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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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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중산층의 즐거운 비명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카오 카지노 산업 개방 이후 임금·아파트값 상승하며 ‘업그레이드’…홍콩·싱가포르 고급 인력까지 몰려드는 명실상부한 ‘국제적 인력시장’

반환 7주년 마카오 리포트②

▣ 마카오=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Can I help You?”(도와드릴까요?)

까만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훤칠한 청년이 다가왔다. 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내 꼴이 막 시골에서 상경한 ‘촌년’ 같은 표정이었는지, 딴에는 ‘도와줄 일’이 없을까 하고 다가온 것이다.

마카오의 휘황찬란한 윈 카지노 안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난생처음 카지노란 데를 와봤으니, 정신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청년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기웃거리는 내 모습을 ‘주시하다’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카지노 직원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대뜸 반가운 체를 한다. “I like 떡볶이!”(저 떡볶이 좋아해요!)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란다.

마카오 최고의 직장, 카지노

그는 홍콩 출신이라고 했다. “홍콩 사람이 왜 마카오 카지노에 와서 일하냐”고 물었다. “보수가 (홍콩보다) 많기 때문”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지금 마카오 카지노에는 마카오 현지인 외에도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화교들이 상당수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02년 카지노 산업이 개방된 뒤 ‘샌즈’와 ‘윈’ 등 미국 라스베이거스 거대 자본들이 몰려들면서 카지노 업체에서 일할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게 된 탓이다.

그 결과는 인력 확보를 둘러싼 업체 간 스카우트 경쟁으로 이어졌다. 또 가까운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에서까지 인력을 ‘수입’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기가 받는 임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홍콩에서 일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갈수록 경제가 침체되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홍콩 젊은이들에게도 마카오 카지노는 아주 ‘매력적인’ 직장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홍콩 청년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류윈롱을 만났다. 그는 윈 카지노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다. 올해 31살인 그는 동갑내기 부인과 갓 돌을 넘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둥글둥굴한 얼굴에 눈가에는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는 류윈롱은 요즘 들어 더욱 싱글벙글하고 있다.

“젊은 애들은 다 카지노로…”

윈 카지노에 근무하기 전까지 류윈롱 부부는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마카오 항공사에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당시만 해도 항공사는 마카오에서 꽤 괜찮은 직종에 속했다. 카지노 산업이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카오 젊은이들은 공무원을 가장 선호했고, 그 다음으로 은행과 항공사 등이 ‘최고의 직장’으로 꼽혔다. 하지만 카지노 산업 개방은 마카오 젊은이들의 직업 선호도를 하루아침에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중산층의 삶의 질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카지노 산업 개방 전에는 카지노 하면 비교적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카지노 하면 흔히 뿌연 담배 연기와 도박꾼들, 깡패 조직 등이 연상되곤 했다. 그런데 카지노 산업이 개방되고 미국 카지노 업체가 들어오면서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다른 직종에 비해 임금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카지노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또 카지노 산업 개방은 마카오인들의 생활 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우리도 바로 그런 경우다.”

류윈롱 부부는 항공사 근무 시절에도 다른 직종에 비해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부부가 모두 카지노 업체로 옮긴 뒤에는 가계 수입이 배 이상 늘었다. 그의 부인은 “비록 은행 대출을 받긴 했지만 아파트를 샀고 아이도 낳았다. 예전 수입만으로는 조금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아이를 기르는 데 전혀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며 희색을 감추지 않았다. 20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아파트이긴 했지만 그들 부부는 30대 초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집을 장만했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이 부부는 자신들의 가정 경제를 ‘업그레이드’한 일등공신으로 카지노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카지노 업체로 직장을 옮긴 뒤부터 예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류윈롱은 연방 카지노 개방 예찬론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의 ‘예찬론’을 듣기가 좀 민망했던지 옆에서 부인이 잠시 끼어든다.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졌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안 좋은 점도 있잖아. 예를 들면 젊은 애들이 공부는 안 하고 다 카지노로만 가려고 한다거나 하는….”

몇 마디 ‘부정적인’ 얘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류윈롱이 대뜸 반박을 하고 나섰다. “그건 그렇지가 않다고. 카지노 산업이 개방되기 전에는 실업률이 얼마나 높았어! 1만 홍콩달러를 넘는 고임금 직장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생각을 해봐. 그때는 공무원이 최고였잖아. 근데 지금은 늘어난 카지노 덕분에 실업률이 거의 바닥이잖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결과가 훨씬 많아!” 그의 열변 앞에서 부인의 ‘입’이 무색해졌다.

류윈롱 부부는 요즘 싱글벙글할 일이 또 한 가지 생겼다. 지난해 구입한 아파트 가격이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이 조만간 또 오를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모두가 ‘카지노 효과’다. 내년엔 베네치안 리조트 등 세계 굴지의 카지노 업체들이 6개 이상 새로 개장할 예정이다. 당연히 또 한 차례 업체 간 인력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임금도 자연히 오르게 될 것이다. 류윈롱의 눈가에 머물고 있는 미소는 시종일관 사라지지 않았다.

