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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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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판 ‘테러와의 전쟁’의 실패

등록 2007-06-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침공 후 발목 묶이고 오랜 갈등 불씨 붙여

아프리카 난민캠프 르포 ① 에티오피아

▣ 아디스아바바·지지가(에티오피아)=글·사진 정인환 기자inhwan@hani.co.kr

이슬람 세력의 권력 장악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소말리아를 전격 침공한 이후, 에티오피아가 예상치 못한 역풍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다. 섣부른 침공 결정은 대량난민 사태를 부르며 에티오피아 정부의 부담을 키우는 한편, 동부 소말리주 일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낳고 있다. 휴화산처럼 숨어 있던 오랜 갈등의 불씨에 새로 불을 댕긴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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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다. 하지만 조심하라”

침공 초기 단기간에 이슬람법정연대(ICC) 축출에 성공하면서 기세를 올린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조기 철군’을 공언했지만, ‘치안 공백’을 우려한 국제사회의 만류로 지금껏 발목이 묶인 상태다. 여기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선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견된 우간다군을 겨냥한 공세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래저래 ‘자충수’였다.

“안전하다. 하지만 조심하라.” 지난 5월13일 오후 케브리베야 난민캠프 취재를 위해 에티오피아 동부 지지가로 향하기 앞서 방문한 유엔난민기구(UNHCR) 에티오피아 사무소에서 들은 경고다. “안전하다면서 뭘 조심해야 하는 거냐”는 물음에 벨라이 게자헨 난민기구 안전 담당관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지난 4월24일 지지가에서 남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오가덴 지역 아볼레란 곳에서 벌어진 교전사태를 입에 올렸다.

당시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그날 새벽 5시께 무장괴한들이 아볼레 외곽에서 중국 업체가 시추작업을 벌이고 있는 유전지대를 급습했다. 이들은 현장 경비를 맡고 있던 에티오피아군 1개 대대와 1시간 남짓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에티오피아 당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자 9명을 포함해 모두 7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게자헨 담당관은 “에티오피아군 전사자를 포함해 실제 사망자 규모는 1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유전을 습격한 무장괴한들은 오가덴민족해방전선(ONLF·이하 해방전선) 소속이다. 이 단체의 역사는 1977~78년 치열하게 이어진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국경분쟁(오가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부소말리아해방전선(WSLF)을 필두로 한 오가덴 지역(현 소말리주 일대) 무장세력은 소말리아군과 함께 에티오피아군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전쟁 전까지 소말리아를 지원했던 러시아는 에티오피아군을,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던 미국은 소말리아군을 각각 물밑에서 지원했다. ‘작은 냉전’이라 부를 만하다.

소말리아군의 철수와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막을 내리자, 오가덴 무장세력은 에티오피아군의 탄압을 피해 숨고르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조직 분화가 이뤄졌다. 소말리아 정부의 직접 지원이 끊기면서 최대 무장세력이던 서부소말리아해방전선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고, 1984년 젊은 그룹이 중심이 돼 창설한 해방전선이 그 자리를 대체해갔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탄압과 회유가 해방전선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장 위험한 무장세력은 에티오피아군?

지난 2005년 에티오피아 정부는 해방전선에 평화회담을 제안했지만, 해방전선이 ‘제3국 개최’와 ‘국제사회 중재’ 요구를 거부하면서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윽고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난해 2~7월 강력한 해방전선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이미 소말리주에 배치돼 있던 1만5천여 병력에 더해 2만5천여 병력이 보강 투입됐고, 전투기·장갑차·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규모였다. 이 무렵 국경 너머 소말리아에선 이슬람법정연대가 유엔과 미국 등 서방국가가 지원하는 과도연방정부(TFG·이하 과도정부)를 제치고 수도 모가디슈 일대를 장악해 들어간다. 절묘한 시점의 일치다. 해방전선이 이들과 연대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는 셈이니, 에티오피아 정부로선 다급했을 터다.

하지만 당시 작전은 인명피해만 낸 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작 5천~7천 명 규모로 추정되는 해방전선을 격퇴시키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소말리아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인구가 절대다수인 오가덴 지역에선 아디스아바바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 고산지대 주민들(하이랜더)과는 종족과 언어는 물론 정체성과 종교까지 판이하다. 주민 대부분이 전통적으로 에티오피아 연방정부보단 소말리아에 호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에티오피아군의 무차별 공세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우군까지 등을 돌리게 됐다. 지난 4월24일 아볼레 교전사태 직후에도 현지로 급파된 에티오피아군이 사건 현장 주변에서 소말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보복폭행을 저질렀다는 흉흉한 소문이 지지가 시내를 떠돌고 있다. 해방전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은 5월5일치 기사에서 “에티오피아군은 교전 사건 현장 부근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모두 무차별 총격을 퍼부어 다수가 숨졌으며, 사망한 이들의 주검을 안장하는 것조차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황 때문인지 현지에서 만난 한 유엔 관계자는 “가장 위험한 무장세력이 누구냐”는 물음에 “에티오피아군”(EDF)이라는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안전’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지지가 도착 첫날부터 자명해졌다. 지난 5월14일 저녁 8시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사이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튿날에야 유엔 관계자로부터 “시내 중심가 경찰서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밤 자정께에도 시내 또 다른 장소에서 수류탄 투척 사건이 벌어졌단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이틀 뒤인 5월16일 오전 소말리 주정부 청사에서 만난 후세인 카심 주지사 정책보좌관은 “상황은 끝났으며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는 “최근 오가덴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에리트레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의 소행”이라며 “적절한 군사적 대처를 해나가고 있으며, 범법자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여유’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데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지난 5월28일 지지가 시내 중심가 혁명광장 부근의 한 경기장에서 열린 주정부 주최 행사에서 연설을 하던 압둘라히 하산 소말리 주지사를 겨냥한 수류탄 공격이 벌어진 탓이다. 이날 공격으로 하산 주지사는 중상을 입었고, 부근에 있던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사건 직후 경찰이 발포를 시작하면서 행사 참석자들이 일시에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6명이 인파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고 은 전했다.

‘여유’롭던 주지사를 겨냥한 공격

그러는 사이 국경 너머 소말리아에선 에티오피아군과 마찬가지로 ‘점령군’ 소릴 듣던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을 겨냥한 공세가 불을 뿜으며,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 5월16일 모가디슈 북부에서 우간다군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도로매설 폭탄공격은 바그다드와 카불의 음습한 기운이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아프리카로 건너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후세인 모함메드 마흐무드 과도정부 대변인이 우간다군 공격의 배후를 “모가디슈에 남아 있던 알카에다 세력이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을 등에 업고 기세 좋게 모가디슈로 진격해 들어갔던 에티오피아군은 기어이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리카로 확산시키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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