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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개 드는 이라크 3분할론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점령 초기가 장악 위한 것이라면 지금은 ‘출구 전략’… 미 상원 결의안 통과시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끝없는 유혈사태도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이라크에서 전염병이 나돌고 있다. 콜레라다. 유엔 인도지원청이 운영하는 〈IRIN뉴스〉는 10월7일 “이라크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방제 노력에도 콜레라가 이라크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이미 이라크 전 국토의 절반가량에서 콜레라 환자가 발견됐으며, 국경 넘어 이란으로까지 전염 지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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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재건 무색한 콜레라

WHO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8월 중순 이후 이라크에서만 모두 3315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15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앞서 10월6일 이란 은 “이란에서만 이미 43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견됐다”며 “이들 환자 대부분은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 거주자”라고 전했다.

콜레라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오염된 음식물이나 식수 섭취를 금하는 것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가 매달 펴내는 ‘이라크 통계지표’를 보면,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 이전엔 이라크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1290만 명이 음용수를 공급받았다. 현재 이라크에서 마시기에 적당한 음용수를 공급받는 인구는 970여만 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전후 재건·복구’가 무색하다.

“난민 상당수가 설사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의료진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주엔 같은 캠프에서 생활하던 남성 2명이 콜레라 환자로 판명돼 바그다드의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유혈을 피해 정든 땅을 떠나 이란·시리아·요르단 국경지역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라크 피난민들은 콜레라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시리아 국경지역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캠프에 머물고 있는 이라크 난민 하이파 이지딘(36)은 〈IRIN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생활환경이 비위생적인데다, 화장실은 주거지 바로 곁에 붙어 있다”며 “배급받은 채소나 콩 따위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먹기 때문에 콜레라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말했다. 비극이 비극을 낳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을까?

낡은 해법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라크 3분할론’이다. 미 〈ABC방송〉은 지난 9월26일 “이라크 국토를 3개 자치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도록 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초당적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고 전했다. 이날 미 상원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조 바이든 의원(민주·델라웨어주)과 샘 브라운백 의원(공화·캔사스주)이 내놓은 ‘바이든-브라운백 수정안’을 찬성 75표 대 반대 23표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찬성표를 던졌고, 조지 부시 행정부는 “유혈사태만 증폭시킬 뿐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일단 반대 의사를 내놨다.

결의안 내용의 뼈대는 별반 새로울 게 없다. 남부 시아파와 중부 수니파, 북부 쿠르드족 등 이라크를 3개 자치지역으로 분할하고, 수도 바그다드에 느슨한 연방정부를 세워 국경과 원유자원 통제권을 이에 귀속시키자는 게다. 이런 방안은 이라크 침공 초기부터 꾸준히 거론돼온 바 있다. 지난 2003년 11월25일 는 국무부와 국방부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자사 칼럼니스트를 지낸 레슬리 겔브 미 외교협회(CFR) 회장(현 명예회장)의 기고문을 실었다. 겔브는 당시 기고문에서 “이라크를 3개 지역으로 분할하고,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지역에 미국의 병력과 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국민은 반대가 압도적

겔브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미국의 침공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던 남부 시아파와 후세인 정권 축출에 적극 가담한 북부 쿠르드족 지역을 기반으로 수니파가 다수인 중부 지역을 포위하는 전략이다. 이는 당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저항세력을 조기에 뿌리뽑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부활한 ‘3분할론’의 목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점령 초기 ‘3분할론’을 꺼내든 것이 이라크를 효과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3분할론’은 일종의 ‘출구 전략’이란 성격이 강하다. 바이든 의원도 상원 표결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를 3분할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고, 안정적인 이라크를 뒤로한 채 미군 병사들을 귀국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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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현지 여론은 어떨까? 영국 〈BBC방송〉 등이 지난 8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라크 국민 62%가 3분할론에 반대하고 단일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분할론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28%에 그쳤다. 분할론에 대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집중된 것은 이미 사실상 자치를 구가하고 있는 쿠르드 자치지역이었다.

“미 상원의 이라크 분할론이 되레 이라크인들을 단결시키고 있다.” 아랍권 권위지인 의 야유가 아니어도, 이라크 정치권에선 오랜만에 단일 대오가 형성되고 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미 상원의 결의안 통과 직후 관영 에 출연해 “미 의회는 분할론을 주장할 게 아니라, 이라크의 통합과 주권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이라크 3분할론은 이라크뿐 아니라 중동 전역에 재난을 부를 뿐”이라고 비판했다.

시아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시스타니의 대변인 격인 압둘 마흐디 알카르발라에이는 “3분할론이 현 이라크의 혼란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분열은 이라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 종교·문화단체와 공직자들은 이라크를 종족·종파로 갈라놓으려는 시도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미 성향이 강한 수니파 조직인 ‘무슬림학자협회’도 비난 성명을 내어 “연방제란 미명 아래 이라크를 분열시키는 것은 결국 부시 행정부 내 특정 세력과 시오니스트 로비세력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수단일 뿐”이라며 “국제사회와 이슬람 세계는 이에 결연히 맞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던 수니와 시아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다.

대통령 ‘찬성’, 고립 자초하나

문제는 쿠르드족이다. 미 상원이 결의안을 통과시킨 다음날인 지난 9월28일 쿠르드 자치정부는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어 “쿠르디스탄 주민들은 미 상원이 연방제를 근간으로 이라크를 재건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쿠르드 정부는 이어 “이번 결의안은 이라크 헌법의 근간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연방제는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는 이라크의 현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또 10월3일 성명을 내어 “미 상원의 결의안에 대한 마수드 바르자니 자치정부 대통령이 분명한 지지 입장을 밝힌 이후 비난과 협박이 이어졌다”며 “연방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위해 제 정당·사회단체를 자치정부 수도인 에르빌로 초청해 거국적 토론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쿠르드족 출신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도 10월7일 “미 상원의 결의안에 찬성한다”고 못박았다. ‘고립’을 자초하는 태도가 위태롭다.

“이라크 정책에 최선은 없다. 남은 건 차악과 최악뿐이다.” 인터넷 대안매체 〈IPS뉴스〉는 10월5일 ‘3개의 이라크는 1개보다 못한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수니와 시아로 갈려 총질을 해대던 이라크에 새로운 분열의 씨앗이 뿌려질 것인가? 이라크 3분할론이 차악에 가까울지, 최악에 가까울지는 곧 밝혀질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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