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못지 않은 인기의 사이클 경기, 우승자 콘타도르마저도 의심받는 금지 약물 파동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처음 유럽에 와서 ‘투르 드 프랑스’를 TV 중계로 보았을 때, 이웃에 사는 벨기에인 뒤 보엑(70)은 이렇게 말했다. “투르 드 프랑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적어도 10년은 꾸준히 봐야 할걸.” 투르 드 프랑스는 복잡한 룰과 재미없는 경기 진행으로 외지인들이 즐기기에는 쉽지 않은 경기다. 3주간 내내 뛰는 마라톤 경기를 보는 느낌과 같다. 하지만 유럽에서 ‘투르 드 프랑스’의 인기는 축구의 챔피언스리그 못지않다. 뒤 보엑은 그 이유를 “체력과 인내로 승부하는 경기가 순간의 절정과 환희를 만끽하는 경기 못지않게 매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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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무슨 색 경기복을 입었나
경기의 룰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고 누가 먼저 목표한 지점에 도착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만 복잡한 세부 규정이 있다. 경기는 하루에 하나씩 치르는데, 이를 ‘스테이지’라고 부른다. 스테이지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정되지만, 보통은 20 스테이지로 이뤄진다. 총주행거리는 평지 주행과 산악 주행을 합해 3천~4천km에 이른다. 가장 힘들고 인내가 필요한 산악 주행은 스테이지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모은다. 유명한 산악 코스로는 해발 2114m의 ‘콜 드 투르말레’(피레네 산맥), 해발 1909m의 ‘몽 벵투’(알프스), 해발 2645m의 ‘콜 드 갈리비에’(알프스) 등을 꼽는다.
경기 참가자는 매 스테이지의 경기 결과를 기록하고 추후에 모든 기록을 합산한다. 종합우승은 합산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매 스테이지에서 꾸준한 기록을 내는 선수가 기복이 심한 선수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사이클 경기의 색다른 재미는 선수들이 입고 있는 경기복의 색깔을 보는 것이다. 선수들마다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 등 각기 다른 색의 경기복을 입고 있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즉, 각 스테이지의 성적에 따라 다음 스테이지에서 다른 경기복을 입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란색 경기복은 누적 성적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 초록색 경기복은 각 스테이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선수에게, 붉은색 경기복은 산악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에게 주는 영예다. 올해에는 알베르토 콘타도르(스페인)가 노란색, 마우리지오 솔레(콜롬비아)가 빨간색, 톰 분넨(벨기에)이 초록색 경기복의 최종 주인이 됐다. 지금은 각종 기업들이 스폰서로 나서 팀을 운영하고 선수들을 후원하지만 여전히 선수들의 국적이 중요시된다. 그래서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바르셀로나의 영예로 남지만, 콘타도르의 우승은 소속 팀인 디스커버리채널이 아니라 스페인의 우승으로 기억된다.
선수들의 약물 복용 의혹은 투르 드 프랑스가 처음 열린 1903년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잡음이 많았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주요 일간지들에는 실제 경기 내용보다 오히려 약물 스캔들 관련 기사가 더 많을 정도였다. 산악 부문 우승 후보였던 패트릭 샌키비치(독일)가 테스토스테론 양성반응으로 중도 탈락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서 알렉산더 비노코로프(카자흐스탄)가 도핑 테스트에서 걸려 실격 처리됐고, 그의 소속 팀인 아트타나는 기권을 선언했다.
돌연 경기 포기와 팀 해고
가장 큰 충격은 마이클 라스무센(덴마크)의 약물 복용 의혹이었다. 라스무센은 이번 대회 ‘8 스테이지’와 ‘16 스테이지’에서 1위를 한 강력한 종합우승 후보였다. 또한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2위인 알베르토 콘타도르를 총합계에서 3분10초나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7월25일 저녁, 그는 돌연 소속 팀 로바뱅크로부터 경기 포기는 물론, 팀에서 해고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발단은 사이클 해설가인 다비드 카사니가 라스무센을 이탈리아의 돌로미티에서 보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라스무센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6월 자신이 멕시코에 있기 때문에 주최 쪽의 사전 도핑 테스트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실은 멕시코가 아닌 이탈리아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그가 도핑 테스트를 고의로 회피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위업을 이룬 랜스 암스트롱(미국)도 이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탈리아 의사인 미셀 페라리는 암스트롱이 의사 처방 없이 몇 가지 약물을 사용한 혐의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의 전직 경기 보조원은 암스트롱이 안드로스테닌이란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여름엔 프랑스의 가 ‘암스트롱은 거짓말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암스트롱은 1999년 대회에서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을 복용했지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미 지난 일이 돼 파문은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암스트롱의 명성에 크게 흠이 생겼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인 콘타도르 역시 2006년에는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후에 결백한 것으로 밝혀짐)돼 경기 출전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게다가 7월30일 독일인 의사 베르너 프랑케는 “그가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콘타도르는 “나는 운 나쁜 팀에 있으면서 함께 연루된 것에 불과하다”며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그를 곱게 보지 않고 있다.
사이클 선수에게서 약물이 자주 검출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자체가 지구력과 근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힘든 운동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초기에는 알코올이나 에테르 등 마취제가 의혹의 대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암페타민 같은 각성제에서부터 EPO 같은 호르몬제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한다. 게다가 사이클 선수는 고된 경기로 누구나 한두 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약물이 검출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에 많이 검출되는 EPO는 적혈구 수를 늘려서 빈혈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약물 의혹을 받았을 때 암스트롱은 “암 치료 과정에서 이 약물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코코르테스코로이드 호르몬이 검출돼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자전거를 오래 타면서 생긴 허벅지 안쪽의 종기를 제거하는 데 사용한 크림에 이것이 포함된 것 같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금지 약물이 치료를 위해 사용했는지, 운동 효과 개선을 위해 사용했는지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치료인가, 운동 효과 개선인가
운동 선수에게 금지 약물 복용은 치명적인 오점이 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구제되는 것도 다반사다. 법은 엄하지만 현실에서는 관대한 유럽인들의 정서도 그중 한 이유다. 어느 때보다 금지 약물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올해의 투르 드 프랑스를 결산하며 7월30일치 벨기에 일간 는 “누가 그에게 (도핑 검사를 위해) 피를 달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신문은 “(비록 우승은 했지만) 콘타도르를 존경하는 이는 없다”고 밝혀 여전히 그가 약물 복용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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