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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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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후세인 비밀경찰이 나았다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4년간의 점령, ‘기념비적 무지’ ‘지독한 아마추어리즘과 허세뿐인 오만’이 만들어낸 비극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기본적인 치안만 확보된다면 이라크인들은 평화롭게 공존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탈아파르는 잘 보여준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이라크에서 테러범들과 싸워 이기기 위한 핵심 전략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탈아파르가 증명하고 있다.”

152명 사망 347명 부상, 뒤집어진 신화

지난해 3월, 이라크 침공 3주년에 즈음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안정화’의 상징으로 탈아파르를 내세웠다. 이라크 북서부 니나와주에 속한 탈아파르에 사는 22만여 명의 절대다수는 투르크멘족이다. 이들의 절반가량은 수니파고, 나머지 절반가량은 시아파다. 서쪽 시리아 국경까지 불과 60km 떨어져 있어,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저항세력은 탈아파르를 교두보 삼아 국경을 넘나들며 공세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9월께 미군의 소탕작전이 불을 뿜었고, 저항이 주춤한 뒤에도 약 500명의 미군이 현지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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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5년 5월께 저항세력이 다시 공세를 강화하면서, 현지 지방정부는 통제력을 잃게 됐다. 그해 6월 저항세력 소탕작전이 재개됐지만, 거센 반격에 밀려 이라크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같은 해 9월 미군이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나선 뒤에야 무력 충돌이 잠잠해졌다. 잠깐씩 찾아온 안정기를 ‘성공’에 굶주린 부시 행정부는 ‘신화’로 만들어갔던 게다. 그러던 지난 3월 말 최악의 시나리오가 탈아파르에서 마침내 현실이 됐다.

지난 3월27일 탈아파르의 시아파 집단 거주지 인근 시장에서 강력한 트럭 폭탄공격이 벌어졌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수니파 저항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이라크 내무부의 공식 추산으로만 이날 사고로 152명이 숨지고 347명이 다쳤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이후 단일 사건으론 최악의 인명피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영국 는 4월11일치 기사에서 “폭탄공격이 벌어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라크 중앙정부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대부분 시아파로 채워진 현지 경찰이 수니파를 겨냥한 보복 학살극에 조직적으로 나선 것이다. 거리에서, 가택수색 과정에서 붙잡힌 수니파 남성과 소년들은 어김없이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 많게는 70여 명이 백주에 경찰에 의해 이런 식으로 ‘즉결처형’됐다. 한때 이라크 안정화의 전범으로 꼽혔던 탈아파르의 신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부패하고 비효율적이고 무능하고 타락한 새로운 정권으로 바뀌었다.” 이야드 알라위 전 이라크 총리의 조카이자 과도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알리 알라위는 최근 예일대 출판부를 통해 낸 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거대한 동상이 끌어내려진 지 4주년을 맞은 4월9일에 맞춰 발간된 500쪽 분량의 이 책에서 알라위는 미국의 점령정책을 ‘충격적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의 점령정책의 실패가 워낙 경악할 만한 수준이어서, 한때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던 평범한 이라크인들조차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이 4월9일 전한 책의 주요 내용을 보면, 알라위는 미국의 치명적 오류를 세 단계로 요약했다. 먼저 ‘기념비적 무지’의 단계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나서기 전까지 이라크 현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게다. 그는 “조금이라도 직관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사회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성공 스토리도 무수한 블랙홀을 가렸네

두 번째 단계는 ‘지독한 아마추어리즘과 허세뿐인 오만’이다. 폴 브레머 전 다국적군 임시행정처(CPA) 최고행정관이 이라크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을 추진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 기간을 일컫는다. 저항이 시작되던 초기 미군은 후세인 정권의 근간이라는 이유로 이라크 군을 해산해 수만 명의 무장한 실업자를 양산했다. 후세인 정권의 뼈대인 바트당 출신자들은 학교와 각급 정부기관에서 밀려났고, 이들 중 일부가 저항세력에 가담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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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에선 후세인 정권이 운영해온 국영기업의 급격한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오히려 후세인 정권에 부역하며 안락한 삶을 누려온 일부 기업인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는 폐단을 낳았다. 또 민심을 달랜다며 후세인 정권의 연료비 보조정책을 이어받아 휘발유 공급을 지속하면서 극심한 예산 낭비를 초래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정치적 측면에서 과도한 ‘탈바트당화’가 문제였다면, 경제적 측면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악순환의 다른 축을 이룬 게다.

