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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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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운명의 심판대에 서다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올해 안에 문제 해결하겠다는 입장 밝힌 미국
국제사회의 적극 중재 없으면 전쟁으로 번질 수도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폭격(1999년 3월)이 감행된 뒤, 코소보가 NATO의 점령하에 들어간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코소보는 코소보유엔대표단(UNMIC)과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을 통해 행정과 치안이 이뤄졌다. 이와 더불어 코소보의 독립을 위한 기반도 쌓였는데, 가장 중요한 성과로 코소보를 대표하는 과도정부의 수립을 들 수 있다. 이제 유엔과 NATO군은 서서히 코소보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독립국가는 영원한 정치적 목표

지난 5월18일, 미 국무부 차관 니콜라스 번즈는 하원의 국제관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2005년을 코소보 문제를 해결하는 해”로 못박으면서 “유엔과 동반자인 유럽과 함께 코소보의 향후 지위를 결정짓기 위한 일정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번즈 차관의 발언에 이어 지난 25일에는 국무부의 발칸 담당자까지 나서서 발칸의 미래에 대한 결정은 올해 안으로 반드시 내려질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입장 표명으로 인해 당사국인 세르비아와 코소보를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국가들은 코소보 문제로 갑자기 바빠졌다.

미국이나 유럽이 코소보에서 손을 떼기를 원하는 이유는 코소보라는 지역의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의 외연적 확대로 인해 이미 발칸 지역 국가들이 속속 가입하기 시작했고 터키도 유럽연합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까지도 유럽연합의 가입 일정에 포함됐다. 따라서 6년 전에 비하면 코소보나 세르비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상당히 약화된 셈이다. 그리고 코소보는 중동과 달리 자원의 이용가치나 투자가치가 거의 없고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국제 자본이 외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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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최근 들어 세르비아 정부는 내부의 드세진 민족주의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코소보의 재산권을 행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미국의 군사기지 건설과 사용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서 미국을 압박해왔다. 그동안 미국은 코소보에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큰 군사기지인 본스틸 캠프를 불법적으로 건설해 운영해왔다. 바로 이 때문에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분리해 군사기지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신중하게 발칸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발칸에서의 또 다른 분쟁은 유럽 전체의 분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코소보나 세르비아 양쪽에 유럽연합으로 신속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당근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이해를 가진 세르비아와 코소보 당국도 세계에서의 고립을 피하기 위해 발칸 지역의 안정에 애쓴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하지만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이뤄져야 할 것에 대해서는 모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어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형편이다.

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NATO의 도움을 받아 코소보에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확보한 다수 알바니아 민족은 코소보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강력히 원해왔다. 이미 코소보는 정부와 의회를 비롯해 국가의 조직체들을 체계적으로 갖춘 상태로 독립국가나 다름없이 기능해왔다. 그렇지만 유엔에서 결의한 1244조에 의해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세르비아 영토로 남아 있는 상태다. 당연히 코소보의 알바니아 당국이 원하는 것은 바로 유엔의 조문을 변경하거나 폐기해 국제 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일이다. 코소보의 루고바 대통령은 3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유고연방(현재 세르비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코소보에 남아 있던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수많은 테러 사건도 사실은 국제 사회에 여론을 환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었다. 코소보가 완전히 세르비아에서 독립하지 않는 한 코소보의 평화는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평화유지군 있는데도 테러 발생하다

1999년, 코소보가 유엔과 NATO의 손에 들어간 이래로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이 저지른 대 세르비아인 테러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가져왔다. 6년 동안 1300명의 세르비아인이 목숨을 잃었고 25만명의 세르비아인들과 유대인들, 집시들이 코소보에서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밀려나 난민으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세 시대 때 지어진 수백년에서 1천년 가까이 된 역사적인 정교회와 수도원 150개가 불타거나 훼손됐고 개인 재산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지난해(2004년 3월17일)에는 이틀 동안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이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을 공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르비아인 9명이 죽었고 145명이 다쳤으며 4천여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엔클레이브(고립지역)를 떠나 난민으로 전락했다. 당시 알바니아인들의 테러 공격을 적극적으로 제압하지 못한 유엔과 코소보평화유지군은 국제 사회의 질책에 시달려야 했고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깊은 불신을 남겼다.

현재 코소보는 지도상으로 세르비아의 지도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바로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깊은 역사적 연관성 때문이다. 세르비아 민족에게 코소보는 세르비아라는 민족국가를 태동한 모태로 ‘발칸의 예루살렘’이다. 지난 5월1일 지금까지 코소보를 지켜오면서 소수의 세르비아 민족을 대표해온 정교회 대주교 아르테미예는 “세르비아 민족에게 가장 큰 비극은 누군가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고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일일 것이다. 난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못박았다. 코소보 독립에 대한 대주교의 단호한 입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세르비아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누구나 나라를 팔아먹을 민족 반역자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난민 문제 처리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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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의 미래에 대해 ‘자치주 이상 독립국가 이하’라는 구상을 고심 끝에 짜내었다. 코소보 문제의 전문학자이자 그리스 주재 세르비아 대사인 두산 바타코비치에 따르면 코소보가 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코소보라는 민족은 없다”는 데서 찾고 있다. “코소보에는 알바니아 민족과 세르비아 민족만 있을 뿐 코소보라는 민족은 없기 때문에 코소보는 국가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해 코소보에서 최대한의 자치를 허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코소보 당국에는 난민들의 조속한 귀환과 안전보장, 소수 세르비아인들의 교육의 자유를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부각되는 부분은 난민들의 귀환과 안전보장 문제다. 코소보 자치정부는 난민들의 집단 귀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돌아오는 난민들은 받아들이겠지만 코소보를 떠난 25만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다시 돌아오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돌아오면 떠나기 전의 토지나 집들에 대한 소유 분쟁이 발생할 것이고 이로 인해 민족간 충돌이 재발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미국이나 유엔에서도 세르비아 난민들에 대한 처리는 골칫거리다. 당초 코소보를 접수하면서 받아들인 조건 중 하나가 난민들의 귀환과 안전보장이었다. 번즈 미 차관도 밝혔듯이 “다민족 사회의 정착과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체제의 수용”을 코소보 독립과 유럽연합 가입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코소보 당국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과거 소극적인 대처를 반영하기도 한다. 지난 6년 동안의 행적을 미뤄봤을 때 유엔이나 코소보평화유지군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했지 세르비아 난민들의 귀환을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어느 난민도 코소보로 돌아오기를 원치 않고 있다.

올해 안에 코소보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시간이 촉박하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유엔과 유럽쪽에서 특사를 파견해 코소보 당국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방법이 있다. 반면에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현 상태가 지속되는 한 지난해보다 더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 즉각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이 인내심을 잃고 다시 지난해와 같은 사태를 일으키고 코소보평화유지군이 적극적으로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세르비아 정부가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군을 파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코소보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 정부에 군을 파견해줄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는 국내의 비난 여론을 무시하고 코소보평화유지군의 눈치를 보며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할 경우 세르비아 정부도 군대를 파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누구도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제2의 코소보 전쟁’이라는 가정이 현실화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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