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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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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등록 2001-03-27 00:00 수정 2020-05-02 04:21

별 신경쓰지 않던 브라질에도 영어학습 열풍 상륙… 조기교육, 어학연수 등 갈수록 활성화

한 브라질 아가씨가 미국 남자를 만나 눈과 마음이 맞아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됐다. 사랑의 행위가 끝나고 미국 남자가 말했다. “아이 러브 유. 두 유 러브 미?” 영어의 러브 동사를 포르투갈어의 라바(lavar- 씻는다는 뜻) 동사와 혼동한 이 아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거 없어. 각자 자기 거 씻기로 해.”

영어에 약한 서민들의 모습을 소재로 한 이런 농담이 브라질에는 꽤 많다. 소수의 특권층과 다수의 혜택받지 못한 대중이 어울려 사는 브라질에서는 사람들의 외국어 실력도 편차가 크다.

‘하우 머치’도 모르던 나라가…

포르투갈어와 영어는 문법 구조가 비슷하고 어휘 중에서 60%의 어원이 같다. 한국 사람들이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0년을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했는데도 입 한번 못 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과는 달리 브라질 사람들에게 영어는 비교적 수월하게 익힐 수 있는 외국어이다. 실제로 초·중학교 시절부터 사설 영어학원에서 계속 배웠다면 영어를 꽤 유창하게 말하는 실력이 되고 어른이 된 뒤에라도 교습과정이 잘돼 있는 ‘인텐시브 코스’를 2년 정도 다니면 비즈니스에 필요한 영어를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사람들 다음으로 브라질 사람들이 영어를 쉽게 배운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당한 수준의 영어 수업료를 지불할 여건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렇지 못한 일반 서민들은 아주 기본적인 영어 단어 지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기차역’, ‘버스정거장’, ‘공항’ 등의 영어 단어를 대고 길 물어보는 정도야 되겠지 하면서 여행을 갔다가는 큰 고생 하는 곳이 브라질이다. 필자가 브라질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외국인 한명이 길거리 상점에 들어와서 커피 한잔이 얼마냐고 묻는 장면을 봤다. 커피까지는 손으로 가리키니까 이야기가 통했는데 얼마냐고 아무리 ‘하우 머치’를 외쳐도 점원이 이해하지 못했다. 가게 안에 있던 대여섯명의 손님들까지 모여들어 이 외국인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알아내기 위해 골똘히 머리를 맞댔다. 그 외국인 아가씨가 처절하게 몇번 더 “하우 머치”를 외치자 한명이 마침내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아, 커피가 아니고 마치(브라질 차의 한 종류)를 달라는 거야!”

같은 남아메리카의 옆나라인 아르헨티나나 콜롬비아와 비교해 봐도 브라질에서는 영어가 훨씬 안 통한다. 그 이유로는 지난 수십년간 교과과정에서 외국어 수업이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98년에야 비로소 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 1개 외국어를 중등과정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필수과목으로 포함시켰다. 브라질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쳐주는 상파울루대학은 원래 프랑스 선교사들이 세운 곳이다. 상파울루대학이 자리잡기까지는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해서 불어권 학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오랫동안 브라질 대학사회에서 필수로 인정하던 외국어는 프랑스어였다. 대학원 입학 시험 과목에 영어가 포함된 것은 10여년 안팎의 일이었다.

취업의 가장 확실한 열쇠

그러나 이제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영어 공부에 쏟는 열의는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한해 동안에만 8만명의 브라질 젊은이들이 단기 외국어 연수를 떠났다. 보통 방학기간 안에 1∼2개월 단기 코스로 가는데 미국으로 제일 많이 가고 다음으로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도 많이 떠난다. 요즘은 정통 영국식 영어를 배울 수 있는데다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학비와 체제비가 싸다는 이유로 뉴질랜드 연수가 인기가 좋다.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은 디즈니랜드나 라스베이거스 호텔 등에서 주당 30시간 근무에 평균 190달러를 받는 아르바이트직 취업을 선호하는데, 기본적인 영어 회화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브라질인들은 타고난 조건이 영어를 배우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1∼2개월 정도의 단기 코스만 거쳐도 큰 효과를 얻는다. 1개월의 영어권 지역 연수는 국내에서 8개월 정도의 영어강좌 수강과 맞먹는다고 말한다. 35개 미국의 영어 교육과정과 영국의 28개 언어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 통계를 보면 영국에 언어 연수차 오는 외국인 중 일본인이 18%로 가장 많고 다음이 브라질로 10%, 8%가 이탈리아, 7%가 프랑스와 독일인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일본인이 전체 외국인 영어연수자의 30%로 역시 가장 많고, 다음이 한국인으로 19%, 7%가 대만에서 오는 사람들이며 브라질 사람들은 네 번째로 많은 4%로 나타났다.