전력과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한 전후 재건·복구 작업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은 이미 부시 행정부의 자체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다. 이를 두고 알라위는 “미국이 성공 스토리를 되풀이해 강조할 뿐, 그 아래 숨어 있는 무수한 블랙홀은 철저히 가려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미군정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보다, 후세인 정권의 비밀경찰이 관료사회의 부패를 막는 데 훨씬 큰 역할을 했다”며 “2007년이 시작됐을 때 이라크에 남은 친미파라곤 자기들의 편협한 이익에 부합하도록 권력을 주무르려는 자들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점령 4주년을 맞은 4월9일 이라크에선 중부 시아파 성지 쿠파와 나자프를 중심으로 수십만 시위대가 ‘미군 철수’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이날 시위는 지난 두 달 새 행방이 묘연한 시아파 강경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4월8일 “유혈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군에게 있으며, 점령을 끝장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라”는 내용의 성명을 낸 데 따른 것이다. 그는 미군을 ‘조국의 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날 현지발 기사에서 “검은 아바야 차림의 무슬림 여성들과 이라크 국기를 흔드는 남성들이 나자프 시내를 장악해버렸다”며 “도심으로 진출한 수만 명의 시위대는 미군 철수를 외쳤고, 일부는 성조기를 찢거나 짓밟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군 사망자도 배로 늘어나

아랍 위성방송 는 같은 날 “성지 쿠파에서 나자프로 이어지는 도로 4~5km는 시위행진에 나선 인파로 북적였으며, 무리 속에는 이라크 정규군복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사드르 쪽의 지원으로 당선된 이라크 의회 팔랄 하산 샨실 의원의 말을 따 “이 모든 인파가 미국의 점령에 반대하며, 미군 철수를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고 전했다. 사드르 진영은 275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의회에 32명의 의원을 진출시켰으며, 이라크 내각에도 6명의 각료를 진출시켰다.

이라크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날 새벽부터 24시간 동안 수도 바그다드에 전면 차량 통행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군의 화력 지원을 등에 업고 지난 2월14일부터 이어오고 있는 바그다그 치안확보 작전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일부 지역에서 종파 간 보복 공격이 주춤해졌지만, 차량 폭탄공격이 급격히 늘면서 전체 민간인 사상자 규모는 변함없이 많다. 지난 2월만 해도 무려 1100여 명이 차량 폭탄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3월 들어선 희생자가 783명으로 다소 줄었지만, 차량 폭탄공격 시도 건수는 오히려 108차례로 늘어났다.

시가지 근접전이 빈발하는 탓에 같은 기간 미군 사상자 규모도 급격히 늘고 있다. 는 4월11일 “지난 2월14일부터 4월2일까지 7주 동안 바그다드에서만 미군 53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공세가 시작되기 직전 7주 동안 미군 전사자가 29명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 거의 두 배가량으로 사망자가 급증한 셈”이라고 전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안팎의 철군 여론에 직면한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점령 4년이 지난 오늘의 이라크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BBC방송〉이 지난 3월22일 전한 이라크의 의료 현실이다. 이 방송은 “신변 위협을 느낀 의료진들이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이라크에서 의료공백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갖 위험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이라크인들에겐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닥친 게다. 〈BBC방송〉은 요르단 암만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라크 출신 신경외과 전문의의 말을 따 “이라크를 떠나올 당시 병원에는 거의 모든 의약품이 부족한 상태였고, 간호인력은 전무한 상황이었다”며 “폭탄공격이 벌어져 환자들이 한꺼번에 도착하기라도 하면, 의료진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어서 중상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있다. 는 최근 “수많은 어린이들이 각종 유혈사태로 가족을 잃고, 전쟁터나 다름없는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쓰레기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뭐든 먹으며 목숨을 부지하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어린이 25명 가운데 1명은 5살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다. 또 4명 가운데 1명꼴인 약 300만 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며, 5명 가운데 1명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4년 전만 해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 한 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비관적이라는 소릴 들었다. 치안 확보와 전력·식수망 복구, 안정을 5년이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제 5년째로 접어드는 지금,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약간의 평안만 가져오기 위해서도 실로 기적이 필요한 지경이 됐다.”

약간의 평안을 위해서도 기적이 필요하다

는 4월7일 이라크의 참혹한 현실을 전하는 블로거들의 기록을 더듬었다. ‘바그다드 버닝’(불타는 바그다드)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리버벤드’는 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몰고 온 재난 속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의 혜택을 입은 부류가 있다면 바로 이라크를 등지고 떠나 미국이 가져온 ‘자유’를 피해 낯선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많은 이들이 ‘기적’에 대한 기대조차 포기해버린 지 오래다. 20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시리아·요르단·이집트 등지에서 새 삶을 꾸리고 있다. 유엔은 최근 2007년 말까지 이라크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나라 밖으로 이주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년여의 점령이 낳은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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