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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후짠은 허풍쟁이 사기꾼?

등록 2006-08-09 00:00 수정 2020-05-02 04:24

‘민주투사’로 대접하기에는 뭔가 떨떠름한 ‘자유베트남정부 총리’의 이력… 대한민국의 인도 거부 결정에 베트남인들 “미국 눈치 본 것 아니냐” 섭섭

▣ 호찌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hanmail.net

“한국, 서울 고법의 응우옌후짠(Nguyen Huu Chanh) 인도 거부 결정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결정은 베트남과 한국 간의 인도협정을 완전히 거스르는 행위이다. 베트남은 인터폴에 응우옌후짠을 테러범으로 체포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베트남은 인터폴의 한 회원국으로서 테러 행위에 반대하는 각 나라들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각 관련국들에 반베트남 테러범들의 음모와 활동을 차단, 엄벌하기를 요청한다.”

국가주석까지 나서 친서까지 띄웠으나…

지난 7월27일 응우옌후짠에 대한 서울 고등법원의 인도 거부 판결이 내려지자, 베트남 외교부는 즉각 강경한 어조로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베트남 정부는 응우옌후짠을 ‘베트남, 타이, 필리핀 등지에서 최소 여섯 차례 이상 반베트남 테러를 배후 지휘한 수괴’로 지목하고 있기에, 한국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국가주석까지 직접 나서 한국 대통령에게 인도 요청 ‘친서’를 띄운 바 있다.

하지만 외교적 노력에도 기대와는 전혀 다른 재판 결과가 나오자, 베트남 외교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당혹감과 배신감, 서운한 감정을 한국 정부에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반면 몇 군데의 언론사만이 응우옌후짠의 석방 소식을 외교부 성명과 더불어 ‘단신’으로 처리했고, 대부분의 언론사는 아예 뉴스로조차 다루지 않았다.

“응우옌후짠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걸요!” “자유 베트남 정부, 그게 뭔가?” 필자가 주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응우옌후짠이나 자유 베트남 정부에 대해 인터뷰를 시도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생경하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은 뒤에도 두려움을 갖기는커녕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대한 얘기를 들은 뒤의 대체적인 반응은 약간의 온도차를 두고 ‘한국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보였다.

판결 내용 중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주요하게 지적하는 부분은 “응우옌후짠과 그의 조직이 테러로 사상자를 낸 적이 없기에 테러범으로 볼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응우옌후짠의 자유 베트남 정부가 무력투쟁과 무장부대 교육 훈련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있는데, 테러가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해서 테러집단이 아니란 말인가. 그것은 테러로 인한 사상자가 생길 때까지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두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미국을 향한 테러 위협이었다면 과연 한국이 그를 석방했겠는가. 한국은 반테러 연대에 대한 국제적 균형감각이 없다.”(대학교수 레민홍) “한국은 말로는 테러를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테러 집단을 키우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 행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한국을 테러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이다.”(대학생 티엔탄) 이런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언제나 미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이 불쌍하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국을 미국의 종속국으로 연결짓는 시각이 많았다. “한국의 이번 판결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한국과는 외교를 단절해야 한다. 베트남 내의 모든 한국인을 추방하고, 한국 내 베트남인들을 전부 귀국시켜라”는 극단적인 반감을 표출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았다. 응우옌후짠과 그의 조직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거의 존재감이 없기에, 그와 관련된 사건이 정치·사상적 관점보다는 외교적 관점으로 쟁점화되는 형국이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가 없어질 때까지…”

“베트남 국민들이 공산독재 아래 깊은 도탄에 빠져 있다. 공산주의 정권은 세계 인류 발전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우리는 베트남을 공산주의 재난 속에서 구출하고, 본연의 문화와 문명을 긴급히 회복시켜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베트남의 현실은 공산당의 잘못에 기인한다. 권력은 부패하고, 인민은 피폐하며, 사회 문화는 나날이 퇴화돼가고 있다. 탈출구가 없는 가난과 질병, 환경오염 등에 인민들 모두가 절망하고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공산집단이 인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국제사회 속에서 베트남은 점점 더 신임을 잃어가고 있다. 나라를 빈곤 독재 상황에서 구하자. …조국의 신성한 부름에 대답하기 위하여, 민주화와 번영, 동포들의 복리를 염원하는 전 국민을 위하여, 베트남 민족당은 당의 정치강령을 공포한다. 구국, 안정, 건설의 세 단계를 거쳐 노선과 책략을 실현할 것이다. 우리 모두 새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입국 채비를 갖추자. 베트남에서 공산주의가 없어질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자.”

응우옌후짠은 자신이 ‘총서기장’을 맡고 있는 베트남 민족당의 정치강령에서 자유 베트남 정부의 활동 노선과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전쟁 시절의 증오 안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고를 근간으로 그는 무장투쟁을 천명하고 군대를 조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베트남 민족당’의 해외 당원은 300만 명이며, 베트남 국경지대에 1만7천 명의 저항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어설픈 점이 너무 많다. 당원 수가 베트남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해외 동포 수 270만 명보다 더 많은데다, 1만7천 명 규모의 저항군 흔적은 베트남 국경지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응우옌후짠의 출생과 이력을 돌아보면 허풍과 사기 행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949년 10월1일 빈딘성 푸깟현에서 태어난 그는 68년부터 72년까지 냐짱의 푸토 기술대학을 다녔다고 주장하지만, 학적부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75년 이후에는 밀수와 절도죄로 감옥을 들락거렸고, 83년에 고향 사람들에게 금괴 50개를 사기친 돈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89년엔 동포들의 돈으로 ‘비나모토’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92년에는 투자자 행세를 하며 베트남에 건너와서는 400통의 화학설탕을 팔아 상대회사에 100만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 계속되는 사기 행각으로 결국 95년 베트남에서 추방된다.

추방된 뒤 경제활동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기 어려워지자, 그는 정치가로 변신한다. 뛰어난 말솜씨를 가진 그는 남베트남 출신의 장교·관료들을 모아 ‘인도차이나 항전 연맹군’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베트남 국경지대에 인도차이나 항전군 1만7천 명’이 있다며 그들을 부양할 돈을 모금한다. 이후 ‘인도차이나 항전 연맹군’을 ‘자유 베트남 혁명정부’로 개명했다가 ‘자유 베트남 임시정부’로 다시 개명하면서, 자신을 정부의 ‘총리’라 칭한다. 2003년 8월17일 ‘베트남 민족당’을 결성하면서 자신을 총서기장으로 칭한다. 2005년 2월1일에 정부를 다시 ‘자유 베트남 정부’로 개명하면서, 당 총서기장과 정부 총리를 맡는다.

‘어설픈’ 폭탄테러 기도 조직원들

응우옌후짠과 그의 조직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처음 크게 알려진 것은 2001년 5월, 조직원 37명이 반정부 테러 혐의로 체포된 베트남에서 재판을 받은 뒤부터다. 그들은 타이와 캄보디아에서 테러훈련을 받고 베트남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구체적인 죄목은 호찌민 시청 앞에 있는 ‘호찌민 동상’ 폭파 기도 등 13개에 이른다. 37kg의 폭약과 40개의 뇌관, 도화선 등이 증거물로 제시됐다. 국외에서는 2000년 8월부터 2001년 8월까지 영국, 캄보디아, 타이, 필리핀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기도한 조직원들이 붙잡혔다. ‘어설픈’ 자유 베트남 정부는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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