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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의 로드맵, 외국 독자를 쏴라

등록 2006-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미 국방부는 왜 연방정부 7개 부서 미디어 예산의 2/3을 써야 했나
“1억6100만달러 들여 국제적 웹사이트 개발, 내용은 제3자가 생산토록”

▣ 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우리의 감사원 격인 미 회계감사원(GAO)은 지난 1월13일 ‘미디어 계약 - 7개 연방정부 부서의 관련 활동과 예산’이라는 제목으로 16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상무·국방·국토안보·내무부 등 연방정부 7개 부서를 대상으로 2003 회계연도부터 2005 회계연도 2/4분기까지 미디어 관련 예산 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보고서를 보면, 이들 부서는 조사 기간 동안 모두 343개의 언론·홍보계약을 통해 약 16억2천만달러의 예산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신병모집 광고를 대대적으로”

‘홍보성’ 예산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단연 국방부였다. 국방부와 육·해·공군 등 산하기관은 조사기간 동안 모두 152건의 미디어 관련 계약을 맺어 약 11억달러를 썼다. 7개 부서의 전체 미디어 관련 예산 가운데 3분의 2가량을 국방부가 독식한 셈이다. 회계감사원은 국방부가 이들 예산 대부분을 신병 모집과 관련 업무에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이라크 침공 이후 병력 부족에 허덕이는 미 국방부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라크 침공 이후 미 국방부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로 여론·심리전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 조지워싱턴대학 국가안보자료실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입수해 지난 2월 말 공개한 ‘정보작전 로드맵’이라는 내부 문건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03년 10월30일 작성된 이 문건의 서문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여론·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정보작전’을 ‘군사력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문건은 “지난 10여 년 동안 수많은 연구를 통해 심리전 능력의 저하를 지적하며, 이를 향상시킬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며 “심리전은 오래전부터 대테러전에서 특히 유용한 전술로 인식돼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건 내용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복잡해지는 정보작전 환경 아래서 외국 타깃 독자층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은 권고사항들이다. 미 국방부는 특히 미군의 훈련과 배치, 작전 등에 우호적이지 않거나 거부감을 가진 지역에서 미군의 움직임에 대한 여론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 심리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지역의 후보군에 포함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미군이 이른바 ‘공공 외교’에 동참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적극적으로 홍보 프로그램을 마련해 외국의 타깃 독자층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위해 미 국방부는 2004~2009 회계연도에 모두 1억6100만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지원할 수 있는 국제적 웹사이트 개발 등에 사용할 것이란 점을 밝혔다. 문건은 또 웹사이트의 내용은 타깃 독자층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제3자를 통해 생산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조작된 정보, 미국으로 역류할라

문제는 미 국방부가 외국 독자층을 겨냥한 심리전용으로 만들어낸 조작된 정보가 미국 내로 역류해 자국 내 여론 조작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관련성이 없다고 인정했음에도 이라크 침공에 찬성했던 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사담 후세인 정권이 9·11 테러와 관련돼 있다고 믿는 것은 이런 우려가 쉽게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948년에 제정돼 1972년과 1998년 두 차례 개정된 ‘스미스-문트’ 법안은 미 연방정부가 외국을 겨냥한 심리전 정보를 통해 자국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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