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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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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의 ‘불안한 평화’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교전 끝났다”는 과도정부도, 아프리카연합군도 믿을 수 없는 소말리아 피난민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불안한 평화’가 찾아왔다. 총질이 멈췄으니 ‘평화’를 입에 올릴 수 있겠지만, 언제든 격렬한 전투가 재연될 수 있으니 ‘불안’을 떨쳐내기 어렵다. 내전으로 점철된 지난 16년 세월 동안 소말리아에선 늘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온 평화가 허망하게 사라지곤 했다.

장갑차 앞세운 우간다군의 도심 진입

우간다군 1200명으로 구성된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이 5월1일 마침내 모가디슈 시내로 진입했다. 지난 3월 소말리아에 도착한 이후 줄곧 도심 외곽에 주둔해온 우간다군이 도심에 들어선 건 이날이 처음이다. 은 이날 “장갑차 30대의 호송을 받은 우간다군이 트럭에 나눠타고 모가디슈 도심으로 들어섰다”며 “이들은 소말리아 과도 연방정부(TFG·이하 과도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에티오피아군에게서 치안유지권을 넘겨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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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군이 시 외곽 공항 주변에 머물고 있던 지난 한 달여 동안 모가디슈 도심에선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 몰락과 함께 시작된 내전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1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4300여 명이 다쳤다고 유엔 인도지원청은 추정한다. 우간다군은 4월28일 과도정부가 “교전사태가 끝났다”고 선언한 뒤에야 도심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28일 미국을 등에 업은 에티오피아군의 압도적 공세에 눌린 이슬람법정연대(ICC·이하 이슬람연대)가 모가디슈에서 퇴각하면서 비극은 싹텄다. 오랜 내전의 혼란을 뚫고 탄탄한 민심을 기반으로 지난해 6월5일 이슬람연대가 모가디슈 장악을 선포한 이래 유지돼온 치안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곳곳에서 약탈이 자행됐고, 종족을 기반으로 한 군벌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졌고, 유엔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정부’인 과도정부는 이런 ‘권력 공백’ 사태를 메우는 데 역부족이었다.

에티오피아군의 ‘보호’ 아래 정국 장악을 노리던 과도정부는 지난 3월11일 “앞으로 30일 안에 저항세력을 잠재울 것”이라고 공언하고 나섰다. 복안은 ‘무장해제’였다. 그러나 한 세대 넘게 내전이 지속돼온 땅에서 강제력을 동원한 무장해제는 애초부터 어림없는 짓이었다. 에티오피아군과 과도정부군의 무장해제 움직임은 즉각 거센 반발을 불렀다. 특히 모가디슈 주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하위에 부족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강제적 무장 해제 vs 극렬한 무장 저항

이슬람연대가 모가디슈를 장악했을 당시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던 하위에족 사이에선 또 다른 유력 부족인 다로드족 출신인 압둘라히 유수프 과도정부 대통령이 자신들을 탄압할 것이란 우려가 만연해 있다. 근거 없는 억측도 아닌 것이,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해 1991년 축출될 때까지 철권을 휘둘렀던 다로드족 출신 독재자 시아드 바레 역시 집권 기간 동안 하위에족을 탄압했다. 이들이 에티오피아군의 지원 속에 다로드족이 주도하고 있는 과도정부를 ‘불법단체’로 보고, 강제 무장해제 움직임에 맞서 저항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이슬람연대 소속 무장대원들도 ‘인민저항전선’(PRM)으로 이름을 바꿔 조직을 정비하고 무장 저항에 나섰으니, 전투가 격렬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특히 기독교도가 다수인 에티오피아군의 주둔이 장기화하면서 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소말리아의 여론이 호의적일 수 없었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민심 이반은 한층 심해졌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모가디슈에서 퇴패하면서 힘을 잃었던 이슬람연대는 이후 이어진 혼란상으로 오히려 민심을 더욱 얻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혈폭력 사태가 불을 뿜으면서 이슬람연대가 모가디슈를 안정적으로 장악했던 지난해 하반기는 소말리아인들 사이에서 ‘황금기’로 여겨질 정도라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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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정부와 에티오피아군이 극렬 반발이 뻔한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무장해제에 나선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라 지난 4월5일 거국평화회담을 열기로 한 과도정부로선 회담에 앞서 어떻게든 반대세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이슬람연대를 배제한 채 평화회담을 열어 향후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에티오피아로선 소말리아에 자국군을 장기 주둔시킬 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 중요했을 게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소말리아 전역에 자국군 4만 명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이 가운데 1만 명은 모가디슈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의 ‘요청’으로 주둔 시한을 연장했지만, 에티오피아로선 이슬람연대라는 강력한 존재가 사라진 소말리아의 현 상황이라면 ‘만족할 만한 수준’일 터다.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가 여러 차례 아프리카연합이 파견한 평화유지군이 도착하는 대로 치안 유지권을 넘겨주고 철군할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강제 무장해제는 철군을 위한 마지막 수순인 셈이다.

에티오피아군 즉각 철수? 미국이 반대

하지만 파병을 약속한 아프리카연합 회원국 가운데 실제 병력은 파견한 나라는 친미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이끄는 우간다뿐이다. 부룬디와 가나, 나이지리아 등도 병력 파견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군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일찌감치 파병된 우간다군은 이미 에티오피아군과 마찬가지로 점령군으로 비쳐지고 있다. 에리트레아에 은신하고 있는 이슬람연대 지도부가 최근 성명을 통해 “에티오피아군과 아프리카연합군(우간다군)에 맞서 저항을 계속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1990년대 국경분쟁으로 에티오피아와 적대관계에 있는 에리트레아는 공개적으로 이슬람연대를 지원하는 유일한 국가다.

이슬람연대 축출 이후 소말리아가 파국으로 내리닫는 동안에도 과도정부에 대한 지지 방침을 굽히지 않았던 국제사회는 교전사태가 불을 뿜기 시작한 지난 4월3일에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회의를 열어 해법 모색에 나섰다. 하지만 회담 결과로 내놓은 것은 △과도정부 지지 △평화회담 개최 △거국정부 구성 등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당시 회담에서 유럽연합과 아랍 각국 대표단, 유엔 등은 에티오피아군의 즉각 철수와 이슬람연대의 참여를 보장하는 평화회담 개최를 강조하는 한편 무분별한 무장해제 움직임을 비판했지만, 미국의 반발에 밀려 구체적인 지적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가디슈의 거리에서 잠시 총성이 멈추자, 도시 외곽의 숲에서 숨어 지내던 일부 피난민들이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귀향을 택한 ‘과감한’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과도정부의 공언과 달리 교전사태가 끝났다고 믿는 이들도 거의 없다. 이슬람연대 지도부는 이미 “조직 정비와 전술 변화에 따른 일시적 퇴각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가디슈 주둔 우간다군 사령관 에드워드 와말라 중장도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축하할 때가 아니며, 시내에 아직도 저항세력이 잠복해 있다”고 말했다.

유엔 인도지원청이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월1일부터 4월27일까지 교전사태를 피해 모가디슈를 빠져나간 피난민은 모두 36만5천여 명에 이른다. 이는 모가디슈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대량난민 사태는 전염병 창궐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올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발생한 콜레라와 만성 수인성 질환은 소말리아 중남부 지역에서만 모두 1만7천여 건에 이르며, 이로 인한 사망자도 600여 명에 이른다. 무장 갈등은 손쉽게 인도적 재난으로 이어진다는 분쟁의 가혹한 법칙이 어김없이 들어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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