가 내놓은 최신 자료를 보면, 버마 전체 국민 가운데 약 36%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버마의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생산해내는 마그웨이 지역의 소도시 파코쿠는 그 전형이다. 은 10월4일 현지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 관계자의 말을 따 “파코쿠 인근 80개 마을에서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태어난 어린이는 모두 312명으로 이 가운데 11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 일대 전체 인구가 4798명임을 감안할 때, 유아 사망률은 하루 평균 1만명당 2명에 이른다는 게 의 분석이다.

행진이 시작된 파코쿠의 비극

인도지원 단체들은 충분한 식량이 없는 상황에서, 유아 사망률이 하루 평균 1만명당 2명을 넘어서는 상황을 ‘기근’이라고 부른다. 굶주림은 전염병을 부른다. 지난해 버마에선 적어도 3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뎅기열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9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승려들의 행진이 시작된 곳이 파코쿠인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게다.

버마 군부는 지난 2월 갑자기 쌀 값을 2배 올렸다. 8월 중순 들어 군부는 이번엔 석유 값을 2배, 천연가스 값을 5배 올렸다. 이로 인해 한 달여 만에 쌀 값이 다시 3배가량 폭등했다.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계기였다. 민주주의가 곧 밥을 의미하는 한, 굶주린 버마 민중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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