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생각해도 암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통설을 뒤집은 테러
반이라크 기세 높고 알카에다에 우호적이던 90%가 생각 바꿔
▣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암만 테러는 요르단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던 암만이 기습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암만 생각해도 암만이 가장 안전하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이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번 테러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암만 테러의 여파는 정치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 테러 이후 우는 이들도 있고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웃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사연을 짚어본다.
요르단 국기와 보안용품 특수
사건 다음날인 11월10일 요르단은 임시 휴무가 이뤄졌다. 각급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이고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같은 날 밤 9시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라디슨 사스 호텔에 때 아닌 음악 소리와 축하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결혼식과 피로연이 진행됐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요르단 전통복을 입은 남녀들이 몰려든 것이다.
“자르카위에게 지옥불을!” “테러를 반대한다.” “요르단은 하나다.” “우리의 영혼을 바쳐 암만과 요르단을 위해 희생하리라.” 암만 테러가 발생하자 요르단 곳곳에서 성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사원 주변에서 테러 규탄 가두행진과 차량 경적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요르단 국기는 특수다. 차량이나 집, 사무실에 걸어두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 거리에서 요르단 국기를 판매하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열풍은 9·11 직후 미국 거리를 연상시킨다.
암만 테러 이후 이제까지 거의 보안에 신경쓰지 않던 주요 상점들과 호텔들은 앞다투어 경비와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때맞춰 경비 용역 업체와 보안 검색대나 검색기 등을 취급하는 보안용품 관련 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비요원들은 외국계 학교나 호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에서 보안 검색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주요 시설들은 무장경찰력이 상주하며 경계 업무를 펼치고 있다.
암만 테러 뒤 요르단인들이 뭉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요르단이다”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거리 광고판이 시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길거리 행진에서 ‘요르단은 하나다’라는 구호는 빠지지 않는다. “암만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 암만 중심지의 압둘라왕 사원 이맘 무함마드 카이로 알리사가 사건 직후 금요 예배에서 행한 설교의 중심이다. 라디오와 TV 등 매체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다’는 식의 계몽성 주장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나 ‘자르카위’ 아닙니다.” 자르카위, ‘자르카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르카는 암만 서북쪽에 자리한 인구 80만여 명의 요르단 제3의 도시다. 그 동네 사람들도 자르카위로 불린다. 그런데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그 동네 사람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암만 테러가 발생하자 이내 일부 언론에서는 자르카 사람들의 반응을 기사화했다.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만나 그들의 반응을 화면에 담기도 했다. 자르카시를 찾는 취재진들도 적지 않았다. 언론에 비친 자르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자르카위를 성토하고 있었다. “그런 범죄자는 눈에 띄는 대로 내가 처벌하겠다”는 식의 성난 목소리로 분출된다. 그러나 울며 겨자먹기다. 대놓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자르카위의 주변 인물이나 일부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자르카위의 소행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는 요르단 사람이고 그의 가족들이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완곡하게 이야기한다. 이들 또한 죄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르카
“이라크 놈들 다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부담을 갖게 된 또 다른 이들은 이라크인이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의 어떤 조치도 없다. 압둘라 국왕이나 요르단 정부 책임자들은 여러 형태로 이라크인들에 대한 제재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요르단 왕국은 테러범들이 이라크와 요르단을 갈라놓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둘라 국왕은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이런 강조는 거꾸로 민심이 나빠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인들의 암만 러시는 요르단 경제에 긍정적·부정적인 영향을 몰고 왔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물가가 오르고 집세와 토지, 가옥 거래가가 폭등했다. 이 모든 책임이 이라크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범(?)이라는 생각들을 요르단인들이 하고 있다. 요르단인들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지난 8월6일 요르단 남부 아카바에서 발생한 미군함에 대한 로켓 공격에 이라크인이 가담했던 것을 상기하고 있다.
테러범들이 이라크인이라는 알카에다의 성명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는 반이라크인 감정이 악화되고 있다. 급기야 체포된 여성 테러범의 사진과 인터뷰가 방송된 지난 13일 이후에는 암만 곳곳에서 이라크인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위협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실 요르단인들의 이런 반이라크인 감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올해 2월28일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100km 지점의 힐라 지역에서 요르단인 라에드 만수르 반나에 의한 자살폭탄 테러로 12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반요르단 시위가 이라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이라크 정부와 의회는 요르단 정부를 성토하고 급기야 요르단과 이라크 양국 정부는 자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이번 공격이 요르단인들의 민심을 일깨워 사담 잔당들에 대한 동조 분위기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암만 테러가 발생한 직후 이라크 총리실 대변인인 라이스 쿱바는 이렇게 말하며 요르단이 친사담 인사들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을 비난했다.
현재 요르단 정부는 이라크 정부나 이라크인들 개인에 대해 어떤 특별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지만 민심이 이렇게 흐른다면 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르단인들의 심리적 혼돈
이번 사건의 여파로 요르단인들의 친자르카위 성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요르단대 전략문제연구소의 정치학자 파레스 브라이자트 연구원은 “(이번 사건 이후) 알카에다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요르단인 응답자들의 90%가 생각을 바꿨다”고 밝혔다. 파레스 브라이자트 등이 참여한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알카에다를 테러조직으로 평가한 요르단인은 11% 정도였다. 67%는 합법적인 저항조직으로 인정했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나 이집트의 경우도 유사한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알카에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은 급감했다. 요르단의 일간지 <알가드>는 지난 16일 암만 테러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를 밝혔다. 응답자 1014명 중 87.1%가 알카에다를 테러조직으로 인정했다. 이전의 여론조사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알카에다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번 테러 사건은 많은 요르단인들에게 심리적인 혼돈을 안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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