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긴장도가 높아가는 가운데 나온 옥스팸 등 민간단체의 암울한 예측 보고서…이란은 노골적으로 이라크에 개입하고 ‘최후의 억지력’ 핵무기 사용 부추길 수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부인하고 나서면서 주춤하는가 싶던 ‘이란 침공설’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낮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이란 외교관이 무장괴한에 납치되면서 미국과 이란의 공방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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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 바그다드 중심가 카라다 지역에서 잘랄 샤라피 이라크 주재 이란 대사관 2등 서기관이 이라크군 복장을 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2월6일 이란 외교부는 성명을 내어 “이번 사건은 미군의 사주를 받은 이라크군이 저지른 일”이라며 “샤라피 서기관의 무사생환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고 비난했다.
납치사건 당시 샤라피 서기관은 이란계 은행 지점 개설을 위해 현장 확인차 바그다드 중심가 카라다 지역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라크 경찰 당국은 사건 현장에서 총격전 끝에 납치에 가담한 괴한 일부를 구금했다고 밝혔는데, 이란 쪽에선 이들이 “미군의 직접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 소속”이라고 주장한다.
“위협적인 이란 요원 발견하면 사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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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라크 주둔 미군 당국은 샤라피 서기관 납치사건 관련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심지어 “샤라피 서기관의 납치사건이 실제 벌어졌는지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다. 영국 일간 은 2월6일 크리스토퍼 가버 다국적군 사령부 대변인의 말을 따 “확인 결과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휘하 부대는 이번 일과 전혀 관련이 없음이 드러났다”며 “다국적군의 지휘를 받는 이라크군 부대 역시 이번 일과 무관한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이란이 이라크 내부 시아파 무장세력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유혈사태를 부추겨왔다는 비난을 계속해왔다. 특히 백악관이 직접 나서 이라크 치안에 위협이 되는 이란 요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 또는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군은 지난 1월11일 이라크 북부 에르빌 주재 이란 영사관을 급습해, 시아파 무장세력 지원 의혹을 받던 5명의 이란인 직원을 붙잡아 가기도 했다. 미국의 부인에도 이란이 쉽게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이란과 미국이 시시각각 군사적 긴장도를 높여가는 사이, 옥스팸·옥스퍼드리서치그룹·외교정책센터 등 17개 민간단체가 2월5일 미국(또는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 행동이 몰고 올 끔찍한 파장에 대한 보고서의 암울한 전망을 들어보자.
보고서는 우선 “이란은 지난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격한 데서 교훈을 얻어 핵 관련 시설을 전국에 흩어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부 핵시설은 인구가 몰린 대도시에 세워졌으며, 나탄즈 핵시설처럼 콘크리트와 흙을 18m나 덮어 공격에 대비해놓거나 아예 지하 깊숙이에 핵시설을 건설한 경우도 있다. 핵시설에 한정해 ‘정밀타격’을 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에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은 오히려 핵무기란 ‘최후의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이란의 야망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사담 후세인 정권도 이스라엘의 오시라크 원자로 파괴 이후 오히려 핵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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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역의 정세에 끼칠 파장도 만만찮다. 시아파의 종주국이라 할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은 이들의 격한 반응을 부르며 중동 전역을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군사적 공격을 받을 경우, 이라크 문제에 대한 이란의 개입이 더욱 노골화할 것이란 점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중순 야히아 라힘 사파비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은 “미국이 이란 공세에 나설 경우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에 대한 공격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치안 상황 개선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또 상당수 이란 정보요원들이 이라크 시아파 거주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미국의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군사 공격을 받은 이란 정부가 손쉽게 이라크 시아파 무장세력의 ‘봉기’를 부채질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럴 경우 이미 내전의 늪에 빠져버린 이라크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임은 당연해 보인다.
배럴당 100달러 시대 올수도
특히 주민 절대다수가 시아파인 이라크 남부 지역에선 ‘형제국’에 대한 ‘점령군’의 공세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움직인다면 바스라를 중심으로 이라크 남부 일대를 관할하는 7500여 영국군 역시 원하든 원치 않든 이란과의 군사적 대결 구도에 말려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에 대한 섣부른 무력 개입이 자칫 국경을 넘어 지역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스라엘 변수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려사항이다. 이란은 자국 영토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면 장거리 미사일 등을 동원해 즉각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설 것임을 공언해왔다. 여기에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정치세력들도 이란을 지지하는 ‘행동’에 나서고, 레바논 정국을 주도하는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에 맞서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로선 안팎의 적들에 둘러싸인 채 운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4위 원유 수출국이자 전세계 원유 매장량의 10%를 보유하고 있는 이란이 군사적 분쟁에 휘말릴 경우 국제 원유 시장이 요동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란은 세계 원유 물동량의 40%(하루 약 2100만 배럴)에 이르는 원유가 이동하는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끼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외교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국제 유가가 사상 초유의 배럴당 77달러 선까지 치솟은 것도 이 때문이다. 보고서는 에너지 전문가들의 말을 따 “미국이 이란을 침공할 경우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핵시설 공격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발적 충돌에 따른 원유 유출과 그에 따른 해양 생태오염, 유전시설 파괴에 따른 대기오염 등이 몰고 올 환경 재앙도 끔찍한 수준일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전례도 있다. 지난 1991년 제1차 걸프전 당시 후퇴하던 이라크군은 쿠웨이트 유전지대 736곳에 불을 질렀다. 당시 9개월 동안 불길을 잡지 못하면서 잿더미가 하늘을 뒤덮어 대기 온도가 10도나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또 반경 1900km까지 오염원이 확산되면서 각종 환경오염과 함께 호흡기 질환자가 대폭 늘기도 했다.
쿠웨이트 유전지대의 화재를 기억하라
무엇보다 이른바 ‘외과 시술적 타격’이나 ‘정밀 유도무기’도 민간인 사상자를 피할 순 없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은 “지난 2003년 ‘충격과 공포’ 작전 당시에도 초기 공습 과정에서 무려 7천 명이 넘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고발한 바 있다. 당시 미군이 사용한 폭탄 가운데 3분의 2는 ‘정밀 유도무기’였다. 더구나 타격의 목표물인 핵시설이나 무기저장 시설 상당수가 대도시에 인접해 있다. 모두 24쪽 분량으로 작성된 보고서의 제목이 ‘이제는 대화에 나서야 할 때’로 결정된 이유는 이토록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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