“불과 5~6년 만에 천지개벽”

마카오 항공사 승무원 출신이었던 진젠도 류윈롱 부부와 마찬가지로 마카오의 ‘신흥 중산층’이다. 부동산 업체에서 주로 투자이민 상담을 맡고 있는 그는 원래 중국 본토 출신이다. 대만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1997년부터 마카오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진젠은 최근 10여 년 동안 마카오의 변화를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증언해줬다.

“1997년 처음 마카오에 왔을 때만 해도 거리에는 자동차들이 아주 드물었고, 지금처럼 사람들이 벅적대지도 않았다. 아주 한산한 느낌이었다. 옆 동네 홍콩과 비교하면 마카오는 거의 ‘촌동네’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5~6년 만에 천지개벽을 했다. 예전에 마카오 사람들의 경제 수준이나 소비 수준은 대륙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홍콩 사람들이 마카오를 아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홍콩인들이 마카오 투자이민을 상담하러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젠 역시 최근 신개발 지역에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고 한다. 지금 그 집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단다. 진젠은 “카지노 산업 개방은 여행업이나 서비스업 등의 연쇄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마카오 부동산 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이나 싱가포르, 중국 대륙 등 화교권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에서까지 마카오 투자이민을 희망하는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급여 두 배인 직당 마다하리

2002년 이후 마카오는 ‘카지노 경제’라는 날개를 달고 일대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으로 반환된 뒤 6년 동안 마카오는 중국 대륙보다 더 높은 연평균 11%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자랑하고 있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만 해도 15.6%를 기록했다. 지난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4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니, 진젠의 표현대로 ‘천지개벽’인 셈이다.

마카오 통계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 마카오인들의 1인당 월평균 수입은 6795홍콩달러(약 81만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마카오의 1인당 월평균 수입은 5765홍콩달러(약 68만원)였다. 1년 사이에 약 1천홍콩달러가 높아진 것이다. 실업률도 반환 직전인 1998년 이래 최저치인 3%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환 이후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하강 곡선을 그려왔다. 지금 마카오에선 일자리가 없어서 취직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마카오에선 류윈롱 부부처럼 최근 수많은 공무원과 은행원, 중소기업체 종사자들이 속속 카지노로 직장을 옮기고 있다. 하긴 두 배 이상 더 많은 급여가 보장되는 직장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지금 마카오에는 ‘카지노 예찬’을 부르짖는 신흥 중산층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인근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의 고급 인력까지 마카오 카지노로 몰려들면서 마카오는 지금 세계 최고의 도박 도시를 넘어 국제적인 카지노 인력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다.



정치? 홍콩이나 떠들라고 해!

카지노 행정과 경제만 남은 마카오는 지금 ‘정치 무풍지대’


중국으로 반환된 뒤 흔히들 홍콩을 빗대 ‘정치가 죽은 도시’라고 말한다. 정치는 없고 오로지 ‘행정’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카오와 비교하면 아직도 홍콩은 ‘정치가 넘쳐 흐르는’ 도시다. 그나마 홍콩인들은 아직까지도 정치와 민주주의를 얘기하며, 해마다 크고 작은 시위들을 벌이고 있지만, 마카오는 그야말로 ‘정치 무풍지대’다.
홍콩 거리의 신문 가판대와 서점에선 중국 대륙의 정치·경제·사회의 온갖 비리와 모순을 ‘까발리는’ 내용의 신문 기사나 책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카오에선 정치와 사회를 논하는 신문 잡지와 책들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심지어 거리에서 서점을 찾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아간 서점에도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좀체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마카오의 한 공무원은 이를 “영국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 방식이 낳은 차이”로 해석했다. 영국은 홍콩을 통치하는 기간에 ‘기를 쓰고’ 영국식 민주주의와 정치를 주입하고 그 후견인들을 키우면서 반환 이후에도 여전히 ‘영국을 그리워하는’ 홍콩인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영국은 영어를 철저하게 가르쳤고 많은 인재들을 영국에 유학 보내 홍콩 행정부 내에 수많은 ‘영국파’들을 길러냈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이들 ‘영국파’ 때문에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반면 포르투갈은 영국과 비교하자면 ‘실패한 식민통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인들은 마카오인들에게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재 육성에도 소홀했다. 또 모든 법률과 정부 문서들은 포르투갈어로만 표기해 일반인들이 자국의 법 조문조차 읽지 못하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카오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중국어(광둥어)지만, 포르투갈어를 구사하고 읽을 수 있는 마카오인들은 드물다. 때문에 중국으로 반환된 뒤에도 마카오인들은 포르투갈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다. 한 택시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포르투갈이 마카오인들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카오 사람들은 중국 정부의 ‘일국 양제’ 정책을 이구동성으로 ‘지지한다’고 말한다. 반환 전 마카오에는 실업과 경제난, 범죄가 가득했지만, 반환 뒤에는 모든 상황이 변했다는 게다. 실제로 실업은 커녕 갈수록 늘어나는 일자리로 마카오 정부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카오 사람들은 정치에 통 관심이 없다. “그런 건 홍콩 사람들이나 떠들게 내버려두면 된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게 딱히 농담만은 아니다. 때문에 ‘정치가 죽은 도시’는 홍콩이 아니라 바로 마카오다. 마카오엔 오직 ‘카지노 행정과 경제’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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