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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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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음중구야”

등록 2006-04-27 00:00 수정 2020-05-02 04:24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백인, 1천원에 오렌지 50개 사고 가정부 거느리는 특권층…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백인의 것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hk21bh@hanmail.net

이곳에서 나는 백인이다. 이른바 음중구(Mzungu). 스와힐리어로 유럽인을 의미하지만, 피부가 흰 외국인을 모두 포함해서 일컫는다. 내가 백인이 아님을, “난 옐로야”라며 부인했지만 내 얼굴이 아무리 검게 그을렸어도 그네들에게 나는 너무도 흰 백인이었다. 한 번도 내가 백인이란 생각을 가져본 적 없는 내게 “넌 백인이야”라는 인정은 사실을 넘어 현실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묘한 특권의식으로 바뀌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쭉쭉 뻗은 머리는 부러움의 대상

피부색을 제외하고 이네들과 또 하나 다른 점은 헤어스타일. 꼬불꼬불 머리카락이 말려 머리에 붙어 있는 이네들에게 우리의 쭉쭉 뻗은 머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큰아이 세원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꾸 머리를 만지는 것 때문에 한동안 너무도 힘들어했다. 윤재 역시 현지 유치원 선생님들이 칭찬할 땐 꼭 머리카락을 만지며 “러블리(Lovely)하다”고 말한다. 짧은 진짜 머리를 편 뒤 가짜 머리를 이어서 땋거나, 인공적으로 쭉쭉 뻗도록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에게 우리네 생머리는 얼마나 편리해 보일까? 살림살이가 괜찮은 여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머리를 펴는 것이라는데, 대부분 가짜 생머리를 덧붙여서 올리거나 타조 깃털 같은 것으로 장식을 한다. 하지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남의 헤어스타일이 더 멋져 보인다고, 반대로 우리가 이네들의 머리스타일인 레게 머리를 한 번 해볼까 해서 물어봤는데 내추럴 헤어라며 우리 머리카락으론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차피 가짜 머리를 덧붙여 땋아도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서 오래가지 못한다. 이쯤 되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누구 것이 더 좋다고 할 것이 못 되는 셈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음중구로서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곳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땅에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마님살이’가 가능한 이유다. 여기서는 달러와 탄자니아 실링을 함께 쓰는데 일상생활에서는 달러를 탄자니아 실링으로 바꿔서 사용한다. 물론 100달러짜리 지폐가 우대받는다. 그것도 새 지폐만 받는다. 이전의 100달러짜리 지폐는 받지 않는다. 또 1995년 이전 달러는 은행에서 받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50달러나 20달러짜리는 환전을 할 때 조금 덜 쳐준다. 편리하게 사용하려고 바꾼 5달러와 1달러짜리는 거의 천대받기 십상이다.

우리는 우리 돈 100원과 100실링을 똑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돈 계산이 복잡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달러 환율이 우리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처음 달러를 바꿀 때 1달러는 1050실링이었다. 달러 환율이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바꾼 환율은 1달러에 1200실링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그냥 100실링을 ‘100원’으로, 1천실링을 ‘1천원’으로 불렀다.

달러를 많이 바꾸면 좀더 쳐준다. 자장면이 없기 때문에 비교할 순 없지만, 우유가 350원(약 350실링), 쇠고기 1kg이 4천원(4천실링)이다. 물론 야채나 과일은 환상적일 만큼 싸다. 오렌지가 제철인 때는 1천실링에 50개를 살 수 있다. 농약 안 친 100% 유기농 오렌지를 하나에 2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채소는 한 단에 50원, 1천원이면 가장 크고 좋은 파인애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공산품은 비싸다. 아마도 물건을 만드는 시설과 기술이 없어서 대부분 수입하거나 멀리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리라. 월급이야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반적으로 한 달 받는 월급이 6만5천원 수준. 월세 2만원에 이들의 주식인 수쿠마 한 단이 50원, 거기에 옥수수 가루 우갈리와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사면 금방 없어질 돈이다. 그 돈으로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옷도 사입고 신발도 사신고 집도 꾸려야 한다. 어쩌면 공장도 거의 없고, 일거리도 없는 이곳에서 가정부나 문지기는 고용창출의 한 방편인지 모른다. 대부분의 집에 가정부와 문지기 겸 밤에 집을 지키는 아스카리(경비원)가 있다. 어떤 아스카리의 경우는 낮에 일하고 밤에도 집 지키는 문지기를 한다. 몇십 년 전 우리네 가정집에도 적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수 있는 가정부가 있었듯이 말이다.

가정부 월급, 한 달에 4만원

그래서 음중구가 가정부를 쓰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나마 현지인들보다 돈도 더 주고 일도 덜 시키고 물건을 가끔 얻기도 하기 때문에 백인 가정에서 가정부 하는 것을 다들 원한다고 한다. 이들이 받는 돈이 한 달에 4만원에서 5만원선, 그것도 현지인들 집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나를 백인 취급하는 이들을 보며 가끔 드는 생각은 내가 아프리카에 대해 느끼는 호감 중에 백인으로서의 달콤한 특별의식도 포함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적은 돈으로 사람을 쓰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누린 문명과 비교하고, 특별대우를 받고….

아프리카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제국주의자들처럼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마음과 태도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사람은 똑같다는 생각이었고, 피부색이 희거나 검거나 모두 존엄하다는 사실이었다. 검은 피부의 아이들과 섞여 놀고 노래하고 공부하며 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아프리카는 여전히 아프리카인의 것이 아니라 백인의 것이란 사실이다. 이곳에서 나 같은 황인종조차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건… 내가 이런 고민에 빠질 수 있다는 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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