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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으로 본 세계_스위스] 시계, 물량아닌 가격!

등록 2005-09-15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제네바=윤석준 전문위원 semio@naver.com

스위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시계’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풍랑을 피해 위그노교도들이 지금의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정착했고, 이들의 금세공 기술이 시계 제작에 적용되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스위스의 시계산업은 태동했다. 물론 이러한 스위스 시계의 명성은 1970년대 일본의 저가 전자시계의 공세로 한때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의 고가 수공제품 위주이던 스위스 시계산업계에서 디자인과 중저가를 앞세운 스와치라는 스위스 내 이단(?)의 등장으로 인해 스위스는 다행히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다시 중국의 공세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미 스위스는 시계 수출 물량 기준으로는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지난 한해 동안 중국이 무려 10억여개의 시계를 전세계에 수출한 데 비해, 스위스의 시계 수출량은 중국의 40분의 1에 불과한 2500만개에 그쳤다. 그럼에도 스위스는 수출 금액으로 따지면 여전히 세계 제1의 시계 수출국이라는 위상을 잃지 않고 있다. 스위스 시계의 높은 수출단가 때문이다. 공장 출고가 기준으로 볼 때 중국 시계의 평균 출고 가격은 1달러에 그치는 반면, 스위스 시계의 평균 출고 가격은 무려 329달러에 달한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스위스의 세계 고급 시계시장에서의 사실상 독점은 스위스인들에게 상당한 외화 소득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의 해외 시계 수출 금액은 총 9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스위스 인구가 약 7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스위스 인구 1명당 1300달러(약 150만원)의 시계를 수출한 셈이 된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산업도 최근 위기를 겪고 있다. 우선 스위스산 시계라 해도 실제로 스위스에서 조립만 된 ’무늬만 스위스’인 시계가 늘어나고 있다. 스위스 연방정부 규정에 따르면 전체 부품 가액의 50%만 스위스산 부품을 활용하면 스위스산 시계로 인정되기 때문에, 최근 일부 업체들은 외국 저가 부품의 사용을 점차 늘리고 있는 추세다. 또한 가짜 스위스 시계의 해외 유통도 골칫거리다. 주로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짜 스위스 시계들이 전세계 시장에 대대적으로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월 멕시코에서 2만여개의 가짜 스위스산 시계가 경찰에 적발된 바 있다. 스위스 시계공업협회 관계자는 “스위스에서 만드는 ‘메이드 인 스위스’보다 중국에서 만드는 ‘메이드 인 스위스’가 더 많을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시계의 나라 스위스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알프스 산자락에서 500여년간 시계만을 만들어온 장인들의 후손이 이번에는 어떤 묘안을 짜낼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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