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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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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위험하니 철군하자’ 논리를 넘어서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난데없는 총격, 되풀이되는 참사, 미진한 수사… 유감스럽게도 아프가니스탄에는 외국군 주둔은 필요악

▣ 잘랄라바드(아프가니스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지난 3월9일 밤 9시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잇는 국경지대 토르캄에서 잘랄라바드(아프간 동부)로 차를 몰던 자비훌라(26)는 느닷없는 총격에 목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왔다. 당시 현지 주둔 미군은 테러 공격 정보를 입수했다며 ‘토르캄∼잘랄라바드∼카불’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검문, 통제하고 있었다. 자비훌라는 차를 멈추라는 신호를 받지 못한 채 달리다 변을 당한 게다.

“(아프간) 경찰이 오라고 손짓하기에 그쪽으로 차를 서서히 몰고 갔지. 근데 갑자기 (마주 보던) 미군 차량 쪽에서 총알이 날아들었어.” 경찰의 손짓이 차를 멈추라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비훌라가 이해한 대로 오라는 손짓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둠 속에서 그 경찰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틈도 없이 미군의 총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카에다의 ‘왕성한’ 활동지 중 하나로 꼽히는 아프간 동부 낭가하르 지방은 그렇게 계속 들썩이고 있다. 자비훌라가 총격을 당하기 5일 전에 발생한 미군의 총기 난사 사건을 취재하러 갔던 길에, ‘어제 또 당했다’는 자비훌라 사례를 덤으로 얻었다. 그럼 3월4일 발생한 사건을 간략히 더듬어보자.

‘재수 없이’ 총질당한 민간인, 사망자는 도대체 몇 명?

이날 오전 낭가하르 지방 바라예카브의 한 시장에서 자살폭탄 차량 1대가 미군 차량을 겨냥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이 공격에 대한 미군의 반응은 총기 난사였다. 목격자들은 6대가량의 미군 차량에서 인근 주민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총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주민의 전화를 받은 ‘퍼블릭헬스’ 병원 등 잘랄라바드시 병원 두 곳에서 앰뷸런스 10대가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사상자들을 실어날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어. 건너편에서 오던 미군 차량에서 갑자기 총알이 차 안으로 날아들었어.” 팔에 총상을 입은 50대 주민 사이다잔은 “난데없는 총질이었다”고 말했다. 가슴에 부상을 입은 아부둘 왈리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그 상황에서 총기를 난사하면 누가 죽고 다치는지는 뻔한 거 아닌가? 직업군인이 그 정도의 감도 없이 총질을 했다는 게 말이 되나?” 잘랄라바드 주민 파리둘라(21)가 분통을 터뜨린다. 대부분의 사상자들이 얼떨결에 혹은 현장을 지나다 ‘재수 없이’ 총질을 당한 민간인들이었다.

미군 쪽은 자살폭탄 차량 말고도 총격을 먼저 받아 ‘자기 방어’를 했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엄청난 민간인 희생과 달리 미군 쪽은 누구도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퍼블릭헬스 병원 원장 아즈말은 “대부분의 (민간인) 부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목과 가슴 등에 총상을 입은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자살폭탄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공격자 1명뿐이다. ‘공격’과 ‘피해’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잖아도 바닥을 치는 ‘이름값’을 달고 있는 미군이 ‘해방’과 ‘재건’이라는 구호에 맞지 않는 행동거지를 보여온 건 이런 유의 참사를 일찍부터 예고해왔다. 이날 총기 난사 사건으로 낭가르하르 지방은 물론 카불까지 발칵 뒤집어졌는데도, 5일 만에 다시 같은 지역에서 유사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건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이 사건의 후속 처리 과정에선 외세의 늪에 빠져가는 아프가니스탄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라도 하듯, 뭐 하나 뚜렷이 밝혀지는 게 없다. 그저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조용히 갖다대는 모양새다.

어이없게도 사망자와 부상자 수치조차 경찰, 병원, 언론, 정부, 동맹군 등 어디서도 정확히 아는 곳이 없다. 각 진영이 발표하는 수치 차는 크다. 현지 주민들은 부상자 45명에, 사망자가 최소 25명은 넘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병원 쪽은 중상자 중 4명을 바그람 미 공군기지로 이송했고, 자살공격원 1명을 포함해 사망자 8명, 부상자 24명이란 수치를 내놨다. 사건 조사를 ‘마쳤다’는 경찰은 사망자가 16명이라고 ‘자신 없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내무부는 10명의 민간인 사망을 발표했고, 동맹군은 ‘8명 사망에 35명 부상’이란 수치를 내놨다.

