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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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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이 떠받친 3대 군사대국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병영대륙 아시아- 인도]

120여달러 연봉 받는 사병들이 17년 복무 끝나면 최대 164달러 손에 쥐어
군대 계급제도와 카스트제도가 혼합된 모병제, 이중의 족쇄로 작용한다

▣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타임스 오브 인디아> 전 편집장·핵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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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은 정말로 죽지 못해 가는, 이 세상 마지막 지점이다.”

8년 동안 인도군에서 복무한 저명한 소설가 디나나스 마노하르(Dinanath Manohar)는 두 손을 내저었다. 그이는 병영의 괴로운 일상, 우둔한 훈련, 어리석은 열병식에서부터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명령에 복종토록 만드는 ‘노예·마초 혼합 군대문화’를 노골적으로 비판해왔다.

“병영 생활은 영혼을 죽이는, 그야말로 우둔한 시간이었다.” 디나나스의 입에서는 몸서리쳐지는 체험담이 끝없이 이어졌다. “무차별 포격전이 벌어지는 카슈미르 병영은 지옥이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험악하게 부상당하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할 수 없다. 전투에서 부상당해도 동정심은커녕 냉대받기 일쑤고…. 반쯤이라도 인성을 갖춘 자라면 그런 병영에서 도망치고 말 것이다.”

복종과 정복의 야만적인 식민 기풍

오늘날 110만 대군을 지닌 세계 3대 군사대국 인도는 19세기 영국 식민당국에 의해 ‘현대식’ 군대로 태어났다. 그 무렵 영국이 만든 인도 군대의 기능은 이중적이었다. 하나는 인도 식민통치를 위한 것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도구였다. 그 과정에서 영국 식민당국은 10만명도 넘는 인도인을 사막의 ‘대포밥’으로 희생시켰다. 그 시절 영국 식민 군대는 전사족이라 불렸던 라지푸트, 시크, 마라타, 도그라, 그리고 구르카와 같은 인종들로 군대를 구성했다. 이런 인종주의에 바탕한 군사제도는 식민통치가 끝나고도 한참 뒤인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1980년대 이후 인도 군대가 무슨 별천지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인도군 내부는 여전히 영국 식민제도가 남긴 ‘복종’과 ‘정복’이라는 야만적인 식민 기풍이 지배하고 있다.” 최근 퇴역한 나즈라 싱(41)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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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가 그 잔인하고 험악한 인도 군대를 제 발로 찾아가는가?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 인도 군대를 생각한다면 독자들이 의문스러워할 법하다. 한마디로 인도 군대의 사병(OR. Other Ranks)은 대부분 살아갈 길이 막막한 소작농 출신들로 메워져왔다. 그리고 인도 군대는 그들의 임금을 착취하면서 세계 3대 군사대국을 유지해왔다. 한번 살펴보자. 하사관 아래의 일반 사병은 평균 5353루피(124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는 인도 국민 평균소득 40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세계 빈곤선인 하루 1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렇게 17년간 복무하고 병영을 나서는 사병들이 받아쥐는 돈이 최대 164달러라니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 장교들은 ‘슈퍼 계급주의’ 사회에서 임금만 빼고는 모든 특권을 누려왔다. 인도는 이 세상에서 장교가 ‘개인 노예’를 거느린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구두닦이와 다림질은 말할 것도 없고, 보모 노릇까지 하는 사병을 거느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장교들도 임금으로 넘어가면 맥을 못 춘다. 장교들 임금이 사병들에 비해 최소 3배에서 10배나 높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사회 직종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병제도를 채택한 프로페셔널 인도 군대에 장교가 1만2500명뿐이라는 건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처럼 사병들의 낮은 임금은 인도 병영 내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군대의 상징인 계급제도가 인도의 사회악으로 불려온 카스트(신분제도)와 혼합되면서 사병들에게 이중의 압박장치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격렬한 노동조건에다 살벌한 문화는 둘째치고, 사회적 출신성분에 따라 사병들을 영원한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군대 조직 내부의 악습이 ‘악중악’이란 뜻이다. 사회에서 비천한 직종으로 여겨져온 오물 처리, 정원 가꾸기, 이발 같은 일이 사병들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군대에서도 자동 보직이 돼왔다.

“인도 군대여, 나를 강간하라”

이런 상황 속에서 25만명에 이르는 군인과 최소 15만명에 이르는 특수경찰을 파견해온 카슈미르 지역은 병영 내부 분란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시민 공격행위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켜왔다. 지난한 분쟁을 겪어온 북동부 지역 마니푸르와 나갈랜드쪽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마니푸르에서는 군인들의 성폭행에 격노한 여성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인디안 군대여, 와서 나를 강간하라!”란 피켓을 든 나체 여성들이 군사령부 앞에서 벌인 시위는 사회적 양심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듯,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온 인도 군대는 그 불만을 시민사회 공격으로 대신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여왔다. 군인들은 시민 인권유린 행위로 해마다 수천건의 고발을 당해왔다. 2000~2003년에만도 4225건이 군법회의에 회부돼 396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2203명이 투옥됐다. 유죄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병영 내 살인과 시민 공격행위 그리고 부정부패라는 중범죄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군대는 ‘도덕성’을 과시하고자 군인들의 실제 범죄와 상관없이 매우 가벼운 처벌을 함으로써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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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병영 내 폭행과 살인은 극도의 긴장과 좌절감이 몰아쳤던 2002년, 카슈미르 국경을 끼고 70만 인도군과 30만 파키스탄군이 대치했던 10달 동안 극에 달했다.

최악의 병영 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고지대 전선으로 지난 20년 동안 악명을 떨쳐온 시아첸 빙하 고지였다. 6천m에 이르는 그 고지는 많은 군인들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극단적인 장애를 일으켰다. 심지어 전투에서 전사한 이들보다 동상으로 죽은 이들 수가 훨씬 많을 정도였다. 그러나 군인들이 당한 고통은 쥐꼬리보다 적은 보상으로 덮어졌다. 그 작전에 참가한 군인들은 대개 한달에 5~10달러의 특별수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군인들은 56일로 정해진 정기휴가나 30일 임시휴가와는 상관없이 기껏 며칠짜리 휴가를 얻었다. 그러니 휴가는 군인들에게 권리가 아니었다. 다만 ‘작전상황’이 허락할 때만 주어지는 특수한 권리였을 뿐. 국경의 군인들은 일주일에 7일간 근무하면서, 고통스런 임무와 임무 사이에 잠깐씩 휴식을 취했을 뿐이라고 한다.

시아첸 빙하고지는 최악의 전선

인도 군대의 병영들에는 텔레비전과 실내 게임시설을 갖춘 오락실이 마련돼 있다. 또 대규모 병영들에는 군인클럽이 있어 사병들이 럼주를 마실 수도 있다. 물론 각 담당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거의가 한잔이나 두잔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그러나 자유롭게 텔레비전을 볼 수 있고, 럼주를 걸칠 수 있는 사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또 퇴역군인들은 마지막 월급의 50%에 해당하는 연금과 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가는 예산 총액은 남세스럽게도 35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육군홍보실은 사병들에 대한 복지예산 전반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왜 인도군 병영이 대부분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인지, 이제 독자들께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믿는다. 만약 사병으로서 병영생활이 낭만적이지 않은 고통이었다면, 그들의 퇴역 뒤 삶도 특별히 매력적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도 군대의 대다수 사병들이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태어나, 군대가 제공하는 쥐꼬리만 한 임금과 연금 말고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으니 어이 하리오. 이렇게 사병이 맥을 못 추는 인도 군대에서 ‘현대화’와 ‘인간주의’를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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