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부모책임계약법’도입 움직임… 자녀 방치시에는 양육권 박탈까지
▣ 시드니=권기정 전문위원 kjkwon@hotmail.com
최근 시드니에선 10대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14살 된 두 소녀가 장애인 택시기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되는가 하면 비슷한 시기에 10대 초반 청소년 3명에게 뭇매를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던 또 다른 택시기사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에는 8살 어린이가 11살, 13살 된 다른 두 소년과 함께 3살 여아를 집단 성폭행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벌어졌다. 또 국내외에서 마약밀수 혐의로 기소되는 10대 청소년들이 늘어남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도 더 이상 마약 청정지대가 아니라는 우려도 크다.
그간 청소년 범죄가 비교적 많지 않다가 사태가 이쯤 되자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행동과 범죄는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나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10대들의 범죄가 가정에서 어린이를 방치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가정에서부터 어린이들의 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부모책임계약법’(PRC)을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일부 부모들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어린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기 때문에 청소년 범죄가 늘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도입하려는 법안은 방치될 위험이 있는 자녀의 부모에게 법원 명령으로 자녀양육 계약서에 서명을 받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계약서의 내용은 부모가 의무적으로 자녀양육 교육에 참여하고, 불법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과도한 음주를 절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해당 부모가 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거나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녀의 양육권을 상실하고 정부가 아이들을 대신 보호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부모가 원하면 정부가 도움을 줄 수 있긴 하지만, 부모가 감당해야 할 불가결한 역할까지 정부가 대신해줄 순 없다”는 게 주정부의 입장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현행 가족법이나 아동보호법 등은 이미 ‘자녀 방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책임계약법이 도입될 경우 방치된 자녀들을 가정에서 격리해 정부 시설에서 일정 기간 보호하는 등의 현행 아동보호 조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새 법안은 ‘자녀 양육권 박탈’이라는 강력한 법적 제재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가정에 대해 정부가 강제로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는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적 제도나 가치로 보면 자녀 교육과 양육은 부모와 각 가정에서 맡아서 해야 할 사적 영역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일부 사례이긴 하지만, 가정에서 충분한 보호를 못 받은 청소년들이 범죄 등에 연루돼 청소년 개인에게나 부모에게 호된 시련이 다가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자녀 양육에 조기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오버’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아동 복지제도가 그만큼 잘 갖춰졌기 때문에 자녀를 방치하는 것과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에 대한 어른들과 정부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큰 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출산과 양육을 개인의 몫으로 규정하지 않고, 개인과 사회가 함께해야 할 공동과제로 여기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경제적 평등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신분 따위에 영향받지 않고 모든 어린이들이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다름’이 철저히 존중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관전하는 것은 재미있다. 신선한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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