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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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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 병영대륙, 아시아를 바꾸자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막대한 군사비 지출하고 거대한 군대 꾸려온 여러 나라들의 실상
부채 웃도는 연간 2100억달러의 군사비, 미국 군산복합체 배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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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 내 몸뚱이를 찢어도,

내 살점을 도려내도,

요새로 뒤덮인 내 영혼은,

적백기(인도네시아 국기)에 살아 있다

나는 어떤 적이든,

영원한 보복을 요구한다.”

인도네시아 군대 창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디르만(Sudirman) 장군이 한 이 말은 아시아 ‘주전론자’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사무쳐온 금언이 아닌가 싶다.

70%의 군사비가 미국식 군산복합체로

수디르만 장군의 동기뻘인 박정희, 김일성, 수하르토, 마르코스 같은 아시아판 독재 대표선수들이 세례받은, 이 영혼까지 팔아먹는 ‘익명의 적에 대한 영원한 보복’은 오늘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국방’이란 말만 나오면 장엄해지는, 그래서 애국심이 불길처럼 피어오르는 탁신 시나왓 타이 총리도,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훈센 캄보디아 총리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모두 60년 전 수디르만의 유령을 쫓아 ‘호전주의’ 앞잡이로 잘들 달리고 있다. 그렇게 역사를 거꾸로 달리는 이들을 우리는 ‘반역자’라 불러왔다.

또 있다. 주석궁으로 탱크몰이를 할 것을 주장해온 결연한 ‘조갑제류’나 독도에 무장군인을 파견하자고 떠들어댄 ‘사회주의자류’나 선제 핵 공격을 외쳐온 극우 광신 힌두민족주의자 ‘BJP’(바라티야 자나타당)류나 모두 아시아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전사들이자 수디르만의 정기를 물려받은 후배로 손색없는 자들이다. 그렇게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날뛴 이들을 우리는 ‘학살자’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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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역자들과 학살자들 등쌀에 오늘날 아시아는 1200만 대군을 거느린 군인대륙이 되었고, 해마다 2100억달러(약 210조원)의 군사비를 쏟아붓는 병영대륙이 되고 말았다. 그 대륙을 유지하고자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정상급 군사비를 지출해왔다. 중국 3위, 일본 5위, 사우디아라비아 8위, 인도 9위, 남한 11위, 터키 13위, 이스라엘 14위, 대만 19위, 인도네시아 21위, 북한 24위. 심지어 인구가 400만명뿐인 싱가포르마저 25위에 올라 있다. 그러고도 속이 차지 않았는지, 아시아 시민 절반이 하루 1달러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판에 흥청망청 써대는 아시아 군사비는 해마다 4~5%씩 증가하고 있다.

옛 냉전 체제가 무너진 1991년부터 2000년 사이에 세계 군사비 지출이 약 11% 감소했지만, 정작 아시아에서는 같은 기간 27%나 폭증했다. 같은 기간 세계 무기 수입 비용이 12% 감소했지만, 아시아에서는 33%나 늘어났다. 그렇다면 아시아가 신나게 돈을 써대는 동안 그 이문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불행히도 그 이문은 아시아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돈은 모조리 미국을 비롯한 선진 전쟁자본 대국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세계 무기시장 규모가 2003년 기준으로 9500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이 엄청난 돈은 제3세계 모든 국가들이 지닌 부채를 웃도는 액수다. 그 가운데 70%가 넘는 막대한 돈이 총구로 시장을 장악해온 미국식 군산복합체로 흘러들어가서 다시 세계를 새로운 전장으로 만드는 ‘전쟁자본주의’의 굴렁쇠 노릇을 해왔다.

이러니, 해마다 군사비 증액만큼 재정 적자를 봐온 인류 역사상 최대 적자대국 미국의 군사비 과다 지출에 의문을 달 필요가 없다. 국내 산업의 65%가 직·간접적으로 군사 부문과 연계된 그들에게는 지표상 잡히지 않는 막대한 돈줄이 지구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시아는 ‘봉’ 노릇을 충실히 해왔던 셈이다.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잘 드러났다. 징병제가 옳은가 모병제가 옳은가, 또는 여성의 군 의무 복무가 옳은가는 지엽적인 문제다. 그 모든 것은 무장철폐와 군비축소로 자동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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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없는 코스타리카는 어떤가

아시아 네트워크는 아시아 시민사회가 군비축소와 무장철폐에 온 힘을 바쳐야 한다는 고언을 올린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1200만 아시아 군인들에게 총 대신 괭이를 쥐어주고, 해마다 아시아가 지출해온 2100달러를 대민 구호작전에 투입한다면 아시아의 악성 빈곤을 가뜬히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무장철폐와 군비축소는 아시아 시민사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배고픈 아시아에서 군사비를 줄이는 일- 관련 부정부패 포함- 말고는 시민을 살릴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군대를 헌법으로 금지한 코스타리카는 군인이 없는 나라지만 전쟁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위대한 발상인가.

아시아 네트워크는 나라를 팔아먹고 대신 시민을 살리는 일이 아시아가 가야 할 21세기의 멋들어진 시대정신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매국노’로 찍힌다면, 그걸 훈장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다.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고 거대한 군대를 꾸려온 아시아 몇몇 나라들의 병영 실상을 독자들께 소개한다. 우리는 아시아의 병영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동안 추상적인 수치만 들고 따졌던 군비축소나 무장철폐에 현실적인 밑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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