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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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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웃는다

등록 2007-06-2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은가라 루콜레 난민캠프, 보름치 식량 배급받는 날</font>

아프리카 난민캠프 르포 ③ (마지막회) 탄자니아

▣ 은가라(탄자니아)=사진·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5월22일 오전 탄자니아 북서부 은가라의 루콜레 난민캠프가 이른 아침부터 들썩인다. 캠프 들머리에 자리한 세계식량기구(WFP) 창고 주변은 일찌감치 사람의 물결로 북적인다. 유엔난민기구(UNHCR) 표식이 찍힌 하늘색 양동이며, 노끈으로 얼기설기 엮은 망태, 낡은 포대 따위를 손에 들고 난민들이 나른하게 기다리고 선 것은 한 달에 두 차례, 2주에 한 번꼴로 이뤄지는 식량 배급이다.

언제나 받기만 하는 이들, 건네주는 손길 아무리 따뜻해도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 떨쳐내기 어렵다. 벌써 몇 해짼가? 삶과 죽음의 문턱 넘어 당도한 낯선 땅, 안도의 한숨이 끝 모를 기다림의 탄식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하릴없는 난민살이, ‘배급’이란 생명 유지 장치에 기대어 속절없이 버티고 있다.

오전 9시. 이윽고 배급소 문이 열리고, 지루한 기다림을 마감한 이들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진다. 주민 대표로 선발된 이들은 목에 표식을 걸고 잰걸음을 놀린다. 밀가루와 콩, 옥수수 가루와 식용유 등 보름치 식량을 골목 단위로 배정받아 공동 분배 장소로 옮기는 게 이들의 임무다. 50kg짜리 포대를 둘러업은 어깨가 깃털같이 가볍다. 날랜 발걸음에 가속이 붙는 사이, 배급 목록을 챙기는 탄자니아 적십자사 요원들의 숨소리도 가빠진다.

배급소 바깥 마당에 차려진 간이 분배소에선 ‘저울질’이 한창이다. 가족 수에 따라 밀가루 됫박 수가 정해지고, 깡통에서 식용유를 따르는 표정이 진지하다. 성급한 아이들은 벌써부터 분유를 아무렇게나 물에 개어 입으로 털어넣고, 시뻘건 흙바닥에 떨어진 콩을 주워 모으는 손길이 살뜰하다. 1인당 하루 1745kcal, 허기는 메울 만하다. 한국영양학회는 지난 2005년 10월 내놓은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에서 성인 남성이 하루 필요로 하는 열량을 2400kcal라고 밝혔다.

‘U.S.A.’ 밀가루 포대에도, 식용유 깡통에도 배급식량의 국적이 선명히 박혀 있다. 받는 데 길들여지는 게 두려운 이들은 꼭 제 몫만큼의 ‘권리’만 챙기고 있다. 배급소 들머리엔 간이 좌판이 차려지고, 불룩해진 포대만큼 여유가 생긴 이들이 담배며 건전지 따위를 만지작거린다. 옹색하기 짝이 없는 난민살이, 오늘 하루쯤은 웃음을 흘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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