탈레반 정권 붕괴 이래 치안은 악화일로

아프간에 득실대는 외국 군대의 이런 ‘범죄 행위’는 탈레반 정권 붕괴 이래 심심찮게 벌어졌다. 2002년 7월엔 우르즈간 지방의 한 결혼식장에 미국이 공습을 가해 45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지난해 10월엔 칸다하르 판자와위 지역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으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일가족 20명이 포함됐다. 앞서 언급한 낭가르하르 총기 난사 사건 다음날에도 카불 북부 카피사 지방에서 미 공군기의 공습으로 4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일가족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지난 3월15일 밤엔 헬만드 지역 검문소에서 미군이 아프간 현지 경찰 5명을 ‘실수로’ 사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니 지난 1월 NATO 주도의 국제치안지원군(ISAF) 대변인 리처드 이 누지가 ‘2007년 군이 개선해야 할 점’ 가운데 하나로 민간인 살상 행위를 꼽은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한국에선 지난 2월27일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벌어진 딕 체니 부통령을 겨냥한 테러 사건으로 윤장호 하사가 숨진 것 때문에 철군 여론이 들끓었던 모양이다. 늘 그렇듯 ‘한국군의 안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을 게다. 하지만 전쟁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현지’ 민간인들이고,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여성들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한국군의 안전이 위험하니 철군해야 된다”는 주장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아프가니스탄에는 외국 군대가 필요한가? 아니면 모조리 철수해야 하는가? 유감스럽지만 “우선은 필요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배경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잇단 언론 보도와 각종 보고서가 지적하는 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치안 상황은 2001년 12월 탈레반 정권 붕괴 이래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탈레반이 ‘완전 장악’했다고 보도되는 남부 헬만드 지방에선 3월4일 탈레반에 의해 이탈리아 언론인이 납치됐고, 3월6일에도 영국 기자 1명이 피랍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외국인 납치나 남동부의 큰 싸움들은 관심과 보도라도 이어지고 있지만, 바깥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히는 사건도 적잖다.

예를 들어 3개월 전 카불에서 남부 카즈니로 이동하던 대학생 3명이 버스를 급습한 탈레반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대학도서관 출입증을 제시했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 사건 같은 건 그냥 묻히는 뉴스 중 하나다. 이처럼 카불을 벗어난 지역에선 강도와 여전히 무장 중인 군벌들, 탈레반의 ‘공격’ 위험 등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카불 역시 안전지대라고 보긴 어렵다.

내전 주역 그대로, 외세의 ‘놀이’ 그대로

그래서 아프간 국민들은 외국 군대가 이런 불안한 치안 상황의 제대로 된 보호막이 돼주길 간절히 바라왔고, 지금도 여전히 바라고 있다. 앞서 언급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한 낭가르하르 지역 주민들조차 ‘외국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총질은 그만두고 재건만 한다면”이란 조건을 달아 주둔에 찬성했다. “우리는 죄 없는 민간인을 죽이는 그런 군사행동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 나라의 재건과 원조에 신실하게 나서주기 바란다.” 총기 난사 사건에 강력하게 항의시위를 벌였던 잘랄라바드의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 10여 명은 그렇게 입을 모았다.

두 번째, 더 중요한 이유는 내전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과거의 내전 주역들인 북부동맹 군벌들이 무기를 내려놓지 않은 채 정부 요직까지 두루두루 점하고 있어 ‘무장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 게다가 이 군벌, 무장세력 정파들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원 조종해왔던 주변 외세의 ‘놀이’도 계속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외국군의 철수가 90년대 초반 카불을 완전 초토화시켰던 ‘국제 대리전 성격의 내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북부동맹 군벌들의 전범재판과 처벌에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단체인 아프간여성혁명위원회(RAWA)는 아프가니스탄의 국민군대와 경찰이 자리잡고 치안 상황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외국 군대의 주둔과 재건 노력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 단체의 사하르 사바 대변인은 “북부동맹 군벌들의 비무장화를 통해 내전 재발 가능성을 없애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군벌들이 차지한 정부를 밀고 있는 국제사회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국제평화유지군의 주둔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애당초 모순투성이였다. 탈레반을 무너뜨리고 북부동맹 ‘전범’들을 권력에 다시 끌어들인 게 바로 미국이다. 전쟁 이후 3~4년간 정말 필요한 곳에 군을 주둔시키지 않아 국제구호단체들마저 활동을 접으면서, 재건사업에 치명타를 가한 미국의 정책 실패는 급기야 남북 지역 탈레반의 ‘화려한 부활’을 불러오고 말았다. 의 저자이자 아프가니스탄 전문기자인 아흐마드 라쉬드도 탈레반 패배 직후 약 3년간 후퇴한 탈레반 세력이 파키스탄 남부 발로치스탄으로 넘어와 재조직에 나서는 과정을 미국이 완전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올해가 ‘재건’ 실험의 분기점

‘해방’을 내걸고 ‘침공’했던 아프가니스탄, 5년 넘게 이어진 미국과 국제사회의 ‘재건’ 실험에 여전히 희망은 있는가? 흩날리는 눈과 비, 그리고 진흙더미와 껌 파는 소년들의 볼을 타고 흐르는 땟국으로 범벅인 카불의 3월은 올 듯 말 듯 여전히 오지 않는 봄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팽개쳐왔던 아프가니스탄의 시민들은 외세에 의한 잇단 참사와 실패로 기우는 외세 주도의 재건 정책에도, 이 ‘필요악’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는 모양이다. 올해가 바로 그 분기점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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