매년 18살 이상 성인 중에서 전국적으로 70만명이 영어 학원에 등록한다는 통계가 있다.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남보다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는 열쇠는, 외국인 사업 파트너를 만나 영어로 의견을 제시하고 협상을 하고 식사 자리에서 유쾌한 대화로 분위기도 즐겁게 이끌어나갈 수준의 영어 실력이라는 것을 이제는 브라질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고등교육 졸업장과 외국어 실력을 갖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차이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은 3%로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 비해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이들의 실업률은 13%로 브라질 전체평균의 두배가 넘는다. 박사학위나 MBA가 있는 취업자의 월급은 9천달러,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의 평균 월급은 4천달러인 데 비해 고등학교 미만 학력 소지자의 평균 월급은 5분의 1 수준인 900달러인 것으로 지리통계원(IBGE)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나타나 있다.

저학력 비숙련 노동자를 흡수하던 건설업종에서도 이제는 좀더 복잡한 기계 설명서를 이해하는 수준의 노동자들을 원하고 있다. 호텔 체인인 아코르에서는 룸메이드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더이상 손짓 발짓으로 외국 손님을 맞으면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어찌됐든 영어를 모르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점점 알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성인을 위한 영어 학원에서는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구사해야 하는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이는 70년대에 상파울루가톨릭대학의 아우바 셀라니 언어학 교수가 개발한 혁신적인 영어 교습법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랍이나 터키인 이민들이 많이 이주해오던 시절인 50년대, 유럽에서 짧은 시간 안에 외국인 이주민들이 영어를 익히도록 개발한 방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이전까지 영어는 학계에서 외국 학문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학자들의 필요성에 맞춰서 학습되고 교육됐다. 이제 영어학습의 목적은 업무에 관련된 문서를 이해하고 실용적인 토론 능력을 배양하는 데 맞춰져 있다. 성인 영어 코스에서는 초보자가 4개월 안에 자신의 직업이나 일상과 관련된 상황에서 아주 기본적인 어휘를 사용해서라도 문장을 만든다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 영어를 지도한다.

영어 학원 시장도 급속히 성장

브라질의 영어 학원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지난 91년에 전국에 1419개였던 영어 학원 수는 98년에는 두배에 가까운 3150개로 늘어났다. 학원과 개인 교습, 학교의 부설 강좌 등을 통틀어서 매년 2천만명이 영어 수업을 듣는다는 수치도 있다. 리오시에 본부를 둔 CCAA는 전국에 700개 지부를, 상파울루에서 가장 큰 영어 학원인 피스크는 566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세워진 지 64년째로 가장 오래된 영어 학원 중 하나인 쿨투라 잉글레사에서는 전국 40개 학원에 12만명의 학생을 받고 있는데 최근 10년 사이 매년 10%씩 수강생이 증가했다고 한다.

브라질 영어강사들의 평가에 따르면 브라질 사람들의 영어 실력은 “발음은 좋은 편이고 어휘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런지 어휘가 빈약하고 아시아 계통 학생들보다도 문법이 엉성한 편”이라는 것이 오랜 영어 지도 경험을 가진 한 교사의 진단이다. 반면 포르투갈어는 같은 라틴계 언어인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보다 자음의 종류가 풍부한 까닭으로 영어 발음을 더 부드럽게 구사한다는 평이다. 강사들은 “외국인 발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불어권이나 스페인어권 학생들처럼 금방 정체가 파악되지 않을 만큼 잘 흉내낸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외국어를 가장 잘 배우는 길이 조기교육이라는 것은 여기서도 상식으로 통한다. 아예 국어인 포르투갈어의 알파벳을 익히면서 동시에 영어를 가르치는 이중언어 초등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중언어 학교나 어린이들이 다니는 영어 학원에서는 할로윈 행사를 브라질의 전통적인 어린이 축제인 ‘페스타 주니나’(6월 축제) 이상으로 요란하게 치른다.

2월 카니발과 삼바 축제의 근원지인 리오 빈민촌의 가난한 흑인 어린이들도 미국식 랩송을 흥얼거린다. 매년 수만명의 대학생들이 방학중 단기 과정이나 1년 과정의 해외 영어연수를 떠나고 상류층 자녀들은 미국에서 대학원 학위를 받아 돌아와서는 유망한 직장의 좋은 직위에 앉아서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한다. 영어는 단지 제2의 언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영어와 미국식 문화는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에도 점차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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