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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전투’의 해피엔드?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 당국, 반세계화 시위에 참여했다 불법 체포된 175명에 배상하기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반세계화 운동의 서막을 알린 ‘시애틀의 전투’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1999년 11월 말에 시작된 싸움이 7년여 만에 매듭이 지어졌다. 어떤 경우에도 집회·결사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다는 교훈과 함께.

지난 1999년 말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은 ‘잠 못 이루는’ 도시였다. 그해 11월30일에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앞서 전세계에서 몰려든 5만여 시위대로 도시 전체가 술렁였다. 순식간에 도시를 압도해버린 시위대는 삽시간에 사람의 띠를 만들어내며, 각국 대표단을 압도해갔다. 회의장인 시애틀 컨벤션센터 앞 횡단보도에 드러누운 시위대는 ‘더 나은 세상’을 외치며 135개 회원국 대표단의 회의장 입장을 막아냈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개막 축하연설 계획을 취소했고, 결국 ‘밀레니엄 라운드’는 개회식부터 무산됐다. 반세계화 운동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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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작업이 더 치밀했어야…”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시애틀 시 당국은 도시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주 방위군까지 투입됐다. 거리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다. 뒤를 이어 ‘극렬 시위대’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벌어졌고, 수많은 이들이 진압 경찰의 곤봉 세례를 받아가며 붙들려갔다. 온 도시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로부터 7년5개월이 흐른 지난 4월2일,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됐던 175명에 대한 배상 결정이 내려졌다. 는 이날 “시애틀 시 당국이 가입한 보험회사가 평화적 시위대를 불법 체포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100만달러를 배상하는 데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지난 1월 연방법원 선고공판에서 배심원들이 합리적 이유 없이 평화로운 시위대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데 대해 시애틀 시 당국의 책임이 있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며 “법원의 최종 배상 판결에 앞서 시 당국이 원고 쪽과 법정 밖 협상을 통해 배상 금액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시 당국의 배상 결정에 따라 원고로 참여한 시위대는 1인당 적게는 3천달러에서 많게는 1만달러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 또 소송비용 일체를 시 당국이 부담하는 한편, 당시 체포 기록도 삭제하기로 했다. 원고인단은 1999년 12월1일 시애틀 시내 웨스트레이크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좌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이들이다. 당시 문제의 공원은 시 당국에 의해 ‘시위금지 구역’으로 설정됐지만, 시위대 체포에 나섰던 경찰 병력은 공원 주변에 있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연행해 비난을 산 바 있다.

하지만 배상을 결정했다고 해서 시 당국이 ‘반성’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시 검찰청은 배상 결정에 앞서 성명을 내어 “소요사태 와중에 벌어진 대규모 체포 작전으로 일부 절차를 어겼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항소심에선 승리를 확신한다”며 “다만 보험사 쪽에서 배상금을 지불하겠다는 뜻을 전해와 이를 수락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애틀 현지 언론들은 시 검찰 당국자의 말을 따 “WTO 반대시위 진압 과정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대규모 시위대를 체포했을 때는 서류 작업을 더 치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교훈 주길

시애틀 시 당국은 앞선 몇 차례 소송에서 모두 80만달러를 시위대에 배상한 바 있다. 시 쪽은 지난 2004년 1월에도 시위금지 구역 바깥에서 집회를 하다 붙잡힌 157명에 대해 25만달러를 배상했다. 이번 소송은 1999년 WTO 반대 시위와 관련해 지난 7년여간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법정 투쟁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노동자 켄 핸킨은 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어떤 경우라도 헌법